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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Oct 18. 2023

인샬라 inşallah: 신의 뜻이 그러하다면

새로운 봄을 향한 염원

5월의 두 번째 일요일, 튀르키예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었다. 십여 년 동안 선거에서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정황이 다수 포착되어 왔기 때문에, 여러 정당에서 자원 봉사자를 뽑아 투표 상황을 감시하도록 했다. 남편과 시동생도 감시자 활동을 하러 새벽 여섯 시 반에 투표소로 갔다. 평소에 열 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던 사람이 그날은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덟 시 즈음 둘째 고양이 꿀떡이가 배고프다고 내 머리카락을 뜯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역사적인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분에 들떴는지 혼자 아침을 먹고 싶지 않아서 마마에게 전화해 함께 아침을 먹자고 했다. 시동생이 만들어둔 샐러드와 파파가 만든 감자튀김을 가운데에 놓고 마마가 사 온 시밋(simit, 튀르키예에서 자주 먹는 빵)과 함께 먹었다. 식사를 다 하고 나서 마마는 에스프레소 잔보다 작은 잔에 설탕 한 스푼을 넣은 튀르키예식 커피를, 나는 집에서 챙겨 온 알커피를 타 마셨다. 


내게 투표권은 없지만 튀르키예 선거가 어떤지 구경하고 싶어서 마마를 따라 투표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시밋을 파는 아저씨와 마주쳤다. 마마가 오늘 선거 날이라 빵을 많이 팔지 못해서 아직까지 계시는 거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아침에 가져온 시밋을 다 팔고 투표하고 와서 새로 가져온 거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투표하고 돌아가는 길에 고소한 시밋 냄새를 찾지 못하고 하나둘씩 사서 손으로 뜯어먹을 것을 노린 듯했다.(입이 심심할 때 고소한 참깨 냄새를 솔솔 풍기는 시밋을 안 사 먹고 그냥 지나치는 건 쉽지 않다.) 새로운 봄을 염원하며 아주 힘껏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마마와 아저씨는 똑같은 문장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인샬라 inşallah.”


인샬라는 “신의 뜻대로”, “신의 뜻이 그러하다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종종 이 문장을 사용한다.


인샬라는 튀르키예에서 들었던 말 중에서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었던 문장이었다. 거절의 뜻이 아니라고 설명하는데, 자꾸 정중한 거절처럼 들렸다. 예시를 들어볼 수 있다. 마마랑 밥을 먹으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마가 일본 온천이 궁금하다고 해서 분위기가 어떤지, 뭐가 좋았는지 조잘조잘거렸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조용한 집 앞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마마라면 분명 느긋하고 정갈한 일본 온천을 좋아하실 것 같았다. 나중에 같이 일본으로 온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마마는 늘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는 눈매가 더 가늘고 깊어지게 웃으며 “인샬라”라고 대답했다. 


또 만나자는 사람에게 “나중에”, “시간 될 때” 밥 먹자고 대답하는 건 인사치레일 뿐 진짜 약속 잡고 밥 먹자는 말이 아니라는 한국식 해석을 곁들여버린 걸까? 나는 마마가 나만큼 같이 여행을 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대에 가득 차서 말을 꺼낸 사람에게 “신이 원하신다면”이라고 대답하는 건, 신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할 의향 정도는 있다는 뜻 같았다. 


선거일에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대화의 끝에 인샬라라고 말했다. 인샬라는 고마워(Thank you)라는 말에 천만에(You’re welcome)으로 답하는 관성적인 문장이 아니라, 더 깊고 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후 서너 시 즈음 투표소에 한 여성분이 들어왔다. 걸음 보조기에 의지해서 3층까지 올라오시느라 땀이 흥건한 이마를 손등으로 닦고는 의자에 앉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선생님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교실 앞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남편을 붙잡고 말했다.


“내 이야기 좀 들어보시오.”


선생님은 부르사(Bursa)에 살다가 몇 년 전부터 부르사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옐로바(Yalova)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다. 거주지 변경을 하지 않아 공식 주소가 부르사로 등록되어 있어서 선거 전에 동사무소에 찾아가 물어봤다. 담당자가 옐로바에서 투표해도 된다고 해서 선거 날 옐로바 투표소에 가니 여기서 투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부르사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해서 직원에게 확인해 보니, 부르사에서 투표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부르사에서 옐로바까지는 차로 약 두 시간 걸린다. 선생님은 그 길로 차를 몰고 투표하러 부르사까지 왔다고 했다.


“내가 칠십이 넘었고, 내 차가 나랑 거의 동갑이야. 그 차로 시속 70km 이상 밟아 본 적이 없는데, 오늘 난생처음으로 140km 밟으면서 왔어.”


선생님이 운전하고 온 차가 정말 70년이나 되었을 리 없지만 길에서 가끔 본 적 있던 각지고 색이 바랜 옛날 차들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새로운 봄을 위해서 무조건 투표해야 한다며 투표 부스에 들어갔다. 투표를 마치고 나와서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한 평온한 얼굴로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한 마디 내뱉었다. 인샬라. 그리고 오래된 차를 몰고 다시 옐로바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어쩌면 인샬라는 내가 믿는 정의나 신념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끝까지 한 후에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간절히 원하지만 세상 일이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샬라를 내뱉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건 아닐지. 원한다고 반복해서 말하며 제발 이루어졌으면 초조해하는 대신, 충분히 염원하며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운명 또는 신의 뜻에 맡길 시간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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