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고 꽃 하나가 피면 꽃 하나가 느끼는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세계는 나와 더불어 태어난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고 아이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세계 그 꽃이 죽으면 끝나는 거예요.
여러분의 세계를 객관화하고 다른 사람과 일치시키지 마세요.
각자의 세계가 있기에 타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
닥치는 대로 오는 대로 스며드는 삶
강신주의 장자 수업, EBS
강의하시는 강신주 교수님의 모습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본다. 강신주 교수님의 야윈 모습을 보면서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의 힘을 느낀다. 너무나 알려주고 싶어서 절절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새겨듣는다. 남들의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는 말씀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한다.
이 영상을 보면서 아이들의 세계를 생각했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의 세계, 이 아이들로 인해서 나에게 열린 세계를 생각했다. 아이들이 사라지면 없을 세계. 그렇기에 아이들의 세계를 더욱 소중하게 지켜주고 싶다.
작년에 피었던 봄꽃과 올해 피는 봄꽃이 다름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나도 달라진다고. 십 년 전의 나, 작년의 나, 지금의 나는 다른 존재라고 하신다.
나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니까 이래야 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내가 자란 힘든 순간에서 참 잘 지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 성장을 지탱한 것이 결핍이었다. 결핍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결핍만으로도 많이 성장했고 많이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결핍으로 인했던 내 성장은 독이 되었다. "네가 열심히 하면 돼.", "노력해야지.", "바른 자세로 앉아서 해.", "왜 안 되는지 생각하고 잘 알아봐."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나를 채찍질하며 자라서 내 아이들에게도 더 잘하라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니 머리로는 계속 알고 있어서 부모 노릇을 하면서 후회와 반성을 일삼았다. 하지만 내가 아프고 나서야 그 시간들을 오롯이 다 버티고 나서야 나의 잘못을 온몸, 온 마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도 내 노력 덕분이라기보다는 나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고 운이었다는 것을, 내가 그걸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결핍으로 인한 나의 성장은 열심히 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나만의 신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란 걸 안다. 나 스스로 사랑하고 그 충만한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아야 함을, 남과 함께 더불어 살며 성장해야 함을, 세상이 나를 살려준 만큼 나도 세상에 도움을 주워야 함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잘 변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꾸준히 내가 어떤지 알아차려야 한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삶의 방향이 조금씩 바뀐다. 나무의 가지가 꺾이면 그 가지의 자란 잎들은 사라지지만 또 다른 곁눈에서 줄기가 나오고 잎이 자란다. 살아가면서 닥치는 시련은 그런 것 같다. 그 시련으로 내 삶의 가지 하나가 꺾이고 다시 새롭게 나는 가지 덕분에 새 삶을 얻게 되기도 한다.
내 삶의 터닝포인트 구간들에서 내가 가던 길에서 조금씩 방향을 바꿔왔다. 대학교 1학년 마치고 휴학했을 때, 제약회사 2년 차 생활을 하던 내가 교사가 되겠다고 사표를 냈을 때, 그리고 2022년, 그 해의 마지막은 갑상선암 수술. 2022년의 기록은 지금의 내가 더 살아내고 나서야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2022년은 나에게 참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장식했던 갑상선암 수술은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로 거듭나게 하였다는 것이다.
다양한 삶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안의 결핍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교직은 어떤 의미인지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여정 중이고 그 과정에서 지금, 여기의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고 있다. 머리로 알던 것들을 더 많이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내가 하지도 못하는 것을 남들에게 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에게 괜찮았다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의 경우는 이랬다고 전할 뿐이다. 그 말도 그가 원한다면.
그저 내 몫의 삶을 잘 살아내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 사는 과정에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을 기꺼이 즐겁게 나누길 바란다. 지금은 그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고 다음은 모른다. 충실히 즐겁게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문이 열릴 것 같다.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닫히고 또 다른 세계가 다가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