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diaQhQl
#단편소설 #소설 #트리거주의 #조각글 #욕설주의?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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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검색, 긍정적이다
1. 그러하거나 옳다고 인정하는 것
2. 바람직한 것
긍정적인 것이 좋다고 배웠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괜찮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책에서, 학교에서 그랬다.
초반에는 괜찮았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스스로가 기뻤고, 난 웃을 수 있었다. 여행 날 비가 오면 "오늘 공기 좋겠네!", 시험을 망쳐도 "내가 모르는 부분을 알게 되었어!", 늦잠을 자도 "그래도 잘 잤잖아!".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다.
어느 날, 태풍이 불었다. 난 바람 구경을 하겠구나, 생각하며 방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뚝, 전기가 나갔다.
ㅡ어머, 전기가 방금 나간 거니?
방금 머리를 말리시던 엄마가 머리 물기를 털며 나오셨다. 누나가 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 긍정적이다-
ㅡ오랜만에 전깃불 없는 경험을 하게 되네!!
ㅡ야, 넌 질리지도 않냐? 징그럽다 진짜.
ㅡ누나는 너무 부정적이야.
누나가 짜증 나는 듯 툴툴거렸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이런 태도가 좋은 거라 하셨지만 누나는 영 아닌가 보다. 가끔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고 내게 그랬다. 나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끝내 누나는 도망가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전화가 왔다. 엄마의 핸드폰이 나긋나긋 여유로운 음악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바깥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배경음악이었다.
ㅡ여보세요.
전화기 틈으로 통화 내용이 작게 들려왔다. 아빠 전화번호인데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김○○씨 아내 분 되신가요?
ㅡ누구세요?
ㅡ여긴 ●●병원입니다.
아버지 퇴근이 늦어진다 싶어 엄마도 걱정하시던 차였다. 엄마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ㅡ무슨 일 있나요?
ㅡ김○○씨가 태풍 날아다니던 태풍 잔해물에 맞으셔서 지금 긴급 수술 준비 중입니다.
ㅡ..네..?
엄마의 몸이 휘청했다. 불평하며 중얼거리던 누나가 화들짝 놀라 엄마를 부축했다. 간호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ㅡ그래서 보호자 수술 동의를 받으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지금 의식도 없으셔서..
수술 설명이 이어졌지만 엄마는 전화기를 놓쳐버렸고 왠지 모르게 침착하진 누나가 전화기를 이어받았다.
ㅡ네, 네. 알겠습니다. 동의하고요, 곧 출발하겠습니다.
누나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명령했다.
ㅡ어서 나갈 준비 해. 지하철 몇 정거장 갈아타면 되는 병원이니까 엄마 모시고 병원 가. 누나는 어디 좀 갔다 오게.
ㅡ어, 응.
비틀거리는 엄마를 도와 외출 준비를 하고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누나는 어딘가로 급히 뛰어가고, 어느새 정신 차리신 엄마가 나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ㅡ어서 와라, 김성훈.
ㅡ엄마, 걱정 마. 아빠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ㅡ조용히 해! 넌 지금도 그리 좋니? 사람이 적당히를 몰라?
난 입을 다물었고 우리는 새찬 비바람을 맞으며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가득 한 지하철을 타고 세네 정거장을 간 다음에 지상으로 올라가 보니까 바로 그 병원이 있었다.
몇 시간을 기다리니 곧 아빠 수술을 맡은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ㅡ수술은 잘 됐는데 환자분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내 수술 과정과 내용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좋은 결과가 아니다 보니 엄마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ㅡ환자분은 중환자실에 옮겨지셔서 경과를 지켜볼 거고요, 상태가 좋아지시면 일반 병실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ㅡ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해요..
곧 아빠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예상치도 못했다. 너무.. 너무.. 이렇게 크게 다치실 줄은 몰랐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너무 어려울 듯하다. 더 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는 그건 세뇌가 될 것이다.
누나가 나타났다. 비를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젖어있다. 누나는 아빠 상태를 보고 경직되기는 했지만 안도하는 듯 보였다.
ㅡ누나, 어디 갔다 온 거야?
ㅡ어. 반 애들이 태풍 구경한다고 놀러 갔는데 걔들 대피시키고 왔어. 위험한 데에 잘 숨어있거든.
누나는 정의감이 넘쳐난다. 하지만 위험한 일에도 달려들어 남을 구하기 때문에 이따금 자신이 다쳐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부모님에게 혼나기는 했지만 누나도 그게 걱정이라는 걸 안다.
ㅡ누나.
ㅡ왜, 김성훈.
ㅡ누나는 어떻게 그리 태연해?
누나가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아빠 손을 잡고 잠이 든 엄마에게 담요를 덮어주면서 말했다.
ㅡ너처럼 너무 좋게만 생각하면 실망하거나 그러지 않을까 봐 긴장하게 돼. 그리고 그러면 징그러워. 그런데 나처럼 살면,
누나가 추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덮고 있던 담요를 누나에게 덮어주었다.
ㅡ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니까 안도 아니면 역시,라고 생각해. 난 그래. 그러니까 적당히 하라고. 너처럼 하는 건 최면이야. 긍정적인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