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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Me 김진세 Oct 10. 2023

용서로 스스로를 돌보는 나

BetterMe: 24개의 더 나은 자아로 1년 살기 프로젝트

상처 많은 세상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존재는 신체적/심리적 상처를 피할  없다. 부모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 아기라면 이미 그 시작부터가 상처다. 누군가의 손길이 없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연약한 생명체가 그런 가족에서 어떤 돌봄을 받으며 자라게 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아무리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아이라고 할지라도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아기가 앞으로 맺을 수많은 관계 안에서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무지와 이기심과 악행으로 인한 피해를 다 예방하며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라며 우리는 타인에게 많은 상처를 경험한다. 믿었던 부모에게 양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심한 경우엔 온몸에 멍이 들고, 머리가 찢기고, 눈에 실핏줄이 터진다. 이것은 신체적 학대다. 그리고 너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는 혹은 네가 그럴 만해서 혼난 것이라는 말로 2차 가해가 이뤄진다. 이것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온전하게 판단할 수 없는 나이인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랑하면 때릴 수 있다는 것, 고통을 당해도 내 잘못이라는 것이라는 왜곡된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서적 학대, 무관심과 방치, 편애, 성추행/성폭력, 거짓말, 따돌림, 괴롭힘, 배신, 불공정한 대우, 타인과의 비교, 상실된 기대, 불합리한 비판, 과도한 책임 등으로 아픔을 경험한다. 이런 사건을 경험하는 것을 스케치북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인생을 한 권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는 태어나며 겉장을 넘겨 하얀 종이를 받았다. 너무 어려 혼자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시기다. 누군가의 폭언으로 인해 까만 줄이 그어지고, 누군가의 편애로 인해 빨간 줄이 그어진다. 칭찬 없는 비교와 비판은 그림이 그려질 종이를 구기고 찢는다. 정작 자신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꿈을 꾸고 그려야 할 상황에선 누군가가 망쳐놓은 엉망이 된 자신의 스케치북을 보게 된다. 그어진 선들을 지우고, 구겨진 종이를 펴 보지만, 이런저런 흔적에 이전처럼 새 종이가 될 수는 없다.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채 개발되지 않은 시기에 받은 고통은 삶에 더 큰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틀로 자리 잡는다. 그 부정적인 영향으로 왜곡된 틀은 남자, 여자, 세상, 친구, 사랑, 행복, 결혼, 자녀, 갈등, 돈 등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을 온전하게 해석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가깝지만 친구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결혼을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에요", "세상은 남을 짓밟고 눌러야 살 수 있는 전쟁터예요", "내 아내는 언젠간 나를 배신할 거라 미리 대비해야 해요", "자식에게 질투심이 생겨요"라는 말이 그런 예다.

    청소년기와 성인기를 거치며 당한 불합리한 사건의 영향도 작지 않다. 친구들과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배우자의 부모와의 관계, 직장이나 사업과 관련된 관계에서도 상처받을 일은 많이 발생한다. 우리는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날 선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하며,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런 사건들로 인한 타격이 훨씬 크다. 그 이유는 상처를 견디는 내면의 회복 탄력성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또한 어린 시절에 겪었던 상처부위가 몹시 예민해져 있어 현실의 고통을 겪으며 과거의 고통이 함께 끌어올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통의 고리

    이런 상처 사건을 경험하면, 해소되지 않은 내면의 부정적 감정이 나를 흔든다. 그 부정적 감정은 상처의 원인을 어디로 돌리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상처를 준 사람을 충분히 원망하지 못하는 경우는 원인이 자신을 향하게 된다. 내가 충분히 저항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더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불충분함으로 인해 자신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내적정리를 끝낸다. 그럼 스스로를 탓하며 자기 모멸감, 자괴감, 공허함과 울화가 쌓이기 시작한다. 반면 상처를 준 사람으로 인해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그 대상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증오심, 원한, 분노에 사로잡히게 된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고통은 과거의 나에게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통과하여 이어지고 타인에게로 흘러간다. 내가 나에게 해를 가한 사람으로 인해 겪었던 과거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은 1차 피해다. 내가 현재의 삶에서 경험하는 과거의 사건의 부정적 영향은 2차 피해다. 과거의 사건에 영향을 받고 있는 나로 인해 직접적/간접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내 주변 사람들의 고통은 3차 피해다. 내 주변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또 다른 관계 안에서 그 고통을 전이시킨다면 그것은 4차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렇듯 과거의 고통은 현재의 고통을 양산하고, 그것은 곧 주변으로 흘러간다. 이렇듯 고리로 연결된 상처는 풀어내지 못한 원한을 더욱 깊게 만들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 고리를 인식하게 된다면 2차, 3차, 4차로 이어지는 피해를 끊어내야 한다는 결심을 강화할 수도 있다.    


스케치북 한 장 넘기기

    과거의 상처에 매몰되어 오늘 여기에서의 삶을 조금도 영위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툭툭 털고 벗어나지 못한다고 책망하는 것은 가혹하다. 정답을 제시하며 그렇게 나아가길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에 과거의 상처가 족쇄가 되고 있다면 지금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든 행위는 이해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거나 타인을 해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면 그 결과의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그 방법이 우리를 궁극적인 자유함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쩜 우리 모두는 고통을 받았던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더 나은 나'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내가 주체가 되어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것을 결심해야 한다. 그리고 최고의 복수인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멋지게 살기'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용서라고 부른다. 때문에 용서는 철저하게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원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었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유하길 바랄 것이다. 새롭게 꿈을 꾸고, 평안을 누리며 사는 삶을 돕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용서를 권하며 품어야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했던 노력들은 아마도 남이 그어놓은 빨간 선, 검은 선의 자국을 지우려는 것이었다. 구겨진 종이를 펴보려고 하고, 찢어진 종이를 다시 붙이려고 애써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스케치북의 하얀 종이를 망쳐놓은 사람에게 따져 묻고 싶었을 것이다. 혹은 그런 용기도 없어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스케치북은 스케치북에는 여러 장이 있다. 완전히 복구할 수 없는 그 페이지에 묶여 좌절하며 한 장을 넘기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 장을 넘기면 내 스케치북을 망친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았을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그건 안 되는 일이라고 그 사람을 더 많이 미워해야 한다고,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벌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한다고 그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내가 자신을 이토록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증오를 품고 살아가며 양산되는 불이익은 다시 고스란히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니 용서를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되었다. 강요가 아닌 따뜻한 돌봄의 언어다.

    용서라는 이름으로 인생의 스케치북 한 장을 넘기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려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도 필요하고, 계획도 필요하다. 용서는 선택이기도 하고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의 사실은 용서를 통해 증오감정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안과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향한 비난을 줄이며 자존감도 조금씩 향상될 것이 분명하다. 이뿐만 아니라 짜증과 분노가 사라지며 신체 건강도 회복될 것이다. 무엇보다 묵혀두었던 내 삶을 향한 꿈을 꺼내어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려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변화와 성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도 그 그림을 보며 관계가 주는 행복을 음미할 수 있다.


용서를 배우기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며 살아가는 법에 대해 배우지 못한 부분이 참 많다. 세상을 살면 이렇게 많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배우지 못했고, 그 상처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용서는 참는 것인 줄 알았고, 그 사람의 잘못을 그냥 눈감아 주는 것인 줄 알았다. 그 사람과 화해를 하는 것을 용서로 생각하기도 했다. 용서는 그 사람과 대면하여야만 가능한 것이라 믿었다. 어떤 사람은 용서는 그냥 다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모두 우리가 용서에 대해 배우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다.

    용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용서는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행복과 웰빙을 되찾기 위해 나를 누르고 있는 모든 부정적 감정을 내보내고, 나를 위한 삶의 계획에 따라 살아가며 사명감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하는 것이며 또 그 과정을 겪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혼자 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대면할 필요도 없고, 그 사람에게 내가 당신을 용서했노라 선언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용서의 대상이 죽어 이 세상에 없는 경우에도 가능하다. 용서는 나 스스로 선택하고 진행하는 자기 돌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처의 인식과 가해자 인정의 단계다. 이 단계에선 내가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상처를 받았음을 알아차리는 단계다. 이 단계에선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대상이 부모나 종교단체의 리더라면 가해자의 위치에 놓는 것이 불편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불분명하면 피해자인 나를 탓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는 내가 받은 신체적, 심리적, 관계적, 영적인 피해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앞서 언급한 1차 피해부터 4차 피해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들을 받았고, 또한 받으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용서 고려의 단계다. 파악된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피해를 눈으로 확인하며 그것이 나의 행복에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나아가 내가 그 아픔 속에서 버티기 위해 사용했던 부정적인 방법들(자기 파괴적 언어와 행동, 복수의 계획, 제삼자에게 화풀이 등)이 결코 나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후에 새롭게 학습된 용서의 정의에 따라 용서의 걸음을 내딛을 것을 고려하는 것이 이 단계의 핵심 과제다. 이 단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증오에 따른 복수의 마음과 회복과 행복을 위한 용서의 욕구가 충돌한다. 그럴 때마다 용서했을 때의 이익과 불이익, 용서하지 않았을 때의 유익과 불이익을 적고 무엇이 정말 나를 위한 삶인지를 비교해야 한다.  

    셋째, 용서 결단의 단계다. 결국 내가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용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이제 결단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떠밀린 선택이 아니고, 내가 나를 위해 내린 결정이다. 이 단계에선 용서라는 이름으로 증오, 경멸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떠나보낼 것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용서 선언문 작성이 도움이 된다. 기록한 선언문을 매일 읽으며 새로운 삶을 위한 의지를 다질 수 있다. 선언문은 이런 형식으로 작성할 수 있다: 나는 OOO를 용서하기 시작했고, 그 문제는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그 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것이다. 이제 나는 더 나은 의미를 추구하며, 나의 행복을 위해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소중한 존재다.

    넷째, 건강한 대응방법 훈련의 단계다. 여기선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를 핵심 신념으로 삼아야 한다. 내 감정에 책임을 지는 것을 통해 가해자에게 넘어갔던 힘을 되찾아 올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을 위해 부정적 정서에 대응이 되는 긍정적 정서를 선정한다. 그리고 상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하거나, 부정적 정서를 느끼지 않으려 하기보단, 대응 정서를 생산하는 것을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관련된 긍정 정서를 느끼려고 애쓰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가 나의 도움을 얻어 고마워했던 장면, 혹은 내가 도움을 받아 감사했던 기억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웅장한 경관 앞에서 느꼈던 정서, 해가 떠오르는 바닷가의 장면도 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도 갓 태어난 아이와 눈을 맞추던 기억도 긍정적 정서를 다시 느낄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기법과 함께 나에게 존재하는 많은 '반드시 ~해야만 해!", "절대 ~해서는 안돼!"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절대적인 규칙들에 갇혀 살다 보면 자신과 타인을 향한 불만과 원망이 증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했으면 좋았겠지만..."이라는 말로 바꿔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인식의 융통성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다섯째, 이해의 단계다. 이해의 단계에서는 상처를 받은 사건을 다시 방문하여 그 사건이 주는 부정적 영향 외에 긍정적인 의미는 없는지를 돌아본다. 예를 들어, 부모의 방치로 자신에 대한 무가치함을 느끼고 살았던 것은 부정적인 영향이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임을 알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영향이다. 또한 내가 오해하거나 확대해석 한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단계서는 인지적 성찰을 통해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나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했을까?', '어떤 심리적 상태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조금씩 찾을 수 있다. 가해자의 무지와 이기심, 죄성 등의 인간 본성의 단면을 식별하게 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그 일부가 나에게도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존 패턴은 "용서는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 또한 용서가 필요한 사람으로서 용서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상처를 준 사람들과 다른 점보단 같은 면이 많은 것이다. 용서는 관대함이나 우월함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과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줄 수 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면 가해자에 대한 저주와 증오가 감소될 수 있다.

    여섯째, 행복 재설계 단계다. 내가 과거의 고통으로 인해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던 감정이 있다. 그중에 핵심은 행복이다. 행복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이 단계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하며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사람들, 장소, 활동 등을 하나씩 찾아가는 일을 시작한다. 새롭게 넘긴 하얀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전의 상처가 과거와 현재로 이어졌고, 나와 타인에게 이어졌다는 것을 살펴봤다. 이것을 완전히 끊어내고 삶을 재구성하는 차원에서 이 행복 재설계는 현재와 미래, 나와 타인을 아우르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요소들과 꿈을 꾸며 계획하여 이룰 수 있는 행복의 과제들을 삶에 균형 있게 배치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행복의 수혜자가 나는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일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과 함께 치유해 나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일곱째, 용서 여정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앞서 세워둔 자기 돌봄과 회복 그리고 성장의 계획을 실천한다. 앞서 사용했던 미래 시제의 자기 선언문은 현재 시제로 바꿔 다시 읽어 나가야 한다. 나는 OOO를 용서했고, 그 문제는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않으며, 나는 그 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다. 이제 나는 더 나은 의미를 추구하며, 나의 행복을 위해 당당하게 살아간다. 나는 소중한 존재다. 반복된 선언은 우리의 의지를 매일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용서 여정의 단계에선 나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성숙한 친구가 있으면 좋다. 의사에게 건강을 점검을 받듯이 심리 상담자를 찾아 도움을 구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돌봄 중 하나는 자녀가 심리적 안녕감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용서 즉 우리가 자신의 심리적 안녕감과 웰빙을 향상하려는 노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용서로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꿈꾸는 삶을 계획하고 그 과정을 음미하며 하루를 풍성하게 살아내는 삶과 직결된다. 나의 시간은 한정적이고, 나의 내적 공간도 마찬가지다. 나의 소중함을 생각한다면 그 시간과 공간을 상처의 기억과 그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한 분노에 사용하는 것은 이제 멈춰야 한다. 용서를 훈련하며 되찾아 온 내 감정을 조절하는 힘으로 그 공간에 사랑과 감사를 담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더 나은 나'로 용서가 일상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은 매일 새롭게 하얀 종이를 펴는 것과 같다. 내 종이에는 더 이상 남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그렇게 타인이 주는 상처와 매일 작별하자. 그것이 용서다.   

  



성장 그룹을 위한 나눔 질문

1.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며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많은 상처를 경험합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상처와 가장 최근의 상처를 나눠봅니다.

   a. 상처사건

   b. 가해자

   c. 느꼈던 감정

   d. 상처를 다루기 위해 시도했던 방법과 그 효과

2. 고통의 고리를 읽으며 과거의 상처사건이 1차 피해에서 3차 혹은 4차로 이어졌던 경험을 나눠봅니다.

   a. 1차 피해_과거

   b. 2차 피해_현재

   c. 3차 피해_내 주변 사람들

   d. 4차 피해_내 주변 사람들의 관계

3. 용서를 스케치북을 넘기는 것으로 비유한 것을 보며 어떤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나요?

4. 저자가 사용한 용서의 정의를 기반으로 나만의 언어로 재정의 해보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5. 용서 각 단계를 적용/실천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을까요?

6. 매일 새롭게 스케치북을 넘길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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