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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Me 김진세 Sep 25. 2023

과거를 수용하는 나

BetterMe: 24개의 더 나은 자아로 1년 살기 프로젝트

과거의 부정적 기억 

   60대 중반의 여성 내담자가 찾아왔다. 자신은 상담에 올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자녀들이 하도 권해서 상담소를 찾아왔다고 했다. 내담자는 오랜 시간 우울감과 두통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요즘에 특히 눈물이 더 많아진 탓에 지켜보던 자녀들이 상담을 잡아주었다. 그 내담자는 아무 기대 없이 상담소에 찾아왔다.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묻는 질문에 내담자는 자신의 증상에 대해 하나씩 설명했다. 나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증상들의 원인을 찾기 위해 언제부터 그런 증상들이 시작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내담자는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자녀들도 다 장성해서 손주들도 잘 자라고 있네요. 우울한 마음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 같나요?"

"글쎄요. 꽤 오래되었어요. 아마도 남편이 죽고 나서부터 인 것 같아요."

"남편분이 돌아가셨군요. 그게 언제인데요?"

"한 30년 되었죠."

"아... 그렇군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암으로 죽었어요. 한국에서 큰 회사 다니며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나 때문에 미국에 와서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선생님 때문에 미국에 오게 되었나 보네요?"

"네. 그 사람은 오기 싫다고 했는데, 내가 아이들 미국에서 키우고 싶다고 해서 막 밀어붙였어요. 그래서 억지로 온 거예요."

"와서는 고생을 많이 하셨나 봐요?"

"그럼요. 아무런 연고가 없었으니까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어요. 남편은 건축일을 배운다고 다니다가 여기저기 다치기도 하고, 세탁소에 가서 일을 하기도 했어요. 공부만 하던 사람이 몸을 쓰는 일을 하니까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세 아이를 키우려니 돈도 많이 필요해서 그 사람이랑 나랑 밤낮없이 일을 했어요. 번듯한 가게 하나 내고 좀 괜찮아지려나 했는데, 그 사람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거예요. 너무 금방 세상을 떠났어요."

"그렇게 남편분을 떠나보내셨던 것에 책임이 느껴지시는 것 같네요."

"(눈물) 사실 나 때문에 죽은 거죠. 내가 미국에 가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그 고생 안 하고 암도 안 걸렸을 텐데. 아이들 잘 길러보겠다고 남편 병 걸리게 만들었어요. 다 내 잘못이에요. 아이들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그 일이 가슴속에 늘 응어리로 남아 있어요. 그 사람한테 미안해서 재혼은 생각한 적도 없어요. 내가 이렇게 잘 지내도 되는지 불편해요. 나는 늘 죄를 지은 마음으로 살아요. 벌레 하나도 미안해서 못 죽여요."

"그 긴 시간 동안 죄책감을 품고 살아오셨으니, 행복한 순간에도 미안한 마음이 더 앞서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 할 것 같아요."    


    처음 만난 상담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내담자의 내면은 자신을 향한 자책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으로 꽉 차 있었다. 긴 세월의 무게를 고려하면 첫 만남에서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합리적인 설명이 내담자에게 전혀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 때문에 남편이 암에 걸려 죽었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한껏 움츠러든 그녀에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며 따뜻하게 품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과거에 머물러 살기 

    이렇게 과거에 자신이 했던 선택과 말과 행동, 실수에 사로잡혀 현재의 순간을 지나치듯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머물러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할 걸", "~했어야 했는데"와 같은 말들로 자신의 과거의 행적을 수없이 곱씹는다. 

흡연, 음주, 약물 등의 문제에 빠지게 된 것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거나, 충동적으로 소비하며 살았던 것

책임감 없이 일을 처리하며 불성실하게 살았던 것 

건강을 관리하지 못했던 것 

기억에 남을 상처가 되는 행동이나 말을  것 

남을 속이는 행동으로  책임을 져야 했던 것 

환경 탓을 하며 자신의 성장을 위해 투자하지 못했던 것 

정서  신체 폭력을 벗어나지 못한 채 참으며 살았던 것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를 잘라내지 못한 것

주변 사람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결정한 것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과도하게 희생을 하며 살았던 것 

남의 말을 너무 믿다가  손해를  것 

    이런 후회는 현재 삶을 사는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그들은 현재의 삶에서 일어나는 행복한 일들의 가치를 무시하고, 의미 있는 일들에 집중하지 못한다. 더 나은 나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런 현실의 결과가 또 과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과거에 대한 원망으로 빠져든다. 그들은 이런 부정적인 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잠시 뒤면 과거가 될 오늘을 낭비하고 있다. 


기억할 원칙

    앞서 찾아온 내담자는 자신으로 인해 남편이 질병을 얻은 것이 맞냐 아니냐를 확인하는 것을 따져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그렇게 믿고 있는 내담자의 신념은 너무 굳건했다. 그녀에겐 자신의 비합리적인 신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껏 자신에게 내린 벌은 충분했고, 이젠 보듬어 안아 줄 때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홀로 괴로워하는 삶은 사랑하는 남편이 원하는 모습은 아닐 것임에 동의하였다. 내담자는 진심을 담아 남편에게 보내는 사과의 편지를 썼다. 그 후 딸들을 상담 세션에 불러 그 편지를 읽었다. 엄마의 30년이 넘도록 묵혀있던 죄책감에 놀란 딸들은 엄마의 솔직한 고백에 눈물을 흘렸다. 울먹거리며 편지를 겨우 다 읽은 내담자에게 딸들이 다가와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내담자는 그렇게 표현을 하고 나니 막혔던 채증이 내려간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진작에 표현했으면 좋았겠다지만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딸들은 엄마의 우울의 이유를 알았으니 잘 돌봐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엄마를 향한 마음을 전했다. 내담자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만큼일지 알지는 못하지만, 이젠 자신을 좀 따뜻하게 돌봐줘야겠다고 말했다. 과거를 수용하며 자신과의 화해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이렇듯 과거의 자신의 모습과 선택 및 실수 등 부정적인 자기 기억과 자기 이미지를 수용하는 것은 현재 삶의 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과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에 보통 사람인 나도 실수를   있다는 생각으로 과도한 자기 비난을 줄이기

후회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인정하고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배움에 집중하기

과거의 실수가 오늘을 사는 나 자신 전체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과거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생각과 감정의 부정적 영향을 파악하고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매겨보기

과거 사건에 대하여 지금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하고 할 수 없는 것들을 버려두기 

'반드시 ~했었어야 해"를 "~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때의 나는 다 알지 못했어"라고 바꿔보는 것처럼 과거의 후회를 대체하는 적응적인 자기 대화를 시작하기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과거에 매여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행동을 생각하여 자신에게 적용해 보기

용서에 대해 공부하고 자기 용서를 시작하기 

'이 세상에 나를 보듬어 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한정적이라면'과 같은 전제 앞에서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기록해 보기 

과거에 내가 잘했던 것을 돌아보며 내가 실수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부정적인 자기 묘사를 재점검하기 

과거에 갇혀 사느라 놓쳤던 인생의 중요한 순간과 그것과 관련된 긍정정서들을 돌아보고 다시 그 정서들을 재생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과거와 관련된 불편한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현실의 풍성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를 잡아줄 선언문을 만들어 읽기


    자신의 실수나 잘못과 관련된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은 미해결 과제로 남아 인생을 따라다닌다. 그 과거는 너는 웃을 자격도 행복할 자격도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다. 그 과거를 겪은 내가 나에게 쉼 없이 그런 말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과거의 나에게 면박을 주며 고통을 주어도 현실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뿐이다. 이만하면 충분히 힘들었다는 위로로 자기 자비_Self-compassion를 시작하자. 그것은 내 마음에 숨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할 것이다. 그 공간엔 따뜻한 정서를 넣을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찬 계획을 넣을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머물러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조금의 용기와 인내로 과거에서 헤어 나오는 나를 지지하자. 결국 과거의 나와 화해 한 내가 만들어갈 오늘은 곧 좋은 기억으로 남겨져 썩 괜찮은 과거로 흘러갈 것이다. 




성장 그룹을 위한 나눔 질문

1. 60대의 내담자 이야기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2. 우리가 과거에 갇혀 살도록 만드는 일이 있었나요? 리스트를 참고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3. 과거의 나와 대면하여 화해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4. 그 과제를 위해 제시된 12개의 적용과제 중에서 나의 삶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5. 그밖에 자기 자비_Self-compassion이 필요한 경우를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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