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조차 준비하는 나
BetterMe.Care: 24개의 더 나은 자아로 1년 살기 프로젝트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일방통행의 고속도로를 달리듯 쉼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죽음의 다가옴을 느끼는 순간 의미를 상실한다. 몹시 중요하게 여기던 삶의 목적은 서서히 혹은 몹시 빠르게 소멸된다. 움켜쥐고 있던 눈에 보이는 소유물들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재평가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허무함이 찾아온다. 그리곤 내가 가지지 못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후회와 회한이 밀려온다.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에 대한 것이 주로 여기에 해당된다. 남겨진 시간에 대한 조급함과 두려움이 우리를 잠식한다. 그 두려움의 기저엔 다양한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허무, 죽음 뒤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불확실함,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슬픔, 해결하지 못한 삶의 과제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 죽음과 연결된 신체적, 심리적 고통. 이러한 고통들에 더하여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것에 대한 걱정도 삶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요인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에 더해 우리가 죽음을 두렵게 만드는 다소 철학적인 요인도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한 내담자가 상담소에 찾아왔다. 내담자는 65세 여성이었다. 그녀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늘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다음은 그 내담자와의 축약된 대화다.
상담자: 안녕하세요, 선생님. 불안과 관련된 신체적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네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내담자: 요즘 저는 너무 불안해요. 이것이 제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점점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상담자: 죽음까지 생각하실 만큼 불안하시다니 염려가 되네요. 어떤 일이 가장 걱정이 되시나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걱정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내담자: 음, 저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지 못하거나 제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계속 걱정해요. 사회복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경제적 여력도 있지만, 이 두려움을 떨칠 수 없어요.
상담사: 긍정적인 유산을 남기고 의미 있는 존재로 기억되길 원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에요. 그런 두려움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내담자: 글쎄요. 아마도 제 딸과의 관계가 불편하니까... 몇 년 동안 우리는 좋은 관계를 가지지 못했어요. 그 아이랑은 결혼을 하고 나서 관계가 많이 안 좋아졌어요. 아마 제가 혼자 딸을 키울 때 너무 엄하게 길러서 그런가 봐요. 그때도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많이 불안했었거든요. 혹시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늘 못하게 하는 게 많았어요. 딸아이는 그것 때문에 친구들도 못 사귄다고 불평도 많이 했었어요. 그래도 저는 제가 맞다고 생각했죠. 그 이후에도 불안할 때마다 딸을 찾았어요. 아마 그 아이는 결혼을 통해 이 상황을 피하려고 한 것 같아요.
상담자: 네, 결국 지금 따님과의 거리감이 죽은 후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연결이 되어 있네요.
내담자: 네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저는 오랫동안 이 무거운 죄책감과 후회를 품고 살고 있어요. 더 나은 엄마가 되었으면 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요. 제가 죽고 나면 아마 그 아이는 저를 자신을 숨도 못 쉬게 한 그런 사람으로 기억할 것 같아요. 그게 너무 무서워요.
상담자: 이렇게 불안의 근원을 생각하실 수 있었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겠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기 위해선 결국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핵심인데, 그것은 따님과의 관계 개선과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해요.
대화에서 확인이 되듯 이 내담자에겐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자신에게 하나뿐인 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될 것 때문이었다. 이것이 혼자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뒤섞여 신체 증상을 야기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예정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종결이 지니는 의미를 규정하지 못한 채 죽음을 대면, 수용하지 못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이 죽음불안_Death Anxiety이다. 죽음 불안은 노년기에 더 두드러지는 현상이긴 하나, 심리적 취약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도 흔하게 발견된다. 이 부정적 정서는 심리적인 안녕감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죽음 준비 프로그램
이런 이유로 죽음교육 혹은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김숙남과 그의 동료들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30시간의 죽음교육을 진행했다. 총 5일간 하루에 6시간씩 총 30시간 진행된 교육 과정에는 죽음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강의, 죽음 관련 주제 토론, 상실과 슬픔 대처 방안 토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특강, 비디오 감상 및 토론,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발표가 포함되었다.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죽음에 대한 회피'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되었다.
이 결과는 이후 조계화, 이현지, 이윤주가 한 결과에서도 동일하게 증명되었다. 연구자들은 죽음에 대한 가상강좌, "성공적인 삶, 아름다운 죽음"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수강하게 했다. 오리엔테이션과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제외하면 총 13주의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 죽음에 대한 영상 강의와 다양한 학습 과제 및 토론주제들이 제시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죽음의 정의, 죽음에 대한 태도, 종교 및 문화의 죽음 이해, 죽음의 증상, 애도와 상실 대처, 장례 계획 및 유언장, 상실 경험 회상, 사후세계의 관점 등으로 구성되었다. 연구결과 연구자들은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학생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죽음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낮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죽음이 개인의 현재 삶을 저해하고 허무감을 주며 슬픔과 좌절을 주는 사건이라는 인식이 개선된 것이다.
김은희와 이은주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매주 1회씩 150분간 총 5회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이 연구에 사용된 교육은 총 5단계로 이뤄졌다. 도입단계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떠오르는 단어와 색깔을 통해 명패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탐색단계에선 죽음 과정에 대한 강의를 하고 토론을 진행했다. 이해단계에선 죽음 관련 영상을 보여주고 '생명이 1개월 남았다면'이라는 가상의 상황을 통한 글쓰기로 죽음의 간접 체험을 시도했다. 수용단계에서는 장례식 초대장 만들기, 후회 날려버리기, 자신의 가치 정리하기 등을 통해 죽음 준비와 현재 삶의 의미 찾기를 시도했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겨줄 유산 만들기를 통해 삶의 목표와 가치를 세우는 시간을 제공했다. 결과를 분석했을 때 죽음준비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삶의 만족도가 증가했음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송양민과 유경은 전국 5개의 복지관에서 60세 이상 노인 140명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하늘소풍이야기'라는 이름의 죽음준비교육을 실시했다. 총 17주간 진행된 프로그램은 죽음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죽음을 간접 체험하며, 남아 있는 삶에 대한 의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중심으로 자서전 쓰기, 죽음 강의, 버킷 리스트 및 사망기 작성, 영상 편지 남기기, 묘비명 쓰기, 석고 주먹 만들기, 유언장 작성, 영정사진 촬영, 장기기증 강의, 장묘시설 견학, 가족 초청 유연장 낭독 등의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의 죽음 불안도가 현격히 낮아졌다. 뿐만 아니라 생활만족도와 심리적 안녕감이 개선되었다.
이런 연구결과를 통해 인간의 통제 너머에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은 물론 그것과 연관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위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통해 죽음에 대한 회피 성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죽음을 준비하기
언젠간 찾아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떠날 때 집을 깨끗이 청소한다.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때에라도 정돈된 마지막을 남기고 싶어서다. 미국에선 리빙 윌_Living Will이라는 것을 쓰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거나 의식을 찾지 못하는 경우 등을 대비해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를 미리 결정해 두는 것이다. 이것을 남겨질 자식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존엄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자기 결정권의 표현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더 나은 나'로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다. 자신의 삶의 가치를 깊게 인식하고 더 의미 있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는 삶이다. 죽음조차도 환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집착과 후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유함으로 더 많은 삶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겠다. 먼저 나의 죽음불안지수를 점검해 보자.
아래는 죽음불안태도 검사지다. Collett와 Lester가 만든 것을 고승덕과 동료들이 16개 항목으로 줄인 것이다. 1은 '전혀 아니다' 5는 '매우 그렇다'를 기준으로 자신의 상태를 평가하면 된다. 송양민과 유경의 연구에서 죽음교육 전 노인들의 평균점수는 51.76이었다.
[죽음불안태도 척도]
1. 나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죽음을 피하고 오래 살고 싶다.
2.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죽는다면 많은 슬픔을 느낄 것이다.
3. 아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면 죽음에 대해 불안을 느낄 것이다.
4. 병들고 아픈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 싫다.
5. 만약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죽는다면 나는 슬픔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6. 만약 친구가 곧 죽어가는 것을 안다면 그 사실을 친구에게 말할 것이다.*
7. 만약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8. 내가 죽은 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면 두려워진다.
9.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10. 내가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다면 자식들이 그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으면 한다.*
11. 죽음을 앞둔 친구가 나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나는 무서울 것이다.
12. 죽은 사람을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싫다.
13. 죽어 가는 친구가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는 모습을 안 보았으면 좋겠다.
14. 기억력이 자꾸 없어지고 건망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이 두렵다.
15. 내가 죽으면 가족과 떨어진다는 것이 두렵다.
16. 내가 죽을 때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며 죽을까 겁이 난다.
*역채점 문항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아래의 문장 완성 활동을 시작해 보자.
나에게 죽음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죽음을 생각할 때 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가 의식 불명이 된다면 나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가 죽기 전에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에게 의미 있는 죽음이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에게 의미 없는 죽음이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 장례식에 사람들이 입고 올 옷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 장례식에 틀 음악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 장례식에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길 바란다.
내 장례식에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지 않길 바란다.
(화장을 원하는 경우) 내 시신을 화장한 후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길 바란다.
(매장을 원하는 경우) 내 시신을 매장한 후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길 바란다.
내 재산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 묘지명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죽고 난 후에 나를 기억하기 위해 _______________________.
내 추도식은 _____________________년마다 하면 좋겠다.
내 추도식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방식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죽음 후에 나의 존재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종교가 나의 죽음 인식에 주는 영향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작업을 하며 깨닫게 된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작업을 하며 내가 생각하게 된 가치 있는 일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작업을 하며 깨닫게 된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렇게 죽음 관련된 나의 생각을 꺼내놓고 나면 내가 할 일들이 보일 것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삶과 죽음이라는 기준으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내가 우선시해야 하는 일들을 중심으로 삶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에 더 많은 시간과 힘을 쏟으며 살아가는 것을 시작하자. 그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향한 타인의 기억조차 책임을 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개인으로도 우리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억에 살아 더 나은 삶을 향한 영향을 주고 있다면 이 땅에서의 소멸이 끝은 아닐 것이다. 그것에 우리 삶에 소명이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준비하며 바라보지 않았던 것들로 시선이 향할 수 있다. 그것이 죽음 이후의 어떤 것이라면 '희망', '재회', '고통 없음'이길 바란다. 그렇게 죽음조차 환영하며 삶 전체를 조율하는 멋진 삶을 살아내길.
성장 그룹을 위한 나눔 질문
1. 죽음이 실제로 다가와 두려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어떤 이유로 두려움이 느껴졌나요?
2.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에게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3. 죽음불안태도 검사의 점수는 몇 점이 나왔나요? 검사 질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나요?
4. 문장 완성 활동을 그룹원들과 함께 나눠봅니다.
참고문헌
고승덕, 김은주, 김영규. (1999). 노인의 죽음준비 교육이 죽음의 불안도에 미치는 요인분석연구. 건강증진학회지, 16(2), 81-91.
김숙남, 최순옥, 이정지, 신경일. (2005). 죽음교육이 대학생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생의 의미에 미치는 효과. 보건교육건강진흥학회지. 22(2), 141-153.
김은희, 이은주. (2009).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이 대학생의 삶의 만족도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 대한간호학회지. 39(1), 1-9.
송양민, 유경. (2011). 죽음준비교육이 노인의 죽음불안과 생활만족도, 심리적 안녕감에 미치는 효과 연구. 노인복지연구. 54, 111-134.
조계화, 이현지, 이윤주. (2007). 죽음에 대한 가상강좌 개발과 적용. 대한간호학회지. 37(4), 442-4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