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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Me 김진세 Oct 11. 2023

조금씩 가면을 벗는 나

BetterMe: 24개의 더 나은 자아로 1년 살기 프로젝트

가면의 시작 

    자신의 내면을 감춘 채,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자신을 가장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식적인 사람 혹은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 단어로 묘사된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진실하지 못한 모습을 파악하면 그것을 근거로 그 사람과의 관계 전체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아마 그 사람은 그 거짓된 모습을 통해서 타인을 이용할 것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사람 옆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애초에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게 자신을 꾸미려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 하기보단, 자신을 방어하려고 애를 쓸 뿐이다. 자신 내면에 있는 약함을 가리기 위해서 가면을 쓰는 것이다. 

    이 가면을 거짓 버전의 나 혹은 거짓자아_Pseudo Self라고 부른다. 이 거짓자아는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다. 특히 이것엔 자아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에 우리가 어떤 양육환경에서 자랐는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위 우리가 역기능적인 가족이라고 부르는 환경을 생각해 보자. 한 아이가 정서적, 신체적, 성적인 학대, 엄격한 규율, 부모의 약물 중독, 부모의 외도나 이혼, 가족의 심리적 또는 신체적 질병, 가족의 자살, 정서적 또는 신체적 방치된 경험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안에서 그 아이는 일관성 없는 규칙, 긴장과 스트레스, 친밀함의 부재, 과도한 책임감, 불분명한 의사소통, 제한된 감정표현, 가족 문제를 숨김, 대리 부모의 역할 등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이는 그 아이의 정서적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슬픔. 무력감, 수치심, 자괴감, 두려움, 분노, 부적절감, 소외감, 혼란함 등이 깊게 자리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그런 경험은 인지적 영역에도 왜곡된 사고를 심어 놓는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나는 잘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 거야, 나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할 거야, 모두가 나를 비난할 거야, 나는 결국 혼자 남게 될 거야, 나는 다 망치게 될 거야, 결국 모두에게 배신당하게 될 거야. 이런 생각들이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왜곡되게 해석하는 틀이 된다. 이런 왜곡된 사고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렇게 형성된 내면의 약함은 존재적인 불안전감_Existential Insecurity을 만들어낸다. 내면의 취약함이다. 이 취약함은 생존 곧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하는 요소로 여겨진다. 때문에 그 누구도 이 내적 불안전감을 노출하고 살 수는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뤄야 한다. 가장 본능적인 방법은 이 취약함을 가리는 것이다. 낮은 자존감으로 허덕이는 사람은 열등감을 어떤 방식으로든 감춰야 한다. 이를 위해 그 사람은 '정말 다 괜찮은 척'하기 시작한다.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힘든 사람은 친구가 많은 것처럼 혹은 하나도 필요 없는 것처럼 연기한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아예 부탁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수치심이 핵심 감정이 되어버린 사람은 자신을 건드리는 이슈가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보이려 애쓴다. 이렇게 ~ 인 척 살아가는 삶이 가면을 쓴 삶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식적이다 혹은 위선적이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내면의 불안전감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가면을 쓴 삶의 모습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다 보면 내면의 자아와 외면의 자아 사이의 불일치가 일으키는 심리적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혼란이 대표적 증상이다. 너무 오랜 시간 가면을 쓰면서 진정한 자신과 만들어낸 자신 중 무엇이 정말 자신인지를 구분해내지 못한다. 그로 인해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생각하는지 혹은 느끼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수많은 껍데기가 겹겹이 쌓여 있는 자신의 내면을 어쩌지 못해 화가 날 뿐이다. 그래서 늘 내뱉는 말은 "난 원래 그래, 그래서 뭘 어쩌라고!"라는 항변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을 늘 매섭게 비판하고 몰아세운다. 다른 사람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으면서도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다. 머릿속엔 늘 "반드시 ~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 기준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수많은 행동 기준을 제시한다.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사람과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 통제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짜증이 나고 그 짜증은 곧 분노로 이어진다.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어떻게 감히 나에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 공격은 심한 말과 같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삐지는 것과 같이 수동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위축되어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이때 공허함과 우울감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생각을 시작하기도 한다.   

    가면을 쓰고 있으니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현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내면을 감추느라 급급하여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고 이해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타인이 겪는 삶의 문제는 축소하고 자신의 문제는 심각하게 여기는 지독한 정서적 이기주의자로 취급받게 된다. 물론, 자신은 이렇게 위태로운 세상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우울감은 점점 깊어진다. 그럼에도 자신이 짊어졌다고 느끼는 과도한 책임감은 벗어낼 수 없다.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짓 죄책감에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관계를 위해 다 퍼주기도 하고, 완전히 통제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관계에서의 신실성에 대한 의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겐 권위를 내세워 누르려고 하거나, 그 반대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친하다는 말에는 수많은 조건이 붙는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지만, 자신이 하는 행위는 그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 

    이것이 가면을 쓴 사람의 삶이다. 우리는 가면이 불편하면서도 온전히 벗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의 상처는 우리로 하여금 그 가면을 더욱 두텁게 만들게 한다. 더 많은 성공으로, 화려한 꾸밈으로, 지나친 지성화로, 과도한 봉사로, 끊임없는 유머로, 숨쉴틈 없이 바쁜 삶으로, 하나의 흠도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더 괜찮은 척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나의 약함을 보지 못한다. 그것이 생존의 수단이다. 


가면을 벗기 

    수년 전 한 내담자를 만났다. 외동딸이었던 그녀는 어린 시절 사이가 좋지 못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서로 갈등하는 상황만 되면 그녀의 부모는 그녀에게 누구 말이 맞는지 물으며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못했다. 그녀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자신의 모습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부모들은 그런 그녀를 원망하며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라는 말과 "너는 예쁜 구석이 없다"는 말을 항상 들었다고 했다. 심지어 "네가 그러니 네 엄마가 더 꼴 보기 싫다"는 말을 아빠에게 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아빠가 좋으면 아빠한테 다 해달라고 해"라며 자신을 밀쳐냈다고 했다. 결국 그녀의 부모는 이혼을 했다. 그 후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을 아빠를 원망하는 엄마 옆에서 대리 배우자 역할을 하며 살았다. 자신을 감정의 쓰레기통 취급하는 엄마였지만,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오히려 그런 엄마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그녀의 엄마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진학하려는 딸에게 "네가 그렇게 가버리면 엄마는 어쩌라는 거니"라며 공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취직하여 일하는 돈은 엄마에게 전부 들어갔고, 오히려 그녀는 눈치를 보며 용돈을 타서 써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그녀의 내면엔 분노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거리에 보이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경제적 정서적 도움을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는 엄마와 분리되지 못하는 자신을 쉼 없이 책망했다. 이런 고통을 겪으며 그녀는 경제적 성공에 대한 열망, 완벽한 성격과 외모, 과도하게 남을 돕는 메시아 신드롬에 빠졌다. 그녀는 형편에 맡지 않는 고급차를 리스했다. 왼쪽 턱이 조금 삐뚠 것 같아 수개월을 고민하다 결국 수술을 받았다. 누가 어렵다고 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나러 나갔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행복하지 않고, 행복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녀는 홀로 남겨짐에 대한 두려움이 내면의 존재적 취약성이었다. 

    그녀는 가면을 쓰고 나면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가 만들어낸 내면의 부족함을 보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람들에게 이해와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있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껍데기를 보고 나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밀쳐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 상담소에 찾아왔다. 

    많은 시간 과거의 고통을 듣고 공감하는 일을 이어가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엄마를 향한 증오와 수고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러면서 가면을 벗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을 위해 아래의 작업을 진행했다. 

변화동기를 강화하기: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삶과 가면을 벗었을 때의 삶의 장단점을 반복적으로 비교했다. 고통스럽게 살아온 시간이 긴 만큼 인내와 자기 자비로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긴 삶의 여정일 수 있음에 동의했다. 

내적 취약함을 끌어안기: 우리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발생한 내적 취약함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것을 품고 살았던 초등학생 시절 내담자, 중학생 시절 내담자, 고등학생 시절 내담자, 청년기 내담자의 마음을 각각 다르게 이해하고, 그 시절의 내담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위로와 인정의 말들을 건넸다. 그리고 충분했고, 지금은 괜찮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려줬다. 

왜곡된 사고에 대응하기: 우리는 삐뚤어져 있는 생각의 틀도 바꿔야 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왜곡된 '만약 내가 - 한다면'을 찾았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실수한다면 사람들이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가난하다면 사람들이 우습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떠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만약 자신이 행복하면 엄마가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을 논박하며 더 건강하고 적응적인 사고로 바꿔야 했다. 

내적 비판에 맞서기: 우리는 그녀가 자신을 지키려 세워놓은 완벽한 삶의 기준들에 도전해야 했다. 그러면서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이유를 찾고, 그 태도를 조금씩 바꿔나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와 아빠처럼 자신도 자신을 돌보지 못했음에 대해 스스로에게 사과와 약속의 말을 건넸다.  

솔직함을 연습하기: 가면을 벗기 위해선 솔직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했다. 가상의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서 너무 과하지 않게 감정을 표현하고, 의견을 말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존재가치를 재정의하기: 우리는 그녀의 과거의 고통이 그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뤘다. 그녀의 가치를 재정의하기 위해 새로운 삶의 기준들을 만들었다. 이것을 위해 "너는 ~ 한 딸이어야 해"라는 부모의 양육 메시지를 정리하고 선별했다. 그중에서 과도한 책임감과 불필요한 죄책감을 주는 메시지들을 더 건강한 것들로 바꿔야 했다. 

도움을 요청하기: 우리는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안전한 관계를 찾고, 그 안에서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다행히 그녀에겐 그녀를 이해해 주는 이모와 교회 언니가 있었다. 이모에겐 자신이 딸로서 충분했었음을 확인하도록 했다. 교회 언니와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도록 했다. 상담자는 꾸준히 "진짜 괜찮나요?", "정말 ~해도 될까요?"라는 내담자의 질문에 안정감을 주는 답변을 제공했다. 

건강한 자신감 쌓기: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요소 즉 가면이 주는 자신감의 한계를 나눴다. 그러면서 내적 자신감의 타인의 평가에서 오히려 벗어났을 때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평생 처음 스스로를 위한 삶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 첫 과정은 대학공부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가면을 벗기 위한 가장 핵심 요소는 안전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위의 내담자는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안전감을 경험했다. 그것을 매 세션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면을 벗는 연습을 이어갔다. 부모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써 내려갈 용기를 조금씩 확보했다. 그런 과정에서 부모와 적절한 바운더리가 형성되었다. 그것이 부모에 대한 미해결 정서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을 주었다. 그렇게 자신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아_authentic self로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면을 벗으면 껍데기를 유지하는데 쓰이는 많은 것들을 아낄 수 있다. 그 남겨진 것들은 고스란히 내적 성장을 위해 소모된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채근하며 들볶는 일이 자연스럽게 멈춰진다. 내면의 공간은 자유함과 편안함으로 채워진다. 그런 모습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친밀함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더 나은 자아로 살아갈 수 있다. 위의 상담의 이야기처럼 누군가가 내가 이미 충분함을, 정말 괜찮음을 확인시켜 줄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가면을 쓰면서까지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것을 삶의 의지라고 표현한다면, 나에게는 가면을 벗으면서 살아낼 수 있는 삶의 의지도 있다는 말이 된다.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매일 "너는 충분하고, 너는 괜찮아'를 들려주자. 


*위의 상담 사례는 내담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되었음.    




성장 그룹을 위한 나눔 질문 

1. 평소에 우리 주변에 있는 가식적인 사람/위선적인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a.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b.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불편함은 무엇일까요? 

2. 자신의 어린 시절 혹은 삶의 과정을 돌아본다면 어떤 것을 존재적인 불안전감 혹은 취약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3. 그것을 가리기 위한 나의 가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4. 가면을 쓴 삶의 모습 중에서 어떤 부분에 공감/동의가 되나요?

5. 저자가 한 내담자의 가면을 벗는 상담의 작업을 읽고 아래의 내용을 나눠봅니다. 

    a. 그 내담자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까요? 

    b. 내담자가 가면을 벗기 위해 했던 작업 중에서 나 혹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6.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아로 살아갈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7.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아로 살아갈 그룹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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