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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Sep 02. 2023

소설-데드리프트 1.

#1.데드리프트





데드리프트


진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것은 좀 더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가벼움을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은 ‘무거움’과 싸운다. 쇳덩이의 무게를 조금씩 높여가며 밀거나, 당기거나, 들거나, 내려놓는 심오하도록 지루한 일이 그 운동의 핵심이었다. 완력도 지구력도 탄력도 없는 그녀의 저질 근육들은 트레이너가 쥐여주는 도구의 중량이 늘어남에 따라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 회원님, 바벨이 내려갈 때 그렇게 등이 굽어지면 위험해요. 최대한 허리에 힘을 주고 견갑골을 뒤로 조이세요. 내려가는 동안 코어에 힘을 준 상태에서, 어깨가 말리지 않게 등근육으로 버티실게요. 오케? 할 수 있습니다. 집중, 집중! 오케?


20kg의 바벨을 앞에 두고 데드리프트에 도전하는 진의 표정에는 올림픽 결선에 나간 역사(力士)의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바벨이 자꾸 손에서 미끄러졌다. 집중을 외치는 트레이너의 투지 넘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녀의 신경은 자신의 손바닥을 찌르는 통증에 점점 곤두섰다. 그저께 젤네일 케어를 받은 손톱에 스크레치가 날까 봐 신경이 쓰였다. 길게 기른 손톱으로는 도저히 바벨을 꽉 쥘 수 없었다. 손바닥의 가로 중앙선을 날 선 손톱이 파고들었다. 손에서 바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자꾸 등이 구부러졌고, 그럴 때마다 트레이너는 질색을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 회원님, 데드리프트 할 때 등이 버텨주지 않으면 위험해요. 등을 일직선으로 유지하도록 근육에 힘을 주고 신경을 집중해 보세요.


손톱을 선택할 것인가, 등을 선택할 것인가. 집중은 태생적으로 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 가지를 정하면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갈등에 가장 편한 대처는 둘 다 포기하는 것이다. 진은 들고 있던 바벨을 내려놓는다.


- 물 좀 마시고 올게요.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 그녀 옆에서 런지 동작을 하는 다른 회원에게로 몸을 돌린다. 진의 등에서 회수된 그의 관심이 옆자리 회원의 대퇴근에 꽂히는 동안, 그녀는 정수기에서 최대한 천천히 종이컵을 뽑아 물을 마셨다. 진의 눈길은 트레이너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다. 그와 함께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의 몸은 현실감이 없었다. 190cm 가까운 키에 몸무게가 100kg도 넘는 거구라는 점도 그렇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큰 몸뚱이에 지방이 거의 붙어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의 몸은 오로지 뼈와 근육과 피부 세 가지로만 구성된 것 같았다. 근육과 피부 사이에 응당 넉넉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할 지방층도 없었다. 모든 근육은 얇은 피부 아래서 또렷하게 굴곡을 드러낸 채 제각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첫날, 체지방률 47%라는 숫자가 찍힌 진의 인바디 결과를 보며 트레이너는, 흠…이라는 소리가 들릴 법한 표정을 지었다. 2를 4로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그는 마침내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엄격한 눈빛으로 진의 몸을 훑었다. 정찰병으로부터 적군의 가공할 위력을 보고 받은 장수처럼, 그의 표정에는 어떤 투지마저 번뜩였다.


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몸을 가까이서 실물로 관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광물질이 발산하는 미묘한 빛이 났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그의 체지방률은 7%라고 했다. 질료가 다른 조각상처럼 그의 몸과 그녀의 몸은 서로에게 놀라운 이질감을 안겨 주었다.




진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데에는 식상한 대의명분과 약간의 과시욕, 그리고 결정적 계기 하나가 작용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그녀가 양식 있는 현대인의 자기관리 수단으로 운동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평범한 대의명분에 속했다. 무엇이든 대충하는 것은 못 참는 성격이어서, 돈이 좀 들더라도 운동도 전문가에게 제대로 배워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은 부연이었다.


대다수의 중년은 제 몸에 큰돈을 쓰지 않는다. 그들이 버는 돈은 주로 병약한 부모의 봉양이나, 한창 돈 잡아먹는 자식들 양육으로 증발한다. 정해진 요일마다 따박따박 개인 레슨을 받으며, 달마다 수십만 원을 호기롭게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40대 직장인 중 몇 %나 될 것인가. 산책, 조깅, 등산처럼 옷 몇 벌만 사면 그만인 경제적 방법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트레이너 딸린 고가의 운동을 시작한 것은 약간의 과시욕이 작동한 결과였다.

네일숍, 피부관리숍 정기회원 카드가 꽂힌 그녀의 지갑에 피트니스센터 회원증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손이나 얼굴을 맡기고 편하게 쉬다 오면 그뿐인 다른 곳과 달리, 피트니스 센터는 진의 격한 동참을 요청했다. 그런 이유로 결정적인 그날이 있기 전까지 운동은 진의 삶 속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옵션이었다.


그날, 그녀는 업체 미팅 때문에 외근을 나갔다가, 선릉역 출구 앞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쓸데없이 화창한 봄날이었다. 예상보다 맹렬한 봄볕에, 기미가 늘고 있는 얼굴을 서류 봉투로 가리며 지하철을 향해 종종걸음 치던 중이었다. 입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자외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남자는 오후의 햇살에 몸을 맡긴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즐거워 보였다. 정중하고 날카로운 슈트와 잘 표백된 셔츠. 그는 젊었고 알 수 없는 빛이 났다.


남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진은 자신의 노골적 시선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음과 달리 도무지 그에게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진이 남자의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 갑자기 통화를 하던 남자가 진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는 어금니까지 보이도록 웃으며 그는 진에게 알은 채 하는 눈인사를 건넸다. 당황한 그녀는 황급히 지하철역으로 숨어 버렸다.


그는 어째서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일까? 회사로 돌아오는 내내 진은 그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너무 빤히 쳐다보니까 지인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종종 있는 일이다. 진도 가끔 사무실 근처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가 있었다. 눈빛으로 말을 걸어오는 낯선 사람들은 알고 보면 언젠가 떼 지어 명함을 교환한 거래처 직원일 때가 많았다. 그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대놓고 아는 얼굴을 하는 진에게 급한 대로 친근한 화답을 던진 뒤 나중에 기억을 뒤적거릴 속셈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진의 정체를 떠올리는 데 실패할 테고, 그 일은 곧 잊힐 것이다.


진의 사정은 달랐다.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완벽한 미남과 마주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희귀한 일이다. 더하여 그 완벽한 미남이 너그럽게도 완벽한 미소까지 베풀어 주는 일은 몇 겹의 행운이 연달아 이어진 기적과 같았다. 그날 진의 머릿속에는 그의 스틸 샷이 저장된 갤러리가 생성되었다. 이후 며칠 동안 그녀는 일하는 드문드문 그 사진들을 꺼내어 다시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진은 자신이 더 이상 젊고 아름다운 남자의 추파를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고 벼락과도 같은 슬픔에 휩싸였다.


마흔을 넘긴 이후부터 소개팅을 나갈 때마다 부쩍 상대방의 외모에 좌절과 분노를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고만고만하게 젊었던 20대가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늙어간다. 작년, 페이스북을 타고 들어온 먼 동창이 권하여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간 적 있었다. 희미한 기억과는 생판 다른 얼굴들이 하나둘 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 모이고 나니 목적이 묘연한 집단처럼 늙고 젊음이 제각각이었다. 버스에서 고등학생한테 자리를 양보받았다며 낄낄거리는 백발의 부장님부터, 미니스커트에 납작한 아랫배를 눌러 담고 긴 생머리를 나풀거리는 노처녀 동창까지, 외모의 겉보기 등급은 우주의 별처럼 넓게 퍼져 있었다. 그게 40대였다. 청년으로도 노인으로도 위장 가능한 나이.


소개팅에 나타난 남자들은 유독 노화와 관련해서는 부지런한 편에 속했다. 몇 번 크게 탄식하고, 몇 번 심하게 자책한 후 진은 공식적으로 독신을 선언했다. 직장은 한결같이 분주했고, 사람들의 들고남이 빈번했기에 어차피 그녀가 공식적으로 결혼 의사를 공표한다고 해도 귀 기울일 사람이 별로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어느 봄날 생면부지의 선릉역 미남이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살던 진에게 마른벼락을 내리쳤다. 찰나의 만남이었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이상한 나라에 추락한 앨리스처럼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루하게 뻗은 도로와, 자신의 누추한 몸과, 그리고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며 봄 햇살 속에서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그로테스크한 콜라주처럼 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싹텄다. 이 세상에 잘생긴 남자들은 다 어디에 모여있는 것일까? 일주일 후 그녀는 피트니스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센터 벽에는 트레이너의 전신 프로필이 배너로 걸려 있었다. 주인공들은 구석구석 힘들여 만든 근육이 골고루 부각될 수 있도록 지능적으로 힘을 쓰고 있는 표정이었다. 사진 아래쪽에는 루이, 지니, 데니, 캐빈 등속의 이국적 이름이 적혀 있었다. 외국인이었나? 잠깐 헷갈린 진이 다시 한번 얼굴을 꼼꼼히 살폈지만, 역시나 철민, 용호, 영훈, 승택 등의 이름이 더 어울릴 법한 마스크였다. 사찰문의 사천왕상처럼 늘어선 그 사진들을 진은 오래도록 관찰했다.


진은 그를 골랐다. 이목구비의 섬세함이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는 타이탄족이 되살아온 것 같은 몸에, 누군가가 포토샵으로 다른 얼굴을 가져다 붙인 듯, 몸과 얼굴이 영 따로 노는 형국이었다. 야수의 몸에 얹힌 왕자의 얼굴, 아니 야수의 몸을 지닌 미녀의 얼굴에 더 가까웠다. 움직이는 것이 싫어 등산도 가본 적 없던 진이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극단적 수난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누군가의 관심과 독려가 필수적이었다.


- 회원님 데드리프트는 웨이트 운동의 꽃이라 할 수 있어요. 기본 중의 기본이죠. 기본 운동이 다 그렇듯이, 보기에는 엄청 쉬워 보여요. 그냥 바닥에 놓인 기구를 잡고 조금, 많이도 아니고 조금 들어 올리다가 내려놓으면 끝. 참 쉽죠? 하지만 보기랑 다르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운동인지 아시게 되면 깜짝 놀라실걸요? 안 건드리는 근육이 없거든요.


그는 자신을 데니라 소개했다. 우람한 몸집에 비해 데니의 설명은 상냥하고 찬찬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수록 자신에 대한 회원들의 감탄과 존경도 비례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괜히 어려운 말로 허세를 부려 무식한 회원들의 기를 죽이려는 전략은 초짜들이나 하는 얕은수였다. ‘대둔근과 슬곽근, 술굴곡근이 주동근으로 작용하고 척주기립근과 지신근, 비복근이 협력근으로 작동하게 될 테니 코어 각 근육의 기작에 신경 쓰시면서 천천히 내려오세요.’ 이따위로 잘난 척을 해 봐야, 회원들은 뉘 집 개가 짖느냐는 표정으로 쳐다볼 것이 뻔했다.  


- 데드리프트 하나만 제대로 해도 열 가지 운동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보실 수 있어요. 상반신 탄력을 잡아줘서 여성들은 탄력 있는 뒤태를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에요. 게다가 큰 근육을 써서 운동하기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크고, 지방 분해에도 좋아요. 다이어트에도 굉장히 도움이 되는 운동이죠. 단! 이제부터 제가 설명하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꼭 지켜주셔야 제대로 된 운동이 된다는 것만 명심해 주세요.


그는 굵은 쇠기둥 하나를 진의 발아래 두고 설명을 시작했다. 말이 기본 운동이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주의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설명을 마치고 시범을 보이는 그의 손에 20kg 바벨이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가뿐하게 들린다.


- 운동 이름이 이상하죠? 여러 가설이 있는데, 결국은 뻣뻣하게 죽은 듯 바닥에 고정된 바벨을 들어 올리는 운동이라는, 대충 그런 의미예요. 무거운 바벨을 들다가 힘들어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요. 하하하 근데 데드리프트를 열심히 하시면 지방이 쫙 빠지고, 그 자리에 근육이 붙으니, 사실은 사람을 죽이는 운동이 아니고 살리는 운동이 되는 거죠.


데드리프트에 담긴 철학적 깊이에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진의 표정을 보며, 데니는 재치 넘치는 자신의 해석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은 설명하는 중간에도 백설기에 박힌 콩처럼 주기적으로 미소를 보태는 데니의 신비로운 습관에 반하여, 정작 데드리프트에 대한 설명은 귓등으로 흘리는 중이었다. 을 마친 데니는 진의 발 앞에 바벨을 내려놓고 시작해 보라는 손짓을 한다.


- 말씀드렸듯이, 운동하시면서 어디에 힘이 들어가고 있나 스스로 의식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안 다치거든요. 간단해 보이지만 아주 많은 근육이 함께 움직이는 게 느껴지실 거예요. 자 여기에 힘을 주면서 시작하실게요.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정말 종합선물 세트죠?


그는 양발을 벌리고 무릎의 각도를 맞추고 있는 진에게 다가가, 어깨, 등, 허리, 다리, 무릎을 차례로 콕콕 찔렀다. 힘을 주라고 그의 손가락이 찌르고 지나간 모든 곳에서, 동시에 힘이 빠져 버렸다. 바벨이 바닥으로 퉁 떨어졌다. 민망할 때는 방법이 있다.


- 물 좀 마시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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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시작했어요. 최고의 경쟁력은 건강한 몸이죠.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을 부르고, 건강한 야근 생활도 보장합니다~

#데드리프트, #미남 트레이너, #저녁 운동, #토 나와요, #자기관리, #몸짱 변신

- 팀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 못하시는 게 뭐죠?
- 몇 년째 결심만 하고 있었는데 나도 내일 당장 등록할 테야.
- 운동해서 야근하는 팔자라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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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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