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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Sep 02. 2023

소설-데드리프트 3.

#3. 스쿼트




스쿼트


싫은 것들 사이에도 소고기처럼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진은 운동을 하며 실감했다. 좋은 것과 싫은 것으로 대담하게 양분되기에, 삶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싫은 것들은, 그냥 싫은 것, 조금 싫은 것, 몹시 싫은 것 등으로 세분되어 있었다. 운동은 죄다 싫었지만, 스쿼트는 그중에서도 최상 등급, 소고기로 치면 한우 +++, 즉 끔찍이 싫어하는 부류에 속했다.


데니의 수업 방식은 그날 단련해야 할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다. 오늘은 하체, 어떤 날은 코어, 다른 날은 복근, 이런 식. 그날 데니에게 지목된 부위는 딱 죽지 않을 만큼 근육이 너덜너덜해진 후에야 그의 마수에서 풀려난다. 수고하셨습니다. 그의 마무리 인사는, 백만 년 기다렸던 짝사랑의 입에서 마침내 터져 나온 수락의 말보다 더 황홀했다.


고통이 강했던 만큼 해방감도 대단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심장이 터지거나 근육이 끊어져 죽으면 산재 처리 받을 수 있나' 법 조항을 떠올려도 보고, 요가나 명상처럼 우아한 대안을 놔두고 어쩌다 이런 야만적 선택을 한 건지 자신의 어리석음에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공연히 차가운 매트리스 위에서 개죽음당하기 전에 오늘을 끝으로 이 짓과도 이별하자 결심도 하지만, 막상 운동이 끝난 직후에는 감기약을 삼킨 듯 나른한 쾌감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비록 다음 날 아침이면, 밤사이 형용할 수 없는 근육통이 기습했음을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실감한다 할지라도, 막 운동이 끝난 그 시간만큼은 난전을 승리로 이끈 쾌승 장군의 호연지기가 진의 가슴속에 벅차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하체운동은 힘들었다. 같은 근육통인데 어째서 허벅지 근육을 덮치는 통증은 다른 곳과 급이 다른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데니는 매 시간 그날 단련해야 할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는데, 하체 운동을 하는 날이면 목소리에 한층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무엇을 시켜도 엉망인 진에게 있어서, 가장 엉망진창인 운동이 스쿼트였기 때문이다. 엉망진창에도 등급은 있기 마련이었다.


- 숨을 마시며, 투명의자에 앉는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엉덩이를 뒤로 빼세요. 배와 등 전체에 힘을 주고, 수직으로 내려간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무릎은 발끝 앞으로 넘어가면 안 돼요. 무릎이 앞으로 넘어가면 부상이 생길 수 있어요. 무릎 방향이랑 발끝 방향은 맞추라고 말씀드렸죠? 이것 봐, 이것 봐, 또 무릎이 모아졌네요? 3초 버티시고 천천히 숨 내쉬면서 올라오실게요. 발로 바닥을 누르면서 천천히. 어헛, 그렇게 잽싸게 발딱 일어서면 안 된다니깐요. 회원님 엉덩이에 스프링이라도 달렸나요? 하하하 자, 이렇게 20번씩 세 세트 하실게요.


스쿼트는 기만적인 운동이었다. 잡아당기거나 밀어야 할 머신도 없었고, 숨차게 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무거운 쇳덩이와 씨름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 그만이었다. 저게 운동이 되나? 겉에서 보면 장난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얕잡아 보고 자신 있게 덤벼들었다가 데니에게 이것저것 지적을 당하고 난 후, 진은 이 단순해 보이는 동작에 까다로운 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로 다리와 허리와 발이 만들어 내는 각도에 관한 원칙이었다. 엉덩이를 한 번 뒤로 빼려 해도 지켜야 할 각도가 엄격했다. 그 원칙을 무시하면 쉽고 편한 운동인데, 시키는 대로 각을 맞추자마자 거짓말처럼 고통이 급습했다. 도 아니면 모였다. 자연히 진의 몸은 본능이 요구하는 대로 통증 없는 경로를 따라 ‘앉아 일어서’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데니는 그것은 스쿼트가 아니라며 지적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 근데 이게 되기는 되는 거예요? 이 각도로 허리를 펴고 엉덩이를 뒤로 빼는데 몸이 어떻게 버텨요? 당연히 뒤로 넘어가지.


연신 엉덩방아를 찧는 진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멀리서 보면 몸개그 연습 중인 초보 개그맨 같기도 했다. 탈의실에 맡겨 두었던 피곤함이 로커를 박차고 뛰어나와 주인 품에 안겼다. 애당초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의자 뒷다리 두 개를 뽑아 버린 후 앞다리만으로 세워보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 자, 회원님 보세요. 이렇게 하시면 돼요. 되잖아요. 연습하시면 하실 수 있어요. 하하.


그가 사뿐하게 시범을 보였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하게, 그의 우람한 상체가 90도 각도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라왔다. 심지어 얼굴에 미소까지 머금고.


그 미소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하면 되지. 설마 알만한 사람이 되지도 않는 것을 하라고 했겠어? 뭐든 의심의 마귀가 씌워 분석하고 따지기부터 하는 게 자기의 병폐라며, 진은 걷잡을 수 없는 자책의 에너지를 모아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는다. 그러자 놀랍게도 자세가 나왔다. 허벅지와 등줄기에 색다른 아픔이 시작됐지만, 그가 칭찬과 격려를 커다란 미소에 실어 날리는 바람에 고통이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역시 뭐든 똑바로 하려면 일단 배워야 한다. 비슷한 건 가짜가 많다. 앉았다 일어서는 이 간단한 동작도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야만 제대로 된 명품이 탄생하는 것이라며 그녀는 슬쩍 자신의 성공에 거창한 의미를 끌어다 붙인다.


- 회원님 잘하셨어요. 이렇게 잘하시면서 괜히 엄살은… 회원님은 뭐든 가르쳐주면 금방 배워서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니까. 머리가 좋으신가 봐. 난또 머리 좋은 사람한테 그냥 막 반하는데 어떡해요? 하하하.

 

그가 ‘반했다’고 했다. 그의 말이 알퐁스 도데의 별처럼 진의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이런 기분이라면 스쿼트쯤은 오락실의 매 맞는 두더지보다 명랑하게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데니 선생님, 제가 오늘 허리가 넘나 아픈데, 이렇게 운동해도 될까요?


모처럼 진에게 집중되었던 데니의 다정한 시선을 교태 가득한 목소리가 낚아챈다. 진의 솟구치는 운동 욕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오늘의 수업 파트너였다. 이 센터의 수업 방식은 다른 곳의 1:1 PT와는 조금 달랐다. 가격을 절반으로 줄인 대신, 트레이너가 두 명의 회원을 동시에 번갈아 가르친다. 어차피 코칭을 받고 나면 운동이야 자기가 할 노릇이기에, 부담스러운 회비를 반으로 낮춰서 많은 회원을 모집한다는 것이 이 센터의 전략이었다. 매일 모르는 사람과 파트너가 되어 한 공간에서 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만 감수하면, 회원의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오늘의 파트너는 유달리 엄살이 심했다. 몸 어디를 둘러봐도 살이라고는 붙어 있지 않은데, 운동을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여성 회원이었다. 그녀는 오늘 어깨 삼각근을 단련하는 날인 것 같았다. 1kg짜리 숟가락만 한 아령을 들고 힘들어 죽겠다는 푸념을, 10분째 늘어놓는 중이었다. 두 명이 한 사람을 공유하며 수업을 받는 대신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매너도 분명했다. 트레이너가 한 회원에게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는 끼어들거나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규칙 따위는 아랑곳 않는 무법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오늘 진이 만난 파트너가 그랬다. 그녀는 트레이너의 관심이 진에게 오래 동안 머무는 꼴을 못 봤다. 대략 1분을 넘어가면 바로 태클이 들어왔다.


- 데니 선생님, 이거 세 세트 다 했는데, 이상하게 어깨는 아무렇지도 않고 팔만 아픈데 뭐가 잘 못 된 거 아니에요? 아이 난 왜 뭘 해도 제대로 되는 게 없지? 힝힝


입으로는 투덜거리며 눈꼬리는 웃고 있는 그녀가 하얀 강아지처럼 귀여웠다. 데니의 관심은 강한 자석에 이끌리듯 그녀에게로 향한다.


- 제대로 하는 게 없다뇨. 무슨 말씀을! 잘하고 계신 거예요. 회원님. 어디 다시 한번 해보세요. 어깨 높이까지 천천히 올렸다가, 힘주면서 천천히 내린다. 그렇지! 자세 좋습니다! 이제 어깨깡패로 거듭나시겠는데요? 하하하

- 어깨깡패래. 아우 웃겨.


선남선녀의 웃음소리가 물결처럼 찰랑대는 그 옆에서 진은 우직하게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상체를 내릴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다. 자신의 고통과 상관없이 마냥 즐거워 보이는 둘의 모습에 고통에 버금가는 외로움도 따라왔다. 하지만 견디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진의 시간은 늘 버티기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본교가 지방으로 이사를 가버려 졸지에 지방대 신분이 되어 버렸으나, 그녀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한강에 인접한 노른자위 땅에 위치했던, 배치표에서 인서울 대학의 한자리를 차지했던 모 대학이 그녀의 모교였다. 고향이었던 경기도 소읍에서 진은 중학교 시절까지 수재 소리 들으며 최상위권의 명성을 날렸다.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였지만, 어차피 열 명만 모여도 등급은 나눠지기 마련인지라, 내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학생들은 우물 안 천재로 우쭐한 유년을 보내게 된다.


진은 그 명성을 발판 삼아 안양 도심에 위치한 여고로 진출하여 일찍부터 홀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도시의 학교는 사교육 청정지역이었던 고향의 학교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육열이 뜨거웠기에, 진의 성적은 곧 최상위권에서 중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첫 성적표의 충격에 한 한기 정도 방황하기도 했지만, 부모와 떨어져 지낸 탓에 대상 없는 반항도 곧 무색해졌다. 고3이 되자 현실을 직시한 진은 ‘머리가 나쁘면 노력으로 극복한다’는 쪽으로 방침을 수정하고 쌍코피 터져가며 불면의 일 년을 보냈다. 그 결과 그녀는 찬란한 대학생활의 포문을 마침내 서울에서 활짝 열게 되었다. 전직 엄친딸로서의 명예도 조금은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동기들과 상견례를 마친 직후, 진은 그들과 자신이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전국에서 몰려온 동기들은 출생지는 제 각각이었지만, 지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한통속이었다. 진은 그들과 자신 사이에 절망의 바다를 만들었고, 스스로를 그 바다 건너 섬에 유배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재수에 돌입하고 싶었으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여 일보후퇴보다 일단전진의 전략을 (눈물을 삼키며) 선택했다. 그저 어서 빨리 졸업하여 더 큰 세상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수준 높은 벗들과 합류하게 되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었다. 헌데 4학년 즈음에 진의 본교가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발표가 났다. 진은 자신의 깊은 어디에서 마지막 기둥 같은 것이 우르르 붕괴되는 소리를 들었다. 졸업식까지 진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굴욕감과 싸워가며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


진은 무남독녀 외동딸이었으나, 오냐오냐의 성장환경은 전혀 없었다. 형제자매의 유무로 귀천이 결정되는 것은 기본적 경제력이 전제되어 있을 때 유효한 기준이다.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진의 엄마는 평생을 육체노동으로 바빴다. 수더분하고 정에 약한 아버지는 단순한 일을 지루함 없이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으며, 깜짝 놀랄 만큼 적은 급여에도 별다른 불만을 갖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무 살을 겨우 넘긴 나이에 진을 낳은 엄마는, 여자의 모성이 출산과 함께 자동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학파의 대표적 증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과 본능에 충실하게 소통했다. 몸이 피곤하면 신경질을 부렸고, 좋은 것은 먼저 먹고 싶어 했으며, 연탄갈이나 손빨래처럼 힘든 집안일은 초등학생이던 진과 공평하게 나눴다. 그녀의 엄마는 결벽증도 심했다. 자기가 정한 위치에 모든 집안 사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했고, 아무리 피곤해도 청소를 거르는 일은 없었다. 어린 진이 천방지축 시절을 거치며 집안의 청결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쌍욕과 매질을 세트 메뉴로 선사했다. 친엄마를 찾겠다며 열 살 무렵 가출을 시도한 진은, 해가 질 때까지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자 누가 봐도 엄마를 꼭 빼닮은 자신의 생김새를 떠올리며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엄마는 일터에서 돌아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진이 엄마로부터 가혹한 학대를 받았다기에는 애매했다. 진의 엄마는 신앙심이 투철했고, 자신의 짧은 가방끈에 대한 부끄러움이 많았으며, 다른 집 부모에게는 조금씩 스며있기 마련인 권위주의가 없었다. 푸짐한 욕사발과 함께 구둣주걱이나 파리채가 진의 등짝이나 종아리를 다녀간 후에는, 무식하게 때려서 미안하다는 쌈박한 사과가 이어졌다. 뭐랄까, 엄마의 진에 대한 태도는 냉혹한 악랄함이라기보다 야생적 홀대에 가까웠다.


먹고 싶은 것은 참았고, 갖고 싶은 것은 포기했다. 간절하게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명언은, 애들의 소원 정도는 자식 하는 것 봐서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형편의 집안에나 허락된 낭만적 허세에 불과했다. 진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호락호락하게 그녀에 손에 주어진 적은 없었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한두 명에게서 시작되면 페스트처럼 급성으로 전교생에게 번지고, 그것이 없는 아이에게는 죽음의 고통에 맞먹는 소외감을 선사하는 유행의 아이템, 리바이스진이나 나이키 운동화, 이스트팩, 대강 그런 것들.


그 시절의 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은 그 소외감이었다. 집안에는 늘상 공기 속의 질소처럼 높은 함량의 빈곤이 자욱했다. 모든 집기들은 오래되었거나 후졌다. 진의 엄마가 아무리 쓸고 닦아도 소용없었다. 초겨울이 시작되어 옷장에서 꺼낸 겨울옷에는 반지하 방에서 여름을 보낸 곰팡이의 냄새가 스며 있었다. 새로 산 옷조차 그 반지하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쉽게 방을 닮았다. 금세 목이 늘어났고, 무릎이 나왔다. 어두운 그 방에서는 어떤 사물도 빛나지 않았다. 부모의 일상 속에 진을 위한 시간과 돈은 얼마 할당되어 있지 않았다. 진은 유리 없는 온실에 피어난 잡초와 같았다. 보살피는 이 없이도 잘 자랐다. 아무도 진의 성적을 묻는 법 없었지만, 학원, 과외 하나 없이 꾸역꾸역 공부해 마침내 서울에 뿌리를 내렸다.     


- 회원님 잘하고 계시네요. 말씀드렸듯이, 튼튼한 하체는 정말 중요해요. 늙어서 걷지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젊었을 때 하체를 단련해 두면 오래도록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인생이 허무한 게 어디 좋은 데를 가고 싶어도, 젊을 때는 몸이 되는데 시간이 없고, 늙으면 시간은 되는데 몸이 안 따라 준다니까요? 하하하.


데드리프트를 할 때 코어 근육이 몸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우겼던 일은 생각도 나지 않는 듯, 데니는 하체운동을 위한 찬미송을 4절까지 부를 기세였다. 중간에 강아지상 회원이 데니의 관심을 가로채고자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어쩐 일인지 데니는 진에게 고정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응석을 담은 콜이 수 차례 묵살되자 강아지상 그녀도 기분이 상한 듯 잠자코 자신의 운동에 집중했다. 데니의 마음을 확인하자, 포기하려던 진의 의지에 다시 불이 붙는다.


스쿼트는 다른 어떤 운동보다 진의 삶을 닮아 있었다. 버틸 수 없는데 버티기.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고,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허벅지와 종아리를 딴딴하게 만든 채, 저 먼 곳을 바라보기. 비대한 몸에 마론인형처럼 가는 다리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노파들의 얼굴이 떠올라 진은 절로 고개를 저었다. 하체가 튼튼해야 결국 이 지독한 외로움도 짊어지고 걸을 수 있다.


- 정말 이상하네요. 이렇게 꼬박꼬박 운동을 나오시는데, 체지방률이 전혀 줄지 않았어요. 줄기는커녕 더 높아졌네요. 인바디가 망가졌나? 혹시 식단은 잘 지키고 계세요?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제가 짜드린 거요.

- 그럼요. 회사에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걸요. 아무래도 이상체질인가 봐요. 죄송해요.

- 아이쿠 죄송하다니요. 회원님. 제가 죄송하죠. 그래도 자세는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이렇게 금방 자세가 잡히는 회원도 저는 처음 봤어요. 다음 시간부터는 유산소 운동을 조금 강화할게요. 걱정 마세요. 세상에서 제일 ‘정직한 것’이 우리 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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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꿀꿀하고, 덩달아 기분도 울적하고, 몸은 피곤한데, 운동가는 날…
게다가 오늘은 하체운동 하는 날…
하루쯤 땡땡이쳐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악마가 내 귀에 속삭이는 날…
그래도 나 운동하러 왔어요~
자세가 정말 좋다나 뭐라나.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았다나 뭐라나.

#스쿼트 힘들어요, #의지의 한국인, #닥치고 운동, #이러다 몸짱

- 팀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 하루쯤 땡땡이쳐도 된다는 데 한 표!
- 진! 왜 우울해? 무슨 일 있어?
- 뭘 해도 이렇게 잘하시기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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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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