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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Oct 22. 2024

[소설] 눈부신 세계_채아의 몸 (3)

<채아의 두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43




<세 번째 이야기>

박채아_ 前 아이돌 연습생, 172cm 48kg, 25세, 모델, 비서, 해외 항공사 승무원 지망생






무대 위의 규리는 사만다(Samantha, 뮤지컬 극 중 이름)였고, 사만다가 규리였다. 절정으로 치닫는 스테이지 위, 사만다 그 자체인 규리의 모습에 채아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쟁쟁한 대 선배들 속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규리의 존재감, 무대 장악력, 짙은 분장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예쁜 얼굴과 완벽한 비율의 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는 퍼포먼스였다.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했고 박수갈채는 이어졌으며 조명은 점점 어두워졌다. 채아는 그녀의 시선에 잡힌 그 모든 현상들에서 점점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속한 세계와 그 순간을 온몸으로 껴안고 경애하던 규리의 모습의 모습만이 채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규리에게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되기 원하는지, 그리고 그걸 위해 기꺼이 포기해야 할 것과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한 사람만이 가진 아우라가 있었다. 채아는 규리가 사무치게 부러웠다.


두터운 분장을 한 겹씩 벗겨내니 무대 위 여운이 채 가시지 않는 듯 살짝 상기된 규리가 보였다. 저녁을 먹자는 규리의 제안을 간곡하게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참 동안을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꿈과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주도적인 인생, 거기에 운까지 따라와 주는 멋진 삶이란 바로 규리의 인생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은 생각에까지 머물자 채아는 조금 씁쓸해졌다. 동료로서, 후배로서 규리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혹은 동시에 무대 위의 눈부신 규리의 모습과 자신의 처지가 자꾸 오버랩되었다.     






채아의 세상은 다정하고 친절했다. 엄마, 아빠의 장점만 쏙쏙 빼닮은 청순하고 고운 얼굴, 큰 키에 날씬한 몸으로 태어나고 자란 채아는 성정도 온화하고 선하여 그녀 곁에는 늘 사랑이 가득했다.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운 외모로 주목받던 채아에게 연예계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그녀는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갔다. 뒤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꿈을 위해 전념했던 지난 5년간의 연습생 시절, 아이돌 데뷔를 위한 연습도 학교 공부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열심히도 살았다. 


동네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던 채아의 외모는 아이돌로서 매우 유리한 조건은 분명했지만, 독보적인 위치까지는 아니었다. 채아가 나고 자란 동네의 자랑인 만큼, 그 옆 동네의 자랑 수지, 그 뒷 동네의 보물 정희가 있었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모두 그녀처럼 예쁜 아이들이 즐비했다. 거기에 예쁜 외모는 기본, 넘치는 끼, 다재다능한 실력에 내로라하는 집안까지 말로만 듣던 엄친딸과 엄친아가 널린 세상 한 복판에 채아가 있었다. 




규리도 그런 엄친딸 중 한 명이었다. 모공하나 없는 찹쌀떡 같은 뽀얀 피부에 한국인에게서는 거의 보기 힘든 연한 갈색과 초록빛 섞인 매력적인 눈동자의 규리가 처음 만을 걸어왔을 때 채아는 인형이 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주위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규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규리의 엄마는 전직 발레리나 출신의 H대 무용과 교수로 최근에는 무용수들 발굴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발탁되었으며, 아빠는 중견기업의 대표로 규리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고 했다. 규리의 언니마저 범상치가 않았는데 엄마의 뒤를 이어 재화 예술고등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며 서울발레콩쿠르에서 최연소로 대상을 수상한 실력자라고 했다. 너무 완벽한 조건이라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이었다. 자신의 조건이 초라하게 느껴진 건. 세상에서 채아를 가장 사랑하고 지지하고 따뜻한 품과 조언으로 힘들 때마다 힘을 주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계시는 부모님의 직업도 부끄러웠다. 그런 감정을 느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눈부시게 찬란했던 채아의 세계는 없어졌다. 규리를 시작으로 탁월한 조건과 훌륭한 배경을 가진 이들을 마주할 때면 열등감이 느껴졌지만 채아는 이런 감정들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대한 집중했다. 이미 충분히 과도한 연습량이었지만 채아는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반반한 외모로만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미모와 함께 다른 매력도 갖춰야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학교 공부는 물론, 채아의 오랜 꿈인 해외 진출을 위해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까지 공부를 해오고 있었다.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채아는 안과 밖을 단단하게 만들어갔다. 






아이돌 데뷔는 잠정적으로 무산되었다. 단 하나의 꿈을 향해 열정을 다해 매진했던 시간들이 벌써 6년이 다 되어갔다. 22살,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닫기에는 조금 이르거나 혹은 조금 늦은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절망하고 비관하며 살아가기에는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to be continued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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