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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Nov 04. 2024

[소설] 눈부신 세계_채아의 몸 (4)

<채아의 세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44




<네 번째 이야기>

박채아_ 前 아이돌 연습생, 172cm 48kg, 25세, 모델, 비서, 해외 항공사 승무원 지망생






연습실과 사무실 로커에 잠들어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지난 6년 동안의 추억들이 스며 나왔다. 두 번째 데뷔를 준비하며 샀던, 지금 보니 살짝 아니 꽤 촌스러운 액세서리들을 보자 연습실 안에서만 멈춰 있던 세월이 실감 났다. 인생에는 노력과 열정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진실과도 마주했다. 뼈 아픈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슬프고 비참했다. 좌절했고 분노했다. 왜 나한테만 이렇게 어려운 걸까? 왜 우리만 번번이 무산되는 걸까?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종국에는 공허한 원망만이 남았었다. 마음을 다잡아 봐도 그때뿐이었다. 갈팡질팡한 마음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채아야, 이번 주 금요일에 일정 있어?”

연아 언니였다.


“17일 말하는 거지? 잠깐만. 그날 뭐 없어.”

“오, 좋다. 예전에 우리 양평에 있던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던 거 기억나? 엄청 추웠던 날.” 

“당연히 기억나지. 우리 그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비 받아서 곱창 먹으러 간 날이잖아. 어찌 잊겠어?”

“맞네. 얼굴 부으면 돈 깎일 수도 있다면서 촬영 전날부터 쫄쫄 굶고. 촬영 끝나고는 완전 무장해제돼서 마지막에 나 바지 지퍼 풀고 먹었잖아. 크크크.” 

“진짜 재밌었어, 그날.”

“그때 총괄하신 한 실장님이 이번에 의류 브랜드 론칭하는데 모델들 구인 중인가 봐. 나한테 추천해 달래서 너 추천했거든.”

“진짜?"

“잘 되면 좋겠다. 거기서 오늘 중으로 연락 갈 거야. 나도 금요일에 참석 예정이야. 아침에 만나서 같이 가자.”

“언니도 정신 없을 텐데 나까지 챙겨주고 정말 고마워. 감동이다.”

“합격해서 돈 받으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상상만으로 행복하다. 언니 먹고 싶은 게 생각해 놔. 내가 쏠게.”

“우리 벌써 돈 받은 거야? 흐흐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담당자들은 채아 특유의 맑고 싱그러운 페이스와 오랜 기간 연습생 생활로 다져진 성실한 태도를 높게 평가했다. 채아는 서브 모델로 결정되었다.  


“진짜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해요!”

그 후로도 몇 번의 '정말'과 '감사합니다'를 말한 뒤 한 실장과의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내 자리 지키기에도 모자론, 아니 쟤 자리가 내 자리가 되도록 빼앗아야 살아남는 이 척박하고 냉정한 세계에서 기꺼이 손을 내어준 연아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연아의 목소리에 채아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말랑하고 가득한 충만함과 행복감을 가슴속에 꼭꼭 담아 두었다. 연아 언니가 베푼 따스한 마음, 잊지 말고 꼭 보답하리, 채아는 다짐했다. 



감각적이고 위트 넘치는 한 실장의 브랜드는 론칭 후 점점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었고, 화보에 실린 뉴 페이스의 채아를 찾는 곳도 늘었다. 채아의 모델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850,000원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도 통장에 잔고가 남았다. 6년 만의 일이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확인하는 일이 즐거움으로 변해갔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소호 한남(칵테일 바)에서 연아를 기다리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 끝이 아니야. 연습생으로는 끝났지만 내 인생이 끝난 건 아니야. 2막이 시작되는 거야. 이제 스물두 살인데 왜 그렇게 늦었다고,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쫓기듯 달려왔을까? 왜 다른 사람의 속도에 나를 끼워 맞추려 했을까? 뭐가 그리 조급했을까?



파도 위를 서핑하 듯 삶의 변화를 파도로 받아들이고 수용하자 마음먹었다. 타의에 의한 예기치 못한 변수들로 상황도 환경도 달라졌지만 이런 변화들이 어쩌면 기본값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채아는 밖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채아 씨, 노블인더하우스 파티에 지원했어요?”

“아니요. 그런데 노블인더하우스가 뭐예요?”

“소호 백화점에서 매년 개최하는 VIP만을 위한 패션쇼예요.” 

“처음 들어요.”

“이번에 오디션 진행한다니 지원해 봐요."

“네. 감사합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 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일주일 후, 노블인더하우스 쇼에 발탁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스튜디오, 화보, 지면, 광고 등 지난 일 년간 꽤 많은 촬영과 패션쇼에 섰지만, VIP만을 대상으로 하는 쇼는 완전히 또 다른 세상이었다. VIP들을 가까이 보며 채아는 이런 세상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잘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꿈이 그녀 안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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