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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Oct 16. 2016

가을의 시

서른두 번째 지난주




이 계절


 어지간히 어색한 모양이다. 시작마다 날씨 얘기다. 마침 옷장의 반대편 문을 열어젖히려다, 태풍이 불기에 이른가 하던 차였다. 지난주에 닿아서야, 구름마저 자취를 감춘 이 계절의 하늘을 보고는 왔구나 했다. 어느새 바람이 차가워지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민다. 그러다 한낮이면 볕이 제법 따갑기도 하다. 속담에도 ‘늙은이 기운 좋은 것과 가을 날씨 좋은 것은 믿을 수 없다.’ 했단다. 어쩔 수 없이 이 계절이라는 것은 과정의 성격을 하고 있는 탓이겠다. 추워질 거면서, 고민하는척하느라 애쓴다 싶다. 다 아는데……. 


 마침 지난주에는 변덕스러운 이 계절의 생김이 온전히 다 들어있던 것 같아, 이즈음에 이 계절의 시들을 들어봄 직하다 싶었다. 먼저 가을의 저녁寺로 간다.










가을 저녁寺 


가을 저녁寺 
                                        박정대 



나는 걸어서 가을저녁寺에 당도합니다

한 사내가 물거울에 자신의 낯을 비추어보며 추억을 빨래하고 있는 가을 저녁입니다

잉걸불처럼 타들어가는 개심사 배롱낭구 꽃잎에는 어느 먼 옛날 백제 처녀의 마음도 하나 들어 있을 테지요

저녁 예불을 드리던 개심사 범종 소리는 서른두 번째에서 한참을 머뭇거립니다 마지막 종소리는 가을 저녁寺로 불어오는 바람에게나 내어주고요

가을 저녁寺에 호롱불이 돋는 地上의 유일한 저녁입니다

한 사내가 연못거울에 어두워지는 낯을 비추어보며 끝내 자신이 걸어가 당도할 집을 생각하는 참 고요하고 투명한 가을 저녁입니다

나는 걸어서 가을 저녁寺를 내려옵니다 ¹



 속 편하다. 제는 추억일랑 물거울에 빨아버리면 그만이다. 여전히 처녀의 마음은 잉걸불 ²처럼 타들어 가는데……. 사내는 집에 당도할 생각으로 고요하고 투명한 가을 저녁을 맞는다. 그런데 이처럼 온 힘을 다해 삐뚤게 보려 해도, 아름답다. 본디 가을은 어디든 서정(抒情)을 두기에 적당한 계절일진대, 저녁에, 그것도 산사라니, 그 아름다움의 지경이 짐작조차 되질 않는다. 범종의 울림마저 바람과 나누는 산사는 호롱불이 돋아야 저녁이려니 한단다. 고요해서 먹먹한 어느 끝 즈음인가 보다. 그러니, 사내의 추억이 어떤 종류의 것이건, 처녀의 달아오른 마음의 연유가 무엇이건, 시인의 눈에 비친 가을 저녁寺는 그저 한없이 평화롭다. 이제 이 고요의 끝을 뒤로하고 시인은 내려온다. 속세의 가을로 가는 게다. 아무렇게나 던져두어도 꿈틀거리던 가을 저녁寺의 내 서정은 또 어찌 될지 볼 일이다.


*







이 가을의 무늬  


이 가을의 무늬  
                                        허수경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여름을 촘촘히 짜내렸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들이 풀어져서 저 술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 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네 

 오무려진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³



 내려왔는데, 술자리다. 합석해본다. 그런데 술자리가 어둡다.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 단다. 대체 어떤 사연으로 이 좋다는 가을날에 붉은 저녁이 담긴 술잔을 들이켜는 것일까? 짐작해본다. 우선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을 떠올린다. 시인 자신도 이 시에 대해 인터뷰하며, "고독은 시인의 양식이고 뮤즈다. 고독해야만 보이는, 내 모습과 상대방의 모습이 있다"고 밝혔다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취기를 노래하는 공간은 독일이다. 독일은 실지 시인이 머무는 곳이다. 떠난 지 20년도 더 된 타국에서 그는 도리어 모국어를 더 굳게 붙들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상(詩想)은 좀처럼 축약된 이미지를 보이지 않는다.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가 지나고,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는” 가을의 무늬가 될 뿐이다. 이처럼 시인의 가을은 어떤 뚜렷한 실체라기보다는 희미한 무늬이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교감하기보다는, 삼키어 제 것으로 삼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으니까……. 서정이 아닌 고독이 더 큰 시인은 이제 그 고독을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다. 자줏빛 가을의 무늬만이 남았다. 모두에게 다 아름답기만 한 그런 가을은 없다. 어느새 길을 잃은 내 서정도 말이 없다. 조용히 빠져나온다. ⁴


**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김남주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구옥일까 아니면 대전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 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저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사슬 풀고 오라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을 걷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 차는 멈춰 주지를 않는다
강을 건너 내를 끼고 땅거미가 내린 산기슭을 달린다
강 건너 마을에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⁵



 차 안이다. 가을날의 차는 차창에 붉거나 노란 감각들을 비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차가 아닌 모양이다. 시인은 푸른색의 수의(囚衣)를 입고, 자신의 행선지조차 알지 못한다. 시인은 잠시 상념에 잠긴다. 시인의 상념은 진즉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과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과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 저 방죽가”에 당도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마르며, 배가 고플지라도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시인의 몸은 차 안에 갇혀,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잘못을 했나 보다. 많이 했나 보다. 그러니까 저토록 절절함에도 집에 못 가고 압송차에 붙들려 있겠지…….


 1972년 10월의 '대통령 특별 선언' 같은 것을 듣더라도, 잠자코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뭣 하러 신문은 만들어 돌리고, 뭣 하러 뜻이 맞는 교우와 모여 의견을 논한다든가, 질문을 했었던지……. 물론, 이 시인은 그냥 질문한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좀 컸다고 한다. 특히 습관처럼 앞장을 선다든가 했다는데, 심지어 시를 지어 사람들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하니, 제법 멀리 가지 않았겠나 싶다. 그런데 가을을 노래한 시가 참 많은데, 굳이 오래된 이 시인의 시집에 손이 닿는 것은 대체 어떤 작용의 탓일까? 지금은 총칼을 앞세운 서슬 퍼런 독재의 시절도 아닌데 말이다. 도리어 어찌나 보기가 좋은지, 요즘에는 나라의 통치를 앞에 두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계모임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그 계모임에서는 누구의 딸이 말을 잘 타고, 누구의 아들이 코너링을 잘하는지를 묻는다고 전한다. 얼마나 보기가 좋은가 말이다!


 강건했던 시인이 지금 살아계셨더라면, 무슨 말씀을 했을까? 압송차에서 내린 시인은 9년의 옥살이를 하다가, 출옥 후 5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시만이 남아있다. 이 가을, 옛 시인의 노래가 애달프다. ⁶


*** 故 김남주 시인









내 서정(抒情) 둘 곳 없네


 시인들은 이 아름다운 계절을 모국어로 분주히 옮겨두었다. 그 저녁 산사에 내가 갔었더라면 짧은 서정으로 말미암아, ‘시인이 왔었더라면……, 시인이 왔었더라면…….’ 하고 개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제 서정을 흩뿌리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이 부대끼거나, 시절의 우울을 상기하노라면, 아름다운 가을의 온갖 풍경도 그저 배경일 터이니 말이다. 굳이 이 모든 상념을 관통하는 하나의 가을시를 권하자면, 최영미 시인의 고백을 빌리는 것이 좋겠다. 그는 우리말로 가을을 노래한 시 중에서도 단연, 최승자 시인의 치명적인 첫 행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한다. ⁷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⁸


 최영미 시인은 발화의 말미에 ‘달고 떫은 단감을 먹으며, 개 같은 가을을 통과해야겠다.’고 덧붙인다. 그러고 보면 모두가 힘들다는 이때, 시를 빌어 서정을 둔다는 것은 또 무슨 사치인가 싶다. 각자 개 같은 가을을 무사히 통과하시기를 바란다. 






개 같은 가을이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⁸




참고 

¹ 

 - 박정대, 『아무르 기타』, 문학사상사,  2004 중 「가을 저녁寺」


² 

 - 잉걸불 

    [명사] 

    1. [같은 말] 불잉걸(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

    2. 다 타지 아니한 장작불.

 - 출처 : 국립국어원


³

 - 허수경, 『창작과 비평 (2011 가을호)』, 창작과 비평사, 통권 153호 중 및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 지성사, 2016 중 「이 가을의 무늬」


 - jtbc, 김효은 기자, 2012년 8월 29일 자, “[제12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독일 땅에서 캐낸 생생한 모국어” 

 - jtbc.joins.com/article/ArticlePrint.aspx?news_id=NB10159866


 - 故 김남주, 『옛마을을 지나며』, 문학동네, 1999 중 「이 가을에 나는」


 - 프레시안,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2016년 8월 21일 자, “'전사 시인'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 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0300


 - 서울신문, 최영미 시인, 2016년 10월 12일 자,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가을의 시”

 - 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013029005


 - 최승자, 『이 時代의 사랑』, 문학과 지성사, 1981 중 「개 같은 가을이」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최승자, 『이 時代의 사랑』, 문학과 지성사, 1981 중 「개 같은 가을이」 직접 촬영


*

 - 민삿갓 님의 블로그, <민삿갓 사진 유람기> , 2010년 11월 17일, “호남의 소금강 영암 월출산의 위풍당당3(천황봉~천황사주차장)”

 - blog.daum.net/orora62/82


**

 - Pinkney Herbert, <PURPLE FALL>, FOX Gallery NYC, Oil, digital print on panel, 14" x 11", 2012

 - foxgallerynyc.com/artists/pinkney-herbert/


***

 - 프레시안,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2016년 8월 21일 자, “'전사 시인'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중 ⓒ 연합뉴스

 - 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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