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섯 번째 지난주
이것은 관계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이것이 으뜸이 아니면 안 된다. 에너지의 근원이 태양이라면, 살아감의 원천은 바로 이 관계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관계는 제 비중을 알아채고는 어찌나 뻐기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이는 관계 이전에 감정의 지점에서 폭발하고 또 폭발한다. 어느 문학평론가의 표현을 빌려, ¹ 모든 시간을 자정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시인들은 유독 이 폭발에 민감하였다. 바라거나, 혹은 너무 바란 탓에 이 바람이 욕망에까지 이르면, 추스르지 못한 감정은 언어로 배열되었다. 맺어지려 할 때, 설레거나 혹은 너무 설렌 탓에 자신을 잃을 만치 슬픈 마음들도, 가차 없이 시어(詩語)가 되었다. 다소 뜬금없이 관계와 감정과 시인을 소환하는 시도는 지난주, 어떤 연설이 마치 시처럼 자꾸 사랑을 읊은 사실로부터 말미암는다.
관계 중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감정 중에서도 단연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이 사랑이라는 존재의 향방을 한 통의 편지로부터 쫓아가 본다.
편지
이성복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記憶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 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²
우체부도 가져가지 않고, 동생은 구겨버리고 이웃 사람은 밟아버리는 편지가 있다.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있고, 버드나무 사이에 끼어 있고, 아이들은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그런 편지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매일 같이 쓴다. 어쩌다 우체부가 가져가지만 한잔하고서는 읊어댄다. 미칠 노릇이다. 왜일까?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어째서 온 지천을 떠다니는 것일까?
사실 너무 부끄럽다. 우체부가 가져갈까 봐…. 동생이 볼까 봐…. 동네 사람들이 버드나무가 아이들이 알까 봐…. 창피하다. 편지에 부유하던 기억(記憶)일랑 버려버리고 선생이 될 것이라는 결정적인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창피하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신념이라는 것이 겨우 자리 잡았지만, 사실 나는 가르칠 것이 없는 사람이니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더라도 떳떳할 수가 없어서다. 그래도 보고 싶다. 한데 몸은 또 성치 않아 결혼하자고 보챌 수도 없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미안하다. 그런데 결혼할 것이라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만나고도 싶다. 여전히 편지는 전할 길이 없다. 잘 있지 말란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에 그대가 잘 있어서는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립다. 그립다 말을 하니 나도 그립다.
비망록 - 그렇게 사랑이
김경미
옛 사람들은
치자꽃열매에서 배어나오는 노란색 물이며
관목과 바위 밑 푸른 이끼에서 꺼낸
염색물을 가져다 썼다지
횐 광목천을 자목련빛이며 남청색으로 바탕을 바꾸었다지
내 안에 혹 치자 소리나는 꽃잎들이며
그늘에서만 오래 묵은 녹색 이끼 같은
타고난 염료 있어
그대에게 물감들어 영영 빠지지 않았으면
³
편지가 당도하였는지, 그리하여 편지를 받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인은 노란색과 푸른색을 보고 어떤 작용을 떠올린다. 옛사람들이 치자에서 노란색을 취하고, 이끼에서 푸른색을 가져와 염색물을 만들었음을 상기한다. 자목련 빛과 남청색이 이제 하얗게 텅 빈 광목천을 색색들이 채웠다. 채웠다기보다는 바꾸었다. 괜찮을까? 더는 흰 광목천이 아닌데 말이다.
마음도 이와 같아서 그저 어설프게 다가와 슬쩍 색을 구경함이 아니라, 동경하는 존재 그 자체가 되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이를 위하여는 진한 노랑이나 오래 묵은 초록이 필요하다. 이른바 ‘타고난 염료’들 말이다. 그래야 빠지지 않겠다. 그대에게 물감 들어 영원토록 빠지지 않겠다. 시인은 아무래도 좋다. 그저 그대가 나로부터 영영 빠지지만 않았으면…….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⁴
이제 만나는가 싶다. 약속 시각이 가까워진다. 나처럼 조금 빨리 올지, 칼 같이 맞춰 올지, 조금 늦을지 알 길이 없다. 그저 기다린다. 발소리, 아니 모든 청각을 건드리는 소리라는 것들은 너의 발소리다. 문의 움직임, 아니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사람이 너다. 소리들과 움직임이 오지 않은 너의 형상으로 뚜렷해질 때, 시인은 그 모습에서 자신을 찾는다.
오늘의 약속은 비단 오늘만을 위함이 아니다. 만남의 오늘이 있기까지 아주 먼 데서 내가 향하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네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오늘의 만남은 애초부터 내가 너에게 감과 동시에, 네가 나에게 오는 길이었다. 그리하여 조금 먼저 온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지만, 여전히 그것은 곧 너에게로 다가가는 일이다. 그러니 기다림에 지친다는 말은 적어도 이 시인에게는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것은 곧 내가 가지 않았음을 뜻하기도 하는 탓이다. 지금 가고 있는가?
복종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⁵
만남이 있자, 마음은 더 깊게 원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마침 좋은 방도가 있다. 아예 복종하는 것이다. 자유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복종하고 싶다. 복종하고 싶어서 복종을 하겠다 한다. 그리하면 이 복종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시인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
단 하나 예외가 있어 다른 사람에 복종하라는 명령만큼은 따를 수가 없다. 다른 이에게 복종하자면 당신에게 복종하겠다던 맹서를 지킬 수 없는 때문이다. 이는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복종 중에서도 최고의 복종은 오로지 당신을 향했을 때만 가능함을 드러낸다. 그러니 결국 시인의 사랑은 오롯이 다음과 같다.
“나는 괜찮습니다. 복종만 하게 해주세요.”
처음 느낌 그대로
이소라
남다른 길을 가는 내게 넌 아무말하지 않았지
기다림에 지쳐가는 것 다 알고 있어
아직 더 가야 하는 내게 넌 기대할 수도 없겠지
그 마음이 식어가는 것
난 너무 두려워
어제 널 보았을 때 눈돌리던 날 잊어줘
내가 사랑하면 사랑한단 말 대신 차갑게 대하는 걸 알잖아
오늘 널 멀리하며 혼자 있는 날 믿어줘
내가 차마 네게 할 수 없는 말 그건
사랑해 처음 느낌 그대로
⁶
쉽지는 않다. 온 동네를 다 떠돈 그 어렵다는 편지를 쓰고 또 써야 하고, 영영 빠지지 않는 물도 들이며, 또한 기다리면서도 가야 한다. 복종은 어디 수월한가…! 그렇게까지 하여 관계를 맺는다 하여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이고, 다른 곳에서 왔으며, 각자의 길과 각자의 걸음이 있다. 관계가 무르익으면 지치기도 하겠다. 남다른 길을 간다 하면 말릴 법도 한데, 복종을 하는지 아무 말 않는다. 그러자 의구심이 든다. 그대가 기다림에 지쳐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 마음이 식어버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이 와중에 차갑게 대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있다. 감정을 반대로 내세워 일단 그것을 숨김이 습관이 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는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그저 하나만 믿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처음 느낌 그대로임을……. 그러니 설령 조금씩 위태로울지라도, 하나의 기억만 분명하다면 끝날 수 없다. 편지를 쓰고, 마음에 물을 들이며, 또 너를 기다리고, 복종을 다짐하던 그 처음 느낌만 그대로라면, 얼마든지 사랑의 시는 계속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시"라고 해놓고 너무 아픈 노래들만 옮겨왔나 싶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다. 이 아픔도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처음 느낌 그대로이기만 한 사랑은 없어서, 시간이 다 했다는 오해나 사실로 그 중차대하다는 '관계'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쉬 끊을 수 없음이다. 그것은 불시에 역류한다. 이 고통의 정도에 관한 상세한 부연은 않겠다. 다만, 공동의 기억 속 사랑은 특별히 날을 정해 기릴 필요가 있다. 아픔을 나누자는 차원에 더해, 어떤 목소리를 모으면 더 잘 들릴까 싶어서다. 그대의 사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바로 그 목소리를…….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수일 전만 하여도 미래의 불투명함을 근거로 강요된 애국을 경계하였는데, 겨우 정돈된 몇 줄의 문장 앞에 마음이 녹아있다. 그런데 다시 꼭꼭 씹어 읽어보면 결코 쉽게 쓰인 문장이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사랑의 시였다. 스물두 번의 “애국(愛國)”은 단지 나라를 사랑했음에 대한 헌사라기보다는 “당신의 사랑을 내가, 그리고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라는 고백에 가깝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사랑이 한참이나 지난 후에도 당신의 그 마음들을 우리가 다 기억한다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저 하늘에도 닿았기를 바란다. 이 사랑의 시가 들렸기를 바란다. 우리는 당신의 사랑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예순두 번째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거룩한 영전 앞에 깊이 고개 숙입니다.
가족을 조국의 품에 바치신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유공자 여러분께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오늘 이곳 현충원에서 '애국'을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식민지에서 분단과 전쟁으로, 가난과 독재와의 대결로, 시련이 멈추지 않은 역사였습니다. 애국이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냈습니다.
지나온 100년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킨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신념이었습니다.
항일의병부터 광복군까지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의 신념이 태극기에 새겨졌습니다.
살이 찢기고 손발톱이 뽑혀나가면서도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조국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가를 키우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나라 잃은 설움을 굳건하게 살아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국가의 예우를 받기까지는 해방이 되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서러움, 교육받지 못한 억울함, 그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독립운동가 한 분이라도 더, 그분의 자손들 한 분이라도 더,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겠습니다. 기억하고 기리겠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는 동안, 목숨을 바친 조국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전선을 따라 늘어선 수백 개의 고지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피 흘렸던 우리 국군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짧았던 젊음이 조국의 땅을 넓혔습니다. 전선을 지킨 것은 군인만이 아니었습니다. 태극기 위에 위국헌신을 맹세하고 후방의 청년과 학생들도 나섰습니다. 주민들은 지게를 지고 탄약과 식량을 날랐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철원 ‘백마고지’, 양구 ‘단장의 능선’과 ‘피의 능선’, 이름 없던 산들이 용사들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비극이 서린, 슬픈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전우를 그곳에 남기고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호국용사들에게 눈물의 고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백골로 묻힌 용사들의 유해, 단 한구의 유골이라도 반드시 찾아내 이곳에 모시겠습니다.
전장의 부상을 장애로 안고, 전우의 희생을 씻기지 않는 상처로 안은 채 살아가는 용사들, 그분들이 바로 조국의 아버지들입니다. 반드시 명예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이념에 이용되지 않고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에게 존경받도록 만들겠습니다. 그것이 응당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답했습니다.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이국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생긴 병과 후유장애는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채입니다. 이제 국가가 제대로 응답할 차례입니다. 합당하게 보답하고 예우하겠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독립과 호국의 전장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여러분과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1달러의 외화가 아쉬웠던 시절, 이역만리 낯선 땅 독일에서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 되어준 분들이 계셨습니다. 뜨거운 막장에서 탄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석탄을 캔 파독 광부, 병원의 온갖 궂은일까지 견뎌낸 파독 간호사,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조국 경제에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에도 감사드립니다. 재봉틀을 돌리며 눈이 침침해지고, 실밥을 뜯으며 손끝이 갈라진 그분들입니다.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이제는 노인이 되어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분들께 저는 오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 분 한 분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품속에 있던 태극기가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던 수많은 능선 위에서 펄럭였습니다. 파독 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가 5.18과 6월 항쟁의 민주주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서해 바다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의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도상의 화해를 넘어서, 마음으로 화해해야 합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입니다.
저와 정부는 애국의 역사를 존중하고 지키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공헌하신 분들께서, 바로 그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데 앞장서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이념갈등을 끝내주실 분들입니다. 이 나라의 증오와 대립, 세대갈등을 끝내주실 분들도 애국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무엇보다,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길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보훈정책은 꾸준히 발전해왔습니다. 군사 원호에서 예우와 보상으로, 호국유공자에서 독립, 민주유공자, 공무수행 유공자까지 그 영역도 확대되어 왔습니다. 국가유공자로 모시지는 못했지만 그 뜻을 함께 기려야 할 군경과 공무원, 의인들을 예우하고 지원하는 제도도 마련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들의 공적에는 많이 못 미칩니다.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가겠습니다. 국회가 동의해준다면, 국가보훈처의 위상부터 강화하겠습니다.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습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이 애국심을 바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고, 원칙이 보상받고,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 나갑시다. 개인과 기업의 성공이 동시에 애국의 길이 되는 정정당당한 나라를 만들어 나갑시다.
다시 한번 순국선열, 호국영령, 민주열사의 애국 헌신을 추모하며,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6일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⁷
참고
¹
- 함돈균,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 함돈균 평론집』, 창작과 비평사, 2016
²
-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 지성사, 1980
³
- 김경미, 『창작과 비평』, 2000년 여름호(통권 108호), 2000
⁴
- 황지우,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 지성사, 1991
⁵
- 한용운, 『한용운 시전집』, 서정시학, 2014
⁶
- 이소라, 『이소라 1집』, 케이앤씨 뮤직, 1995
⁷
- 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2017년 6월 6일 자, “[전문] 문재인 대통령, 제62회 현충일 추념사”
- yonhapnews.co.kr/bulletin/2017/06/06/0200000000AKR20170606025000001.HTML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love and paint의 갤러리 중 John & Brianna 작품
- loveandpaint.com/gallery/
*
- JTBC, 2017년 6월 6일 자, "[풀영상] 문 대통령 추념사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 청산"" 화면 캡처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478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