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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Dec 24. 2017

크리스마스의 시

아흔네 번째 지난주




스산한 마음에 캐럴이 울릴 때


 성경에도 예수가 태어난 날짜는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몇몇 크리스마스의 유래로 통용되는 문장들이 있으나, 굳이 옮기지는 않겠다. 다만, 이날이 이때 있음으로 인해 펼쳐지는 사태는 함께 바라보았으면 한다. 하필 한 해를 마감하는 즈음이다. ‘또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구나!’라는 뒤늦은 깨달음의 탄식이 새어 나오는 때이다. 날은 차고 마음은 스산하다. 한데 이즈음에 크리스마스가 있다. 허전한 마음이 무안할 만치 세상은 온통 반짝이고, 캐럴 소리 요란하다. 마음과 풍경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이 거리감 사이의 언어가 궁금해졌다. 시(詩)가 있기 좋은 자리이다. 크리스마스의 시를 읽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떨어지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달
                                         최승자

미아리 날맹이 위로 뜨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달
망우리 산너머 망자들의 등 뒤로 뜨는 달
습기를 품은 밤 공기는 외로와 외로와
산을 껴안고 눈으로 내릴까
바다에 닿아 비로 풀릴까
땅 위의 노래는 아직 어지럽고
달무리 하얀 피로 번지는데
괴로와 괴로와 우리들은 모두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 유성인가

¹


 서두에 뭉개고 지나간 크리스마스의 연원을 살짝만 되짚는다. 땅의 사태를 하늘을 바라보며 점치던 시절, 가장 중차대한 존재는 단연 태양이었다. 그 태양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 그러니까 다음 해 먹고 사는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 그 빛을 땅에게 더 많이 전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고대인들에게 무척이나 큰 의미였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고대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의 존재이다. 예수의 미사(Christ’s Mass)라는 뜻인 크리스마스도 태양신 기원설이 유력하다 한다. 교황 리베리우스가 서기 354년 태양신의 축일을 예수 탄생일로 선포하면서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² 곧 크리스마스와 태양은 멀지 않다.


 그런데 시인은 달을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양의 길이가 길어지는 때이면 곧 달의 길이는 짧아지기 시작하니, 크리스마스와 달도 태양과의 그것만큼이나 가깝겠다. 달을 바라보는 자리를 본다. 미아리 산봉우리와 망우리 공동묘지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태어난 날이라는데, 시인은 어째서 힘겨운 삶의 터전이나, 죽음의 전장에 서 있을까? 이제 달은 짧아질 것이다. 떨어지는 것이다. 마침 시인은 떨어지는 공간에 있다. 그런데 떨어지는 일도 녹록지 않다. 땅 위의 노래들이 아직은 어지러워, 정처 없는 습기는 눈과 비 사이에서 갈팡거린다. 떨어져야 할 것들은 망설이고, 떨어지지 못하는 달무리는 피만 같다. 괴롭다. 시인은 묻는다. 우리도 떨어지는가? 우리는 어디론가 떨어지는 유성인가? 떨어지는 일은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해서 비켜서지 않는다.


* 1968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모습





탄생 없는 성탄절


성탄절
                                         이성복

성탄절 날 나는 하루 종일 코만 풀었다 아무 愛人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아무에게나 電話했다 집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살지 않으니 죽음도 없어요 내 목소리가 빨간 제라늄처럼
흔들리다가…… 나는 아무 데도 살지 않는 愛人이 보고
싶었다 그 여자의 눈 묻은 구두가 보고 싶었다 성탄절 날
나는 낮잠을 두 번 잤다 한 번은 그 여자의 옷을 벗겼다
싫어요 안돼요 한번은 그 여자의 알몸을 파묻고 있었다
흙이 떨어질 때마다 그 여자는 깔깔 웃었다 멀고 먼
성탄절 나는 Pavese의 詩를 읽었다 1950년 Pavese
自殺, 1950년? 어디서 그를 만났던가 그의 詩는
정말 좋았다 죽을 정도로 좋으니 죽을 수밖에 성탄절 날
Pavese는 내 품에서 천천히 죽어 갔다 나는 살아 있었지만
지겨웠고 지겨웠고 아무 데도 살지 않는 愛人이 보고 싶었다
키스! 그 여자가 내 목덜미 여러 군데 입술 자국을
남겨 주길…… Pavese는 내 품에서 천천히 죽어 갔다 나는
그의 故鄕 튜린의 娼女였고 그가 죽어 간 下宿房이었다 나는
살아 있었고 그는 죽어 갔다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다

³


 언제부턴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네 애인을 사랑하라’로 전이되었고, 이는 시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떤 애인도 불러주지 않자 전화를 하였으나, 없단다. 없어서 없는지, 없고 싶어서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없단다. 아무도 살지 않으니 죽음도 없는 그 애인이 어째서인지 보고 싶다. 그 여자의 눈 묻은 구두도 보고 싶다. 그리고는 낮잠이 들었고 두 번의 꿈을 꾼다. 두 번 모두 애인으로부터 없는 존재인 시인의 욕망이다. 가지거나 죽이거나……. 부질없다. 그리고는 어느 먼 나라의 시를 읽는다.


죽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도 자지 않고 귀머거리처럼 
우리와 함께 있다. 오래된 후회나 불합리한 악습처럼

_ 체사레 파베세(Cesare Pavese),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 中  ⁴


 시인이 파베세의 시 중 어떤 시를 성탄절에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는 이탈리아의 이 시인은 제법 명성을 얻었다고 함에도 1950년 수면제를 복용하고는 마흔둘이라는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한다. ⁵ 그의 시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에는 이를 부연이라도 하듯 염세적인 기운이 부유한다. 그런데 아무 애인도 없는 시인이 파베세가 너무 좋단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파베세가 제 품에서 죽어갔단다. 마침 사는 일이 너무 지겹던 시인이었다. 하필 또 성탄절이다. 애인은 아무 데도 살지 않는다. 여전히 망상만이 가능한 세계에서 파베세는 시인에게 손짓이나 하는 양 불쑥불쑥 침범한다. 결국, 한참이나 가까워진다. 시인은 파베세의 창녀가 되고, 하숙방이 된다. 아예 파베세에게 ‘있는 존재’가 되기로 한 모양이다. 그는 예정처럼 죽었고, 죽음마저 죽은 이후에는 어떤 탄생도 없었다. 예수가 탄생했다는 성탄절이었다.


** 1983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모습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전해 들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정호승

눈은 내리지 않았다
강가에는 또다시 죽은 아이가 버려졌다
차마 떨어지지 못하여 밤하늘에 별들은 떠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도 서로의 발을 씻어주지 않았다
육교 위에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자가 앉아 있었고
두 손을 내민 소년이 지하도에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소년원에 간 소년들은 돌아오지 않고
미혼모 보호소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집 나온 처녀들은 골목마다 담배를 피우며
산부인과 김과장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돈을 헤아리며 구세군 한 사람이 호텔 앞을 지나가고
적십자사 헌혈차 속으로 한 청년이 끌려갔다
짜장면을 사 먹고 눈을 맞으며 걷고 싶어도
그때까지 눈은 내리지 않았다
전철을 탄 눈 먼 사내는 구로역을 지나며
아들의 손을 잡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사랑에 굶주린 자들은 굶어 죽어갔으나
아무도 사랑의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용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아들을 등에 업은 한 사내가
열리지 않는 병원 문을 두드리며 울고 있었고
등불을 들고 새벽송을 돌던 교인들이
그 사내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멀리 개 짖는 소리 들리고
해외입양 가는 아기들이 울면서 김포공항을 떠나갔다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나 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별도로 기록된다. 하지만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보다는 그렇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더 많다. 그 해도 그러하였나 보다. 시인의 시선을 쫓는다. 강가에 머물던 시선은 이내 하늘로 향한다.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지 않는다. 육교 위와 지하도와 소년원과 미혼모 보호소를 지난다. 우리의 이웃들이 있는 곳이다. 호텔 앞에서 구세군이 헤아리던 돈은 아직 닿지 못한 곳이다. 마침 크리스마스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던 이의 생일이다. 계속 쫓는다.


 아직 눈이 내리지 않는다. 구로역이다. 눈먼 사내가 아들의 손을 잡고 하모니카를 분다. 이를 보던 시인은 깨닫는다. 사랑에 굶주린 자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아무도 사랑의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는구나! 분명히 이 땅은 사랑의 나라가 아닌데 말이다. 사랑의 나라를 기다리고만 있나? 기다림은 용기가 아니다. 죽어가는 아들을 업은 사내를 바라보는 교인들의 모습과 입양 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가득한 공항의 크리스마스…. 사랑받지 못하는 이웃들의 나라에도 캐럴은 울려 퍼졌을까? 그해 크리스마스에 눈은 내리지 않았다.


*** 2005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모습

 

 예수가 이 땅에 온 날짜 따위야 무엇이 중요하겠나. 그 이유가 더 중할 터이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감히 추측해보자면, 낮은 곳에서 아파하는 이들을 품으러 온 것일 거다. 교회 더러 세금 내지 말라고 오신 것은 아니지 않겠나….









메리 크리스마스


 수많은 크리스마스의 시 중에서 하필 무겁고 무거운 것들만 골라와서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그저 크리스마스를 가장 시인스런 감각으로 짚어낸 시들을 전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죄송한 마음에 그저 맑은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그리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눈동자들을 전한다. 그때는 크리스마스를 잘 몰랐지만, 분명 더 아름다웠었다. 머리가 한참이나 커버린 우리에게 그처럼 순수한 크리스마스가 다시 찾아오지는 않겠으나, 이 땅의 동그란 눈동자들에 그 기쁨을 더 따뜻하게 전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처럼만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면 말이다. 모든 이에게 축복이 있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박목월

크리스마스 카드에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 네 개의 샛파란 눈동자. 
- 네 개의 샛파란 눈동자. 

참말로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누굴 기다릴까. 
- 네 개의 까만 눈동자. 
- 네 개의 까만 눈동자. 

그런 날에 
외딴집 굴뚝에는 
감실감실 금빛 연기, 
감실감실 보랏빛 연기, 
- 메리 크리스마스 
- 메리 크리스마스


**** 2017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모습







참고

¹

- 최승자, 『이 時代의 사랑』, 문학과 지성사, 1981 


²

- 한겨레, 사설.칼럼, 정남기 논설위원, 2009년 12월 22일 자, “[유레카] 동지와 크리스마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94830.html#csidxaebd4461597573081da15bcf0d9ca7b  


³

- 이성복, 『구르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 지성사, 1980


- 체사레 파베세, 『냉담의 시』, 문학동네, 2014


- 교보문고, 작가 & 작품, “체사레 파베세”

http://www.kyobobook.co.kr/author/info/AuthorInfo.laf?authorid=2000448201


- 정호승,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95


- 박목월, 『산새알 물새알』, 푸른책들, 2016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2017년 12월 1일 자, “서울광장 밝히는 성탄 트리”

http://www.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71201219000013&from=search


*

- 서울사진 아카이브, “1968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

http://photoarchives.seoul.go.kr/photo/view/102696?keyword=%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viewtype=normal&ordertype=p_dt&page=2


**

- 서울사진 아카이브,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http://photoarchives.seoul.go.kr/photo/view/70238?keyword=%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viewtype=normal&ordertype=p_dt&page=10


***

- 서울신문, 이언탁 기자, 정연호기자, 2005년 12월 21일 자, “서울, 크리스마스에 젖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512223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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