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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마음에게

by 별빛너머앤

우리 몸은 변화가 생길 때 이전 상태로 돌아가려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항상성이란 ‘생체가 여러 가지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생명 현상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을 뜻한다. 덕분에 가벼운 감기 정도는 약을 먹지 않아도 나을 수 있다. 감기 걸리기 전의 건강한 상태가 우리 몸이 생각하는 일정한 기본값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기본값은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되어 온 것이다. 바꿀 수 있지만 역시 천천히 시간을 들여 몸을 새롭게 세팅해야 한다. 몸이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기본값에 적응하고 그것이 새 기본값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중략)


요가 수련도 마찬가지였다. 부상으로 일 년 넘게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다. 그간의 요가 수련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던 몸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항상성에 의해서 돌아가려 했다. 문제는 돌아갈 기본값이었다. 내 몸이 생각하는 기본값이 어디였을까. 부상 직전 내 인생 최고의 유연한 몸이었을까, 그 이전의 뻣뻣한 몸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우파비스타코나아사나(박쥐 자세)를 할 수 있었던 기간은 기본값으로 설정되기에 너무도 짧은 순간이었다. 결국 내 몸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회귀해 버렸다. 그나마 일상생활에 무리 없는 발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수련의 거의 모든 것을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내게 있어 꿈의 아사나 도달은 하나의 이정표였다. 지난 세월을 잘 버텼다고 주는 졸업장이었고,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장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올빼미가 날아와 떨어뜨리고 간 입학허가서가 아니라, 몇 년이라는 시간과 땀방울을 들여 나의 온몸으로 이루어낸 허가서였다. 그런데 지금, 이루었던 꿈이 무너지니 내 노력과 시간이 오롯이 담긴 그것을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세계가 ‘너는 아직 이걸 가질 자격이 없으니 다시 쌓아와.’라고, 말하는 듯했다. 부상을 초래했던 그 상황도, 이후의 대처도 모든 게 한심스럽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속상했다. 참 많이. 모두 내가 저지른 것이기에 누구도, 무엇도 탓할 수 없었다.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저 스스로를 책망하며 보낸 나날들이 이어졌다.


가을과 겨울의 어디쯤의 오후였다. 넓은 거실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한없이 눈부셨고 따사로웠다. 빨래를 넌 후 멍하니 창밖의 파란 하늘을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요가 매트를 폈다. 다친 뒤론 한 번도, 절대로, 집에서 혼자 요가 수련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또 다칠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몸에 익은, 가장 기본 자세들을 하나하나 해보았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몸을 뻗고 한참 있다가 서서히 상체를 굽혔다.


상체를 숙여 다리에 가까이 가져가자 온몸에서 저항이 느껴졌다. 늘어나지 않으려는 다리 근육들과 숙여지지 않으려는 고관절 때문에 숨이 가빠졌다. 거기에 더해 무게 중심이 상체로 쏠리니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공포까지 밀려왔다. 그 자리에 머물면서 괜찮다 괜찮다를 되뇌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호흡에 따라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이마와 정강이가 가까워졌다. 완전히 붙지는 않았다. 뻗은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왼쪽 고관절에 뭔가가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바닥에 닿았던 손가락 끝을 떼어내 종아리를 잡았다. 떨리는 몸을 그대로 느끼며 다시 괜찮다 괜찮다를 되뇌었다. 언제 고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떨리던 다리가 한 호흡, 한 호흡에 차츰 안정되어 갔다. 고관절이 접히고 배와 허벅지가 붙고 가슴과 무릎이 붙고 이마가 종아리에 붙었다. 양손으로 발목을 잡고 두 팔을 종아리 뒷면에 붙여 다리를 감싸 안았다.


문득 내가 나를 온몸으로 꼭 안아 주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참 동안 폴더처럼 몸을 접은 채 마음속 울음을 토해냈다. 울음을 그치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그칠 수도 없었다. 여전히 물이 세차게 흘러넘치고 있는데 둑을 쌓으려 해 보았자 물살에 떠밀리기만 할 뿐이다. 한 번 터진 둑은 물이 다 빠져야만 새로 쌓을 수 있다. 남김없이 흘러가게 두었다.


서럽게 울고 있는 마음을 다른 마음이 바라보았다. 많이, 참 많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속상했구나. 맞아. 우파비스타코나아사나 성공했을 때 정말이지 기뻤는데. 그 속상함을 어떻게 참았니.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마음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공감해주었다. 다친데다가 오랫동안 제대로 수련도 못 했는데 그래도 놓아 버리지 않고 요가 수업 착실하게 다닌 거 칭찬해.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해. 까짓것 그거 좀 못 하면 어때. 그게 요가의 전부는 아니잖아. 그래도 지금은 화장실 못 갈까 봐 걱정하지 않잖아. 그때로 돌아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때보다 훨씬 나은걸. 한 번 해봤잖아. 누구보다 잘 알잖아.

울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나에 대한 연민과 애씀에 대한 인정과 칭찬을 채워 넣었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을 안아 주었다.






공감과 위로, 희망의 에세이 <흔들려도 괜찮다고, 몸이 먼저 말했다>의 일부 발췌입니다.

2025년 7월 출간 예정입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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