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받던 중 갑자기 선생님께서 한 아사나 시범을 보이며 따라 해보라 하셨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팔을 뻗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다리를, 다리를…. 무릎을 펴야 하는데. 허벅지부터 종아리, 발끝까지 일직선이 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아, 이 다리는 내 다리인가 네 다리인가. 내 몸에 붙어 있지만 내 몸이 아닌 듯,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떠 있다가 쿵.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대체 이게 뭔데 뜬금없는 걸 시키시나 싶었다. 분명 지금 내 수준을 넘는 것인데.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고 아사나 명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당연하단 듯이 계속 연습하란 말씀뿐이셨다. 그날, 집에 와서 『요가 디피카』를 폈다. 분명 책에서 똑같은 자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혹시 쿠르마아사나(거북 자세) 변형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책 중반이 넘어가도록 이 자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책장의 3분의 2쯤을 훨씬 넘겼을까, 마침내 선생님의 시범과 똑같은 자세의 사진을 찾았다. 티티바아사나. 개똥벌레 자세란다. 개똥벌레라니. 세상에나. 땅에서 겨우 발을 떼어 버둥거리고 있는 내 꼴은 영락없는 거미인데.
(중략)
개똥벌레의 또 다른 이름은 반딧불이다. 몇 년 전,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반딧불이 투어를 했다. 레고랜드가 있는 조호바루에서 두세 시간을 달려 어느 시골에 도착했다. 맹그로브가 무성한 강에서 무동력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흐르며 한 시간가량 반딧불이를 보았다. 수십만 병의 먹물을 빨아들인 듯한 밤의 장막 속에서 노란색의 여린 빛들이 깜빡였다. 글자 그대로 숨이 멎는 광경이었다. 혹여나 반딧불이들이 놀라 불을 꺼 버릴까 봐, 멀리 날아가 버릴까 봐 배 안의 누구도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먼 여름밤 하늘의 반짝이는 별빛 보다, 강가 가까이 걸린 낮은 초승달 빛보다 훨씬 가냘픈 빛이었지만 훨씬 따뜻한 빛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빛이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같이 점멸하는 그 작은 노란빛은 밝기와 크기에 상관없이 보는 사람 모두에게 설렘과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태양이 아니라고, 달이 아니라고, 별이 아니라고 주눅 들거나 슬퍼할 필요 없다. 달이 태양 같았다면, 새로 차오르고 이지러지며 밝았다 어두워졌다 하는 달을 보며 인생의 흥망성쇠를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별이 똑같이 달빛을 낸다면 그토록 많은 시와 소설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별빛이기에, 달빛이기에, 햇빛이기에 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다른 이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건전한 동력이 되어 나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부러움을 넘어 시기 질투를 느낀다면 잠깐 그것에서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돌아봐야 한다. 왜 순수하게 기뻐하고 좋아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의 어떤 마음이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일까. 아마도 그 아름다움에서 나의 못난 모습을 발견해서 일 것이다. 나는 왜 저렇게 아름답지 못하지? 나는 왜 저렇게 뛰어나지 못하지?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시기와 질투는 나를 자괴감의 나락으로 빠트리는 급행표다. 잠깐 시선을 거두어 나를 바라보자.
누가 햇빛 보러, 달빛 보러 일부러 여행을 떠나겠는가. 반딧불이만이 낼 수 있는 빛이기에 사람들은 먼 곳을 찾아간다. 내 모습도 그러할 것이다. 나 역시 미약하나마 반짝거리고 있는데 더 큰 빛을 보느라 나의 빛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알아채기는커녕 빛나기도 전에 스스로 자신의 빛을 꺼트릴 수도 있다. 화려한 빛이 아니어도 괜찮다. 찬란한 빛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빛을 내면 된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아름답다.
공감과 위로, 희망의 에세이 <흔들려도 괜찮다고, 몸이 먼저 말했다>의 일부 발췌입니다.
2025년 7월 출간 예정이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8월로 연기되었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