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002] 리더와 관리자
에스키모인들의 언어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종류를 구분하는 단어가 50개가 넘는다고 한다. 어떤 종류의 눈이 내리고, 어떻게 쌓이는지에 따라 그들의 생존 전략과 생활 방식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것이 사실인지와 무관하게, 우리는 살아가는 환경이나 문화, 생존을 위한 필요에 따라 단어들을 보다 세세하게 구분하여 정의한다.
좀 더 쉬운 예시로 영어와 한국어를 비교해볼 수 있다. 형제관계를 이야기할 때, 영어로는 남자 brother와 여자 sister를 구분하는 단어가 있고, 굳이 나이를 구분하자면 나이의 많고 적음을 형용사로 (old & younger) 나타낸다. 한국어는 재밌다. 나이로 인한 서열이 더 중요한 유교문화에서 나이가 더 많은 형제를 지칭하는 호칭은 자신과 대상의 남녀에 따라 형, 누나, 오빠, 언니 등으로 다양화되었지만 나이가 적은 형제를 부르는 호칭은 동생으로 통칭한다. 영어와 마찬가지로 굳이 성별을 구분하자면 여동생, 남동생과 같이 형용 어구를 앞에 붙여줄 수 있겠다.
이처럼 한 국가나 집단, 조직에서 단어들을 다르게 구분하여 정의하는 일은 그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떻게 살아가거나 일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정의를 통해 우리는 현실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고, 보다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요즘 조직문화 컨설팅을 하다 보면 "리더"와 "관리자"라는 단어가 자주 혼용되는 모습을 본다. 실제 관리자들에게 '팀 리드'나 '프로젝트 리더'와 같은 이름이 부여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거기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담겨 있겠으나, 그 의미가 잘 전달되거나 교육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리더와 관리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서 시작하면, 관리자는 조직의 구조화된 시스템 안에서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관리의 대상은 무엇일까? 관리자는 한정된 자원을 관리하여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돈, 시간, 목표와 성과, 인적자원으로서의 사람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기능하여 최고의 결과로 이어지도록 노력한다.
관리자의 관점에서 사람은 관리의 대상이자 통제의 대상이다. 앞서 리더십이 부재한 관리자들의 한계에 대해 언급했듯,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사람이라기보다 사람의 인지적 기능을 자원으로서 활용한다. 관리자에게 있어 좋은 인적자원은 예측 가능하고, 인풋에 대한 아웃풋이 명확하고, 속도와 방향에 있어 의심이나 이견이 없이 관리자를 잘 따르는 사람일 것이다. 반대로 가장 관리가 어려운 변수는 감정, 팀원 개개인의 해석 등이 있겠다.
그렇게 관리자는 인적 자원의 기능 외의 인간성 - 감정, 욕구, 심지어 의견까지도 - 은 가능한 한 묵살하여 배재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로 네 개인감정을 가져오지 마", "공사는 구분해야지", "일단 말을 하면 토 달지 말고 들어"와 같은 대사들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진다.
관리자의 눈에 자신의 팀은 하나의 거대한 시계처럼 구성되어 있어, 모든 톱니바퀴가 자신의 자리에서 기능적으로 역할을 해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역시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서 시작하자면, 리더는 Lead 하는 사람, 즉 사람을 이끄는 사람이다. 선행지표를 Leading Indicator라고 말하듯, 리드하는 일은 앞서 움직이며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관리자의 관리 대상이 '자원'이라면 리더의 리딩 대상은 따르는 사람 follower, 즉 '사람'이다. 리더는 사람을 같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인적자원으로 보지 않고, 함께 일하는 존재, 같은 방향과 신념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사람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리더의 관점에서 조직은 수많은 톱니바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이루어진 하나의 인적 네트워크이다.
리더의 입장에서 가장 유능한 팀원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성장해가는 부류라면, 가장 힘든 팀원은 최소한의 기능적 역할 외에는 무엇도 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되겠다. 관리자에서 리더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우리가 '사람 중심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를 말해준다. 예측 가능한 일들을 인공지능이 더 정교히 대체하고, 더 이상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조직에서 단순히 예측 가능하고 이견이 없이 따르기만 하는 직원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잠재력을 발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중심'의 시대를 살고 있다.
2차 산업이 발달했을 때 사람들은 주어진 기능적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관리 중심 조직 구조에서 직원들을 통제할 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이를 위해 직원들이 감정과 욕구를 배제하고 역할에만 몰입하게 만드는 일, <탈인격화 De-Humanization>는 효율과 성과를 높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3차 산업이라 불리는 서비스 업으로 넘어가며 사회는 다시 사람에게 집중했다.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아닌,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객의 심리나 욕구,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낀 경제 심리학적 접근에 가까웠다. 결국 고객만족이라는 키워드 안에 손님은 왕이 되고 진상과 갑질은 권리처럼 여겨지며, 고객의 사회정서적 만족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인간성을 더욱 내려놓아야 하는 "감정 노동"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됐다.
이미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4차 산업 혁명의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인공지능이 2차 산업의 기능적 역할, 특히 기본적이고 반복적인 업무와 복잡한 연산을 오차 없이 처리해내게 되고, 우리에게는 창의, 비판적 사고, 정서 지능, 공감 역량, 내적 동기, 메타인지와 같은 키워드들이 중요해진다.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먼저 추구하며, 납득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MZ세대의 시류도 여기에 한몫한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일이다. 기계는 해낼 수 없는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의 인간성에 다시 주목해야 할 <재인격화 Re-Humanization>의 시대이다.
리더는 사람을 이끄는 사람이다. 일이나 자원이 아닌 사람에 집중한다. 그들을 이해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을 매료시키거나 동참시키고, 동기부여하며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믿는 방향으로 끌고 간다. 리더가 사람을 끌고 갈 때 그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해내고, 자원을 효과적이고 자발적으로 관리하고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한다.
두 가지를 나란히 두고 대조하면 대척점에 서있는 듯 해 보이나 리더와 관리자는 모두 조직에 필요한 존재이다. 관리자는 없고 리더만 가득하다면, 방향 제시하는 사람만 가득해 말 그대로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것이다. 조직의 구조 안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사람은 분명히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독단적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 팀원들을 지시한 역할만 해내는 손발로 여기는 팀과, 집단지성을 통해 다양한 관점과 맥락에서의 의견을 듣는 노력을 통해 도달한 결론을 토대로 결정하는 관리자가 이끄는 팀은 차원이 다른 성과를 만들 것이다.
말하자면, 조직의 모든 관리자는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믿는다.
p.s. 더 나아가, 조직의 구조와 무관하게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믿는 방향을 제시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사람들을 공감하게 하고 동기부여하며 함께 나아가도록 만드는 일은 꼭 팀장이나 높은 직급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조직의 누구라도 리더가 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먼저 모두의 목소리는 들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