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004] 관계의 기반: 이해와 존중
한 아이가 있다. 이제 막 8살이 된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학용품과 준비물들을 사기 위해 엄마의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마트를 누비는 아이는 잔뜩 부푼 기대감에 신나 있다. 그러다 평소 좋아하던 장난감 코너를 보고 이성을 잃고 달려간다. 아차 싶은 엄마는 한숨을 쉬며 아이를 다그치고 이미 장난 두어 개를 고른 아이는 울상을 하며 떼를 쓴다. 하루에도 십 수번은 하는 듯한 그 말을 다시 한번 아이에게 던지고 만다. “넌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들어?”
육아를 위해 고생하고 헌신하시는 모든 부모님들께 송구한 말씀이지만, 8살짜리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듣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나도 그러했고, 당신도 분명히 그러했다. 오히려 부모님이나 어른 말씀을 곧이곧대로 잘 따르고, 시키는 대로 착착 행동하는 아이가 있다면 정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 지 의심해봐야 한다. 마트에서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서 꼭 원하는 것을 사주는 게 정답은 아니지만 아이가 원하는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내 뜻대로 행동하기만을 바란다면,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이는 비단 어린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이라 불리는 우리 존재들도 마찬가지이다. 마트에 가는 엄마의 의도와 아이의 욕구가 전혀 다르듯, 조직 내 각자의 위치와 역할, 경력과 성향, 우선순위와 개인의 가치관 등에 따라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은 재각각이다.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리더가 팔로워와 관계를 맺는 좋은 시작점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리더십을 간단하게 풀어본다면, 다른 생각과 관점, 태도와 의도를 가진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좋은 리더를 ‘사람들이 스스로 따르고 싶도록 만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8살 아이가 그러하듯, 사람이 나를 억지로 따르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리더십은 팀원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지구에는 70억 명이 살고 있는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70억 개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즉, 우리가 각자 살아가고 있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존중과 인정 없이 내 기대치나 바람을 강요하는 것은 8살 아이에게 4시간짜리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가만히 앉아서 온전히 집중하기를 바라는 것과 유사하다.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팀원들의 마음을 잃고, 심리적 거리는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꼰대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합리적인 지적이나 소통까지도 꼰대라고 매도되어 답답한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그저 상대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리기도 하지만, 실제 우리 조직에는 많은 꼰대들이 존재하며, 이는 직급과 나이와 무관하게 도처에 깔려 있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꼰대의 가장 대표적인 태도는 ‘나의 옳음’의 프레임을 깔고, 내 생각과 동의하면 너는 옳고, 반대한다면 너는 틀리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조금 바꾸면,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상대가 나의 옳음에 맞춰가기를 바라는 마음(혹은 그래야 마땅하다는 마음)이다.
많은 관리자들은 팀원들은 무엇을 원할지 알아보고자 하는 의지도 없으면서, 그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팀원들에게 불만만 잔뜩 쌓여 있다. 그들과의 첫 미팅에서 항상 듣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A 과장은 일처리가 느려서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B 대리는 자기 할 일만 끝내면 된다는 식이라 개인주의가 심해요.” 요즘은 괴롭힘 방지법으로 인해 그런 직원들을 따끔히 혼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관리자가 팀원들의 단점만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단점들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주관적이고 편향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개인주의가 심하다는 B 대리와 마주 앉아 진솔하게 대화해본 경험 한 번 없이 다른 후배의 말을 듣고 평가하거나, A 과장이 딱 한 번 미팅에서 너무 빠른 업무 속도에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인해 생긴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이 컨설턴트인 나에게 기대 (요구) 하는 것은 모든 팀원이 자신의 의도와 전략대로 짜임새 있게 움직여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다. “A 과장이 잘하는 건 뭐가 있습니까?”, “B 대리가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뭔가요?” 질문 서너 개를 이어가다 보면 이 관리자가 팀원들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리더십에 있어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어떤 말을 얼마나 논리 정연하게 하는지보다, 상대에게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리더가 나에게 얼마나 관심을 보이고 존중한다고 느끼는지, 얼마나 나에 대해 - 특히 나의 강점이나 성취에 대해 -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리더, 내 상황을 이해하고 가장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리더, 성과로 티 나지 않는 나의 묵묵한 노력을 지켜봐 주고 알아주는 리더. 이런 리더를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많은 사이비 종교에서 사람들을 포섭하고, 다시 그들을 전도자로 만드는(리더화) 주요 전략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들에게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수용과 포용의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다. 그리고 사람은 나의 마음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을 따를 리 없다. 심지어 이미 관리자의 능력을 불신하고, 소신 없이 윗선의 의견에 따라 갈대처럼 흔들리는 그의 태도에 환멸을 느낀 팀원이라면 관리자와 구조적으로 묶여 있을지 모르나, 관계적으로는 이미 단절되어 영향력을 잃은 상태이다. 마치 게임 <고요 속의 외침>처럼 아무리 크게 외쳐봐야 무엇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따르는 이가 없는 리더, 팔로워십이 없는 리더십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멱살을 잡고 억지로 질질 끌고 가도 이끄는 것이니 리더라면 리더겠지만, 좋은 리더는 팔로워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이를 동기부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스스로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를 갖도록 만드는 리더십은 매우 훌륭하다.
더 나아가, 리더가 제시한 방향이 어느새 내 방향이 된 이는 또 다른 이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위대한 리더는 팔로워가 자신의 주위 다른 사람들까지도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싶도록 만든다. 팔로워의 리더화, 그것이 위대한 리더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