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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02화
달 달구리
소아우울증을 앓았던 나를 위로하며...
by
꿈꾸는 덩나미
Jun 16. 2025
내가 어릴 때 만 해도 과자나 간식이 참 귀했다.
시골 우리 동네 한가운데에는 구판장(지금의 편의점)이란 곳이 있었는데 즐비하게 놓인 과자들은 어린아이들에게 큰 유혹이었다.
나는 많은 과자 중에서도 갈색을 띤 네모 모양의 캬라멜을 무척 좋아했다.
카라멜 하나를 입에 넣으면 그 달콤함이 입안 가득 차올랐다.
따로 용돈이 없었던 나는 달달 한 게 먹고 싶을 때면 아버지의 돼지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 구판장으로 뛰어갔다.
천사 같은 얼굴을 한 딸내미가 돈을 훔쳤으리라 아버지는 상상도 못 했고 결국은 오빠가 누명을 쓰고 억울한 매를 맞기도 했다. 나는 매 맞는 오빠를 보면서도 끝까지 시치미를 떼고 말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 집 찬장 안에는 아카시아 꿀이 한 병 있었다.
엄마가 꿀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먹어도 된다는 말이 없었다. 그것이 달콤한 것임을 동물적 본능으로 직감한 나는 어머니 몰래 한 숟갈씩 퍼 먹기 시작했다.
야금야금 먹은 꿀은 어느새 반병으로 줄어들었고 나는 어머니께 야단을 맞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 일로 인해 야단을 맞은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어머니가 모른 척 넘어가신 모양이었다.
정작 야단을 맞은 건 똥 과자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달고나를 똥 과자라고 했다.)
친구들이 똥 과자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나에게는 신세계 같은 것이었다. 국자에 설탕을 녹여
흥건하게 만든 후 소다를 섞으면 갈색으로 변하였는데 그것을 쏟아 식히면 똥 과자가 되었다.
시작은 숟가락이었는데 그다음엔 국자, 그다음엔 냄비로 바뀌어 갔다.
똥 과자는 생각보다 빨리 타 버렸다. 덕분에 그릇들도 번번이 새까맣게 변해갔고 엄마가 보시기 전에 몰래 탄 그릇들을 버리느라 바빴다.
점점 그릇들이 줄어들자 엄마는 결국 회초리를 드셨다.
어쩔수 없이 이실직고를 했고 집에서도 쫓겨났다.
이번에는 호떡을 만들어 먹었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그 속에 노란 설탕을 잔뜩 집어넣고 후라이팬에 구워내면
우리에게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오빠들과 동생은 내가 해준 호떡을 맛보고 호떡장사를 하자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나는 여전히 달달 구리를 좋아한다.
요즘은 믹스커피를 입에 달고 산다.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기가 힘들다.
식사 후, 졸음이 올 때, 몸이 피곤하다고 느낄 때는 영락없이 믹스커피를 찾는다.
커피의 달콤함이 몸에 퍼지는 순간 마법과도 같이 몸과 마음의 회복이 일어난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죽고 나면 소주잔 들고 오지 말고 믹스커피 한잔이면 충분하다.”
내가 이렇게 달달 구리를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다.
그 원인은 어머니였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두 아이를 잃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두 아이를 잃은 여인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었다.
유년의 내 기억에는 늘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동네가 떠나갈 듯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비틀거리며 걷던 어머니의 모습이 마음에 각인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큰어머니와 함께 생선장사를 다니시며 아픔을 이겨내고자 무던히 애를 썼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무렵 나는 다정하게 자식들을 챙기고 살림을 하는 친구들의 어머니가 그렇게 부러웠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사는 삶을 택했지만
어린 여자아이인 나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을때 공허함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어린애가 무슨 공허함이냐고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소아 우울증을 앓은 게 아닌가 싶다.
아이다운 밝은 기운은 없고 지나치게 조숙하여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으니 말이다. 매일 죽을 궁리를 했다.
그럴 때마다 입에 넣는 달달 구리는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달 달한 것을 입에 넣으면 마음이 안정됐고 우울한 기분도 조금 누그러졌다.
나는 달달구리 중독자였다.
어머니가 술로 그 마음의 위로를 받았듯이 나는 공허한 마음을 달달 구리로 채워 나갔다.
자식 잃은 상처로 힘들어하신 어머니, 그 어머니의 부재로 마음이 병들어 간 딸.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위장하는 암팡진 계집애. 그가 바로 나였다.
엄마는 나를 몰랐고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
사춘기가 왔을 때 어머니와 나의 갈등은 최고조를 이루었다.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어머니로부터 공급되어야 할 사랑이 메마른 어린아이였다.
죽어라고 어머니에게 대들었다. 어머니가 매를 들면 온몸으로 다 맞았다. 더 때리라고 소리를 쳤다. 맞고 나면 몇 날 며칠 밥을 먹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굶었다.
결국은 어머니가 눈물을 떨구고 사정을 할 정도였다.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건 어느 날 잠든 내 곁에서 피멍이 든 종아리에 약을 바르며 우시던 어머니의 고백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우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까...내가 너무 힘들어서 너를 잘 챙기진 못했지만 너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내 금이야 옥이야 귀한 딸이다.” 어머니의 한 방울 눈물이 내 상처에 떨어지는 순간 치유가 시작됐다.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달달 구리를 찾는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어머니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지만 가끔씩 유년의 아픔이 덧나 마음이 허전할 때가 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 주셨다.
몸이 아파 곧 돌아가실 듯하다 가도 버티고 견디어준 것은 내게 아픔을 덜 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안다.
내게 충분한 사랑을 주시고 이젠 어머니 없이도 살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셨는지 어느 날 어머니는 그토록 그리던 잃어버린 자식들 곁으로 떠나셨다.
이제 다시는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만나 회포를 풀었을까?
평생에 그리움이었던 자식들을 만났으니 행복하시겠지.
나도 언젠가는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달 달한 커피 한잔을 들고 소파에 몸을 기댄다.
몸속 가득 달콤함이 퍼져 나간다. 그 달콤함 속에 어머니의 추억도 같이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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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01
발칙한 통영 가시나
02
달 달구리
03
골목에 서다
04
저 푸른 초원 위에
05
아침에 눈을 뜨면
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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