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통영 가시나

통영은 어머니고 어머니는 통영이다

by 꿈꾸는 덩나미

에메랄드 바다가 품고 있는 작은 소도시. 통영.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시골 촌뜨기다.

말수가 적고 공상하기를 좋아하고 글이나 그림을 끼적거리기를 좋아하는 가시나.

아카시아가 온 마을에 향기를 뿜어내면 언덕에 앉아 하염없이 공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가시나.

빨강 머리 앤이 자신인 듯 착각하고 산 가시나.

친구들과의 놀이보다 동화책 속 주인공들과 은밀한 사랑을 꿈꾸던 발칙한 가시나.

바로 나였다.


그런 내게 첫사랑이 찾아왔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마을에서 하숙을 하셨고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곱슬머리가 매력적이었고 아담한 키조차 커 보이는 활달한 분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숨기려 애썼는데 결국엔 선생님이 눈치를 채고 말았다.

서툴게 고백을 했다.

부지런히 자라서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선생님께 시집을 갈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우리 학교에 제자랑 결혼하여 알콩달콩 사는 선생님 부부가 계셨는데 내 롤 모델이었다.

나랑 선생님도 열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못할게 뭐람.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여고 졸업을 1년 남겨두었을 무렵 다른 선생님과 결혼을 했다.

가끔 생각해 본다.

선생님은 왜 조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결혼을 했을까?


그 당시 통영에는 고등학교가 4개 있었다.

학교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 되면 무리를 지은 아이들이 이문당(서점) 근처 중앙시장 쪽으로 약속이나 한 듯 모여들었다.

통영여고, 통영 상고, 충렬 여상 아이들도 일부러 그곳까지 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기도 하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남망산 근처를 걷기도 하고 어쩌다 그 근처에서 미팅을 주선한 친구에게 대타로 끌려가기도 했다. (통영고는 공부하느라 더 늦게 마쳤다)

미팅? 대학생들이나 한다고 생각한 미팅을 여고생이었던 우리도 하게 되었다.

빵집에 3:3으로 앉아 취미가 뭔지, 가족이 몇 명인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이런 시시껄렁한 질문을 하면서어른이 된듯한 착각에 빠졌다. 거의 1회 만남으로 끝나기가 예사였지만 그래도 재미난 경험이었다.

하루는 친구가 자기 동네 오빠가 전해달라고 하더라면서 쪽지를 전해 주기도 했다.

그 속에는 본인 이름, 학교, 만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약속장소에는 나가지 않았다. 쉬운 여자로 보이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누구였을까? 궁금한 마음이 늘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동생에게 만화책을 잔뜩 빌려줬다.

그 친구는 내 동생에게 환심을 사서 나에게 잘 보이려고 했는데 동생은 책만 보고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우리 앞집에 사는 동창은 대놓고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는데 나는 그 친구의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훗날 내가 시집간다고 남편을 우리 동네에 데리고 왔을 때 그 친구는 남편을 힐끗 쳐다보더니 “니 저 사람하고 결혼하나? 진짜가?”라며 작은 소리로 말하고 웃었다.

이 친구의 의도가 느껴져서 너무 불쾌했다. "너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홱 돌아섰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다. 교실에서(지금은 학교가 이전함) 창밖을 내다보면 멀리 바다 위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윤슬이 마치 마법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그것은 공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마법의 지팡이 같았다.

빨강머리 앤이 되어 길버트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마녀에게 잡힌 라푼젤이 되어 긴 머리를 이용하여 왕자님과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그렇게 허우적거리다 보면 어김없이 선생님의 꿀밤이 날아왔다.

그 시절 우리 사이에 <베르사유의 장미>와 <캔디> 그리고 <미스터 블랙>이라는 순정만화가 한창 유행했다. 한 친구가 만화를 빌려와 우리에게 순서를 정해 빌려주었다. 그러다 선생님께 들키면 그날은 교무실에서 벌을 서거나 손바닥을 맞았다. 수업 전에 예고 없이 가방 검사를 하기도 했는데 보통 만화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영리한 내 친구는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만화책을 창밖 화단으로 홱 던졌다. 차마 만화책은 포기할 수 없었다.

만화책만큼이나 유행한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손바닥만 한 작은 책자의 연애소설이었다.

사춘기 소녀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연애소설... 그랬다. 우리는 책을 통해 연애를 배웠다.

나중에는 이런 소설을 직접 써보자 싶어 공책이나 연습장 뒤에 쓴 후 10장에서 20장을 묶어 친구들 사이에 돌려 보기도 하였다. 그것이 또 들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돌려가며 읽고 수업 시간에 소설의 내용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 나는 민망함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 당시 우리는 소풍을 가면 카세트와 테이프를 같이 들고 갔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우습기도 하고 황당할 수도 있겠다 싶다.

체육복을 입고 소풍을 갈 때도 있었지만 자율복으로 알록달록하게 입고 소풍을 가기도 했다.

그러면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부리고 선생님들과 동등한 어른이 된 것처럼 어울려 놀았다.

그때에는 디스코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춤이 유행이었다.

학생과 선생님이 디스코 춤을 추며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웃긴가!


요즘 아이들도 교련 수업이란 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이런 말을 하니 꼭 노인네가 된 기분이다)

그때에는 과목 중에 <교련>이란 수업이 있었는데 뙤약볕 아래에서 훈련을 받다 보면 약한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픽픽 쓰러지기도 했다. 그 친구들은 양호실로 가거나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할 수 있었다.

쓰러지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쓰러지고 싶다고 주문을 외웠지만 마음과 달리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게 아닌가. 교련 수업 일환으로 학교에서 죽림입구까지 행군을 하면 탈락하는 아이들이 종종 나왔는데 나는 이것도 끝까지 해 내고야 말았다. 강한 통영인임에 틀림없었다.


그 무렵 이상한 제목의 영화가 통영에 들어왔다.

왜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었던 것일까?

선생님 몰래 자율학습을 빼먹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갔다.

아! 이렇게 낯 뜨거운 영화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는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까 봐 숨을 죽이고 그 영화를 봤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의 내용인데 제목만큼은 여태껏 기억이 난다. <무릎과 무릎사이>


나는 친한 친구가 많지 않았다.

희ㅇ이와 현ㅇ이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삼총사처럼 지냈다. 하지만 셋이다 보니 둘이 친한 기색이 보이면 한 친구가 상처를 받고 다시 화해하고 또 한 명이 상처를 받고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은 시내에 거주했고 나는 통영 면 단위에 사는 시골뜨기 아이이다 보니 우리 사이에도 수준차이가 극명했다.

일단 도시락 반찬이 나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 어머니는 요리실력이 영 별로였다. 딸아이를 위해 최고로 신경 쓴 반찬이 계란찜이었다.

부드러운 계란찜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리 자주 가지고 가지 못했다. 게으른 닭이 계란을 잘 낳지를 않았다. 하지만 희ㅇ이와 현ㅇ이는 달랐다. 계란말이를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해 오는지. 멸치를 윤기가 자르르하게 볶아 오기도 하고 햄이라는 귀한 걸 구워 오기도 하고. 내 도시락을 꺼내기가 민망했다.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 반찬을 보며 굶는 걸 택하는 날이 많았다. 우리 어머니의 도시락 반찬은 양파 볶음, 김치 볶음, 멸치볶음 이런 게 대부분이었는데 그마저도 친구들의 윤기 나는 볶음과는 너무 차이가 났다.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기였다.

내가 엄마가 된 이후에 나는 아이들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어린이집 소풍 때나 학교 소풍 때 내 몸이 부서져라 도시락에 집착했다. 예쁘게 예쁘게 무조건 예쁘게. 하지만 내 노력에 비해 우리 아이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희ㅇ이의 오빠는 서강대를 다닌다고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대학을 다닌다는 건 언감생심 꿈꾸기도 힘든 환경인데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닌다니...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은행이나 관공서에 취직이 우리가 꿈꾸던 미래였다.

그마저도 상고를 나온 친구들의 이야기 였고 인문계를 다닌 우리는 대학을 가야 의미가 있었다.

야무진 내 친구들은 야간대학이라도 가겠다고 원서를 들고 교무실을 들락거렸다.


그렇게 통영은 내 인생의 기초가 되는 모든것을 제공해 주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작은 도시이고 그 속에서 예전의 나처럼 꿈꾸는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다.

우리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아마도 빨강머리앤을 친구로 삼은 아이가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통영은 오늘도 사람들을 품고 꿈을 꾸게 하고 자식들을 길러낸다.

내 어릴 때 추억이 알알이 박혀 있는 통영.

그 속에서 꿈과 희망을 퍼 올리며 자라난 가시내와 머슴애들이 오늘의 너희 아버지고 어머니란다.


통영이 그렇게 우리를 길러내었다.

통영이 나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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