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감정 다스리기
감정은 생존의 열쇠라는 다윈의 말은 생각할수록 흥미롭다. 우리가 감정을 단순히 기분이나 일시적인 반응으로 여길 때가 많지만, 다윈은 감정을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도구로 보았다. 공포는 눈앞의 위험을 알리고, 기쁨은 신체를 회복하게 하며, 슬픔은 우리를 멈추고 생각하게 만든다. 감정은 단순히 우리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생존 본능의 일부다. 이는 특히 성숙기, 그러니까 중년에 들어설수록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는 흔히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돼’라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나이가 들면 자연히 사라질 거라 기대했던 마음 때문일까? 하지만 감정은 나이가 들었다고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은 더 복잡하고 깊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반갑지 않은 감정까지 추가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그 감정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친구가 되는 일이다.
몇 달 전 내가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모든 기구가 처음에는 괴물처럼 보였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무릎이 덜덜 떨리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경험을 해본 적 있나? 어떤 도전을 앞두고 자신감이 사라질 때 말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억누르지 않고, 그 감정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왜 두려운 걸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대한 불안일까? 아니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까?" 이런 식으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느 날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갑작스레 불안감을 느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왜 지금 이렇게 느낄까? 대화를 통해 내가 기대했던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끝에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충분히 공감받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었다. 이를 깨닫고 나니, 오히려 상대에게 더 솔직하게 내 감정을 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대화는 더 깊어졌고 불안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감정은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려는 무의식적 신호이다. 내가 두려움을 마주하고 그 이유를 이해하려 했던 순간, 헬스장의 기구들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줄 기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난 후, 처음으로 러닝머신에 올라 10분을 뛰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은 정말 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처음으로 스쿼트를 했을 때는 ‘내가 해냈다’는 기쁨이 불안과 두려움을 완전히 눌렀다. 감정은 때로 우리를 막는 듯 보이지만, 잘 활용하면 더 큰 용기와 힘을 주는 도구가 된다.
성숙기에는 감정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성숙기는 사회적 책임도 많고 과거의 경험이 켜켜이 쌓인 시기다. 그만큼 감정은 더 민감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를 억누르려 하기보다는 다윈의 말처럼 그것을 생존을 위한 도구로 여겨야 한다. 감정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지도와도 같다. 불안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고, 두려움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길을 잃지만, 그 신호를 잘 따라가면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 "감정은 바람 같은 것이다. 우리가 그 바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 말이 딱 맞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잘 다루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감정은 그렇게 우리의 내면과 대화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길들여진다.
그래서 감정은 결국, 우리의 일부다. 그것을 억누르기보다 친구처럼 대하고, 필요하면 가볍게 농담도 던져보자. "그래, 불안아. 또 왔니? 이번엔 뭘 알려주고 싶어서 그래?" 이렇게 감정을 대하면 성숙기라는 시기는 훨씬 덜 두렵고 오히려 재밌게 느껴질 것이다.
감정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건 거창한 명상이나 이론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을 마치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처럼 가볍게 여겨보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을 다루며 삶의 바람을 활용할 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다윈이 말한 생존의 열쇠가 바로 그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