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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라티 Feb 03. 2024

양배추 김치

평소에 미안하다는 소리를 그렇게도 하기 어려워, 잘못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세세한 것에도 그렇게 집착을 잘한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기가 힘들어해 그 한 번 인정하고 말면 되는 것에 쓸데없는 집착을 한다. 사람들 중에 미안하다는 사과를 잘하는 사람과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그렇게도 잘 아는 사람 중에 나는 항상 후자였고, 그것이 마치 상인 마냥 똑똑한 척해왔다. 알고 보니, 사과할 줄 아는 사람들은 멍청해서가 아니라, 무턱대고 물 것처럼 달려드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여유 있게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김치와 자격지심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접한 동네 주민들로부터 김치를 만들 줄 아냐는 질문을 들었다. 한국의 음식을 떠올렸을 때 인지도 높은 음식이자, 우리 고유 전통을 가지고 있는 김치를 단 한 번도 직접 담가 본 적이 없다. 김치라는 것은 뭔가 가족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 아닌가. 나의 외갓집은 경상도 대구로 대구에서 먹은 김치는 서울 김치와는 다르게 좀 더 짭짤하고, 젓갈의 풍미가 강한 김치다. 가끔 외할머니댁에서 김치를 받아먹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집은 항시 서울 김치를 사 먹는 편이었다.


그래서 김치를 만들어봤다. 백김치를 두 차례 담가봤다. 두 번 모두 백김치 대부분을 버려야 했다. 당시 김치용으로 담글 고춧가루가 없었고, 이곳 주민들이 매운 것을 좋아할지에 대한 우려가 있어 백김치를 담가봤다. 찹쌀가루가 없어 밀가루 풀로 만들었고, 처음 며칠 후 담가 둔 김치는 시원하고 서걱서걱하니 맛과 식감 모두 좋았다. 그러나 이는 며칠 안가 바로 상해버렸고, 처음에 배추를 절인 과정에 잘못되었나 싶었지만, 제대로 밀봉하지 않은 김치통과 주방에서 자주 열렸다가 닫히는 냉장고에 보관한 것이 잘못된 선택인 듯싶다.


2번째 백김치를 만들었을 때이다. 하루는 샐러드에 약간의 가니쉬로 백김치를 썰으면 좋겠다 싶어, 이를 시식해 봤고 내가 먹은 부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미 첫 번째 백김치가 며칠 안가 맛이 상함을 알고 있는 장은 본인이 맛을 한 번 보겠다 하였다. 이후 그가 먹은 부분은 완전히 맛이 간 김치였고, 큰 일을 치를 뻔한 상황이 되었다. 상한 음식을 내놓는 것은 주방의 치명적인 실수다.


그는 나에게 몹시 화를 냈고, 그래도 분위기를 무마하겠다고 장난을 치던 나는 그의 화를 더욱 부추기게만 했다. 이후 주방은 냉랭하고, 재미가 지독히 없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괜찮아질까 싶었지만 자기 전까지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 김치가 뭐라고. 결국에는 우리 둘의 자존심 싸움이다. 나는 왜 바로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는 왜 굳이 본인의 경력을 걸고, 경력 없는 나의 모습을 지적했을까. 김치를 한 통 버린 나 자신도 속상했는데 말이다.


속상해 친구에게도 전화를 해보고, 엄마와도 수다를 잔뜩 했다. 그에게 있어서 책임감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중요시하는 값어치를 장난으로 대충 넘기려 하며, 오히려 내가 속이 상한 것처럼 빈정거렸다. 사과 한 번 하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아픔의 김치 사건이 있었지만, 최근 아시아 마트에서 구매한 한국산 고춧가루를 가지고 고춧가루의 맛을 담아보기로 결정했다. 마침 양배추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던 차였다. 이곳 사람들이 매운맛을 좋아하는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안 해보면 모를 것 같아 그냥 해보기로.


양배추 김치 레시피


양배추 1/2통

양파 1개

굵은소금

파 1/2단


양념

고춧가루 1/2컵

다진 마늘

(나는 마늘 4-5개를 갈았다)

양파 1개 간 것

미림

(설탕 대용)

피시 소스 4스푼

(멸치 액젓이 없어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태국제품 피시소스를 사용했다)


양배추는 깨끗하게 씻은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1시간가량 굵은소금과 물에 절인다.

양파와 파는 얇게 채를 썬다. 1시간 후 절인 양배추를 물에 헹군 후 양념재료와 파, 양파 썰은 것을 모두 함께 잘 버무려두면 완성이다. 양배추는 배추와 달리 더 아삭아삭한 식감과 겉절이와 같은 싱싱한 맛에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비큐와도 잘 맞을 듯싶었다.





호주에서도 오지인 알파라 이곳에서 김치를 내어보다니! 소심하게 김치 3통 정도를 냉장고 진열대에 넣어뒀다. 다음날 김치가 모조리 사라져,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가게 매니저가 버렸나 싶을 정도로 예상외였다. 며칠 후, 새로 김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동네 주민이 혹시 매운 양념소스를 만들어줄 수 있냐고 문의한다. 이상하게 김밥도 만들면 만드는 대로 사라져 버리고, 요새 들어 동네 주민들과 음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나의 기대와도 같다. 기대라는 것과 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없어지니 하루하루가 더욱 알차게 느껴진다. 이곳에 처음 옮겨와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어떻게 하면 전문적인 사람처럼 보일 것인지, 그렇게 파트너 장과 비교를 해가며 혼자 속상해했다. 기대와 욕심만이 앞서면 본인만이 최고로 속상한 사람인 척 군다. 그 구렁텅이에서 잠시 눈을 떼면 있는 그대로 나를 포용해 주는 주변 환경에 다시 한번 안도감을 느낀다.


기대와 달리, 우리의 계획과 달리 한 달 이내에 우리는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래도 이곳을 떠날 때, 좋은 순간을 만들어 떠나고 싶다. 어떤 이에게는 내가 잘못이고, 나에게는 그 사람이 잘못이다. 상황에 따른 순간의 판단이다. 그 판단의 잣대로 남들의 잘못만 콕콕 집어내다 결국에 행복한 기억보다는 피해자의 모습으로 떠난 적이 있다.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주지 않는다 하고 우리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시기의 탓이다. 피해자인 것처럼 떠들어댄 오만한 나는 그들의 눈을 직접 보지 못하며 떠나곤 했다. 이번만큼은 두 눈을 똑바로 보고 떳떳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다.


한 달 남짓 남은 기간 동안 최고의 음식과 웃는 얼굴로 대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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