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친할머니 댁 화장실은 마당 끝에 있었다.
흙바닥을 지나 삐걱대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은 어둡고 축축했고, 냄새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푸세식이었던 그곳에서 나는 바닥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방 안에서 요강을 더 자주 쓰려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화장실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가야만 하는 공간이었다.
나에게는 늘 두렵고,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곳이었다.
초등학교 화장실은 낡은 타일과 얼룩진 세면대가 먼저 떠오른다.
문이 고장 났거나 물이 내려가지 않을 땐,
조용히 다른 층으로 이동하곤 했다.
볼일을 보며 들릴까 봐 일부러 소리를 냈던 습관
그건 누구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화장실은 분명 기능적인 공간이지만
개인의 감정을 담기에는 다소 부족한 공간이었다.
도서관, 대학교, 백화점 등 공공시설을 다니면서
언젠가부터 화장실은 깨끗하고 밝은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비데가 달린 양변기, 가방걸이, 음악이 흐르는 공간까지
예전의 삭막한 분위기는 조금씩 사라졌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남성 화장실은 비교적 여유롭지만 여성 화장실 앞은 항상 길게 줄이 서 있다는 점이었다.
그 차이를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제 화장실은 위생뿐 아니라 젠더 감각과 배려의 기준이 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갔다.
2000년대 후반부터 화장실에는 서로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하나씩 더해졌다.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평상, 낮은 세면대, 휠체어도 들어갈 수 있는 넓은 칸.
아이와 함께 들어간 아빠를 위한 공간도 생겼고
자동문과 손잡이, 경사로도 갖추기 시작하였다.
화장실은 누구든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라기보다
사람을 더 생각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 변화였다.
가끔 “내가 이 칸을 써도 될까?” 하고 망설인 적도 있지만
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따뜻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를 조용히 배려해 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는
도쿄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반복되는 청소, 나무 그림자, 고요한 틈, 도쿄의 하루
영화는 말없이 보여준다.
화장실이라는 조용한 공간이
얼마나 섬세한 감정과 삶의 결을 담고 있는지
그 장면을 보며 문득 내 기억이 떠올랐다.
어두운 푸세식 화장실부터 자동문이 열리고 음악이 흐르는 지금의 화장실 까지
화장실은 잠깐 머무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해주는 지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