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도시에서 살아있는 도시로

by 리박 팔사

이것이 도시계획이 원했던 삶이었을까?


제1장 새로운 이웃들


우리가 신도시로 이사 왔을 때, 나는 겨우 열 살이었다.

기억 속 도시는 눈부시게 새것처럼 보였다.

모든 건물들이 반듯했고 갓 심은 어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대부분 나의 부모님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부부들이었고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모두를 이곳으로 모아 놓은 것 같았다.

1990년대 초중반, 우리가 살던 이 도시는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젊은 그야말로 젊은 도시이자 새로운 도시에 우리가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 젊고 새로움은 곧 활기로 이어졌다.

아침이면 초등학생들이 길에서 등교하였고 저녁이면 아빠들이 퇴근 후 공원에서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모두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나가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이라는 공통분모가 우리를 묶어두는 끈이었다.


제2장 비슷한 환경, 비슷한 직업


우리 동네 부모님들은 하나같이 배움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

나중에 알게 된 통계에 따르면 우리 신도시에는 성인 두 명 중 한 명 이상이 대학교를 졸업한 고학력자였다고 한다. 서울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도 교육에 대한 기대치가 높게 작용하였다.

학교가 끝나면 다들 비슷한 국영수 학원으로 향했고 저녁에는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문제집을 풀었다. 주말에는 논술 등을 삼삼오오 모여서 공부하였다.

부모님들의 대화주제도 친구들의 관심사도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었기에 교육 또는 대학은 우리 공동체의 가장 큰 화두였고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들의 직업군도 왠지 모르게 비슷하였다. 우리 아빠는 경찰이었고 윗집 아저씨는 은행원이었다. 친구들 아빠 중에는 선생님, 공무원, 공기업, 방송국 직원도 있었고 공장 사장님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신기했던 건 대전에서 이사 온 친구 아빠가 교수라고 했을 때였다. 난생처음 듣는 직업이라 그게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어렴풋이 아는 이른바 깔끔하고 안정적인 직업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직업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제3장 평일은 다르게 주말은 똑같이


당시 신도시는 활기차고 바쁘게 돌아갔다. 부모님들은 아파트 부녀회, 동호회, 품앗이 모임 등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신도시 주민들의 사회활동 참여율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았다고 하니 우리는 그야말로 고향을 떠나와 뭉쳐서 살아가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셈이었다.

서로 비슷한 배경을 가졌기에 공동의 관심사와 목표를 가지고 쉽게 연대할 수 있었다.

주말이면 학교 운동장은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의 함성을 가득했고 아파트 상가에서는 교회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모든 활동이 신도시라는 새로운 터전에서 비슷한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 활발함 속에서도 아침마다 수많은 아빠들이 서울 등 일터로 향하였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신도시 주민 셋 중 한 명은 서울 등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생활의 편리함과 쾌적함을 찾아서 신도시로 왔었지만 정작 노동은 여전히 서울 등에 종속되어 있었다. 거대한 서울의 확장판이고 배드타운의 전형이었다.


제4장 신도시에서 노후계획도시로


어느덧 시간은 30년 이상 흘렀고 우리도 40대가 되었다.

우리의 도시 또한 신도시보다는 노후계획도시로 불리고 있다.

단순히 시간만 경과된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다 비슷해 보이던 나와 친구들의 삶에도 미묘한 다름의 흔적들이 새겨지기 시작하였다.

IMF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사회적 격변은 우리 동네에도 알게 모를 경제적 차이를 만들어냈고 좋은 교육을 향한 열정은 숨 막히는 입시 경쟁으로 변모하여 친구들의 관계에도 미묘한 긴장을 불어넣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신도시의 아파트값이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자, 이웃들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드리워졌다.

결국, 하나둘씩 이사를 가는 집들이 늘어났다. 어떤 친구는 새로 지어진 2기 신도시로, 또 어떤 친구는 서울의 오래된 동네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들의 빈자리를 보며, 서로 연결해 주던 끈이 서서히 풀리고 있음을 느꼈다.

이처럼 이웃들의 변화와 함께 도시의 풍경도 달라졌다.

한때 모두가 주말이면 대형 마트와 백화점으로 향했지만 언제부턴가 골목길 안쪽에 아파트 상가에 숨겨진 작은 카페들이 생겨나는 등 문화 소비 방식도 점차 다양해졌다.

오랜 시간 굳건한 비슷함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고 신도시 안에서도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변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5장 다양성을 담을 수 있는 도시를 향하여


신도시에서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자란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바로 안정감과 소속감, 그리고 높은 수준의 교육과 주거환경 등은 도시계획이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완벽하게 설계된 도시에서 자랐고 좋은 삶의 기준도 언제나 우리 주변의 비슷한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학습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비슷함 속에서 ‘다름’이 주는 자유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획일적인 환경은 예측가능한 일상을 만들었지만 그 속에서 우연한 만남이나 이질적인 경험이 주는 설렘은 없었다. 어릴 때는 미처 몰랐지만 어른이 되어 구도심의 낡고 복잡한 골목과 낯선 동네에서 마주친 다양한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생동감을 주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도시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서 도시민이 생활환경을 직접 설계하고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에 첫째, 공원, 놀이터, 커뮤니티 공간 등 공공공간을 전문가나 행정 주도만이 아닌 주민이 함께 설계하고 꾸려갈 수 있도록 참여 기반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아파트 단지 중심의 일방적 개발에서 벗어나 유휴 공간이나 공원 등은 주민의 제안으로 디자인 또는 기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혹은 과정에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아마도 우리가 자랐던 신도시는 뛰어난 계획성과 질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계획 속에 예측 불가능한 삶의 서사와 다양한 시민의 손길이 더해질 때, 비로소 도시는 진정한 유기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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