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가장 좋아하는 것’

by 리박 팔사


별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제1장 가장 좋아했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


2000년대 초반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준 것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였다.

PC방에서 친구들과 밤을 새워 게임하던 시절, 스크린 속 그녀의 솔직하고 엉뚱한 모습에 매료되었다.

당시 사회는 튀는 것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지만 이 영화 속 그녀는 그런 편견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그녀가 남자 주인공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는 모습은 나에게 호감으로 다가왔다.

그때의 나는 그저 영화가 재미있어서 웃고 울었을 뿐인데, 옳고 그름을 따지며 영화를 평가할 줄 몰랐다.


제2장 가장 좋아했던 축구선수, 베컴


그 시절, 내가 가장 열광했던 축구선수는 단연 데이비드 베컴이었다.

그가 경기장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프리킥과 정확한 크로스 그리고 팀을 위해 묵묵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좋았다.

그의 화려한 외모나 머리스타일, 그리고 패션, 라이프스타일도 좋았다.

베컴의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반복하면서 보았고 열광하였다.

그를 따라 머리를 길러보기도 하고 그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사고 싶어서 조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축구 전술이나 선수들의 몸값, 혹은 감독의 역량을 따지지 않았다.

그저 베컴이 공을 차면 환호했고 프리킥 순간에 긴장했으며, 골을 넣으면 함께 기뻐했다.


제3장 가장 좋아했던 게임, 위닝 일레븐


위닝일레븐을 참 자주 했다. 2000년대 위닝은 지금처럼 화려한 그래픽이나 복잡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단순한 게임 이상이었다.

혼자서 마스터리그를 해도 낄낄거리며 골을 넣고 아쉽게 지더라도 다음 판을 기약하였다.

그 시절의 게임은 해외 선수들을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어떤 전술이 더 효율적인지 더 현실적인지를 따지기보다는 게임 자체를 즐겼다.

토요일 오후 시간은 혼자 게임하며 즐기는 시간이었고 추억이었다.


제4장 가장 좋아했던 만화, 슬램덩크


당시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만화는 슬램덩크였다.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등 그들의 성장에 울고 웃었다.

그때는 복잡한 농구 전술이나 스토리의 개연성을 따지지 않았다.

강백호의 바보 같은 행동에 따라 웃고 멋진 슛이 들어가면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마지막 서태웅과 강백호의 하이파이브 장면에서 나는 그저 만화가 주는 순수한 열정과 감동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슬램덩크는 나에게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무언가에 열광하는 법을 가르쳐 준 추억이다.


제5장 결론: 잃어버린 ‘가장 좋아하는 것’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들을 잃어버렸다.

그때의 순수한 감정들은 어느새 복잡한 평가와 분석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남을 의식하며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그 속에서 예전과 같은 즐거움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인가에 대해 예전처럼 순수한 열정을 쏟고 싶지만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옳고 그름의 저울질이 시작된다.

내가 잃어버린 가장 좋아하는 것들은 단순히 세월 속에 묻힌 추억이 아니라 내 안의 비판적인 시선과 완벽주의에 의해 억눌렸던 순수함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지금의 나에게서 순수한 감정과 기억을 되찾아오는 일이 필요하다.

2000년대의 기억들을 꺼내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잃어버린 좋아하는 것을 되찾고 소중한 나 자신까지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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