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수능성적표를 손에 쥔 날, 나는 그저 점수가 가장 높은 학교와 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사람들이 꿈이니 적성이니 말할 때 나는 효율을 택하였다.
시간 낭비하지 않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믿었다.
그런데 재미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찾아왔다.
억지로 시작한 전공이었지만 파고들수록 꽤 괜찮았다.
나는 점점 진심을 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좋은 결과도 뒤따랐다.
“역시 나는 이 길이었어.”라는 착각 속에서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세상은 내 앞을 가로막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실망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그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이 길이 내 갈 길이 아니라는 신호였을 뿐”
그때부터 실패는 두려움이 아닌 방향을 바꾸라는 메시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전공을 바꿨다.
사람들은 나를 도망친 패배자라고 말했다.
나 역시 때때로 미련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때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하지만 곱씹을수록 분명해졌다.
미련은 그저 미련일 뿐, 거기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과거에 매달려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현재에 집중하자 묶여 있던 족쇄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전공은 낯설고 어려웠다.
매일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인생은 멋진 계획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계획이 무의미하기보다는 삶은 계획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만 산다.
오늘 공부하고 오늘 먹고 오늘 웃고 오늘 잠든다.
그렇게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남들은 성공이라는 이름의 경주를 달렸다.
나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걸었다.
언제나 정답처럼 보이는 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포기했다.
그 길은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몰려가는 고속도로였다.
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샛길을 택했다.
험하더라도 그 길은 내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까.
남들이 정해놓은 루트를 따르는 삶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삶을 살고 싶었다.
물론 흔들릴 때가 많았다.
남들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결국 나는 내가 쌓아 올린 작은 성과마저 내려놓았다.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나는 생활인이자 기능인이 되었다.
밥을 먹고 일하고 자는 일상에 만족하게 되었다.
욕심을 내려놓자 이상하게도 잃을 것도 없고 남을 것도 없었다.
그냥 내 삶이 되었다.
미련, 계획, 인정 욕구.
나를 지배하던 것들이 사라졌다고 믿고 있다.
나는 그저 평온하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남들이 성공이라는 쳇바퀴 속을 도는 동안, 나는 그냥 그 바깥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더 이상 실패할 용기가 없기에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냥 놔둔다고 알아서 굴러가지는 않는다.
지금 이 평화가 진짜 평화인지 아니면 현실을 회피한 무기력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다시 나만의 길을 찾아 나설
용기를 꺼내야 할 때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