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은 대리로서 마지막 해였다.
거래가 없던 병원에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제품을 심었고, 부진을 면치 못하던 국립 **병원을 살려냈다.
특히 국립 **병원에서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1차 처방권자인 주치의 선생님과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서는 밤이 좋다. 아무래도 낮에는 다들 정신없이 바쁘지 않은가. 눈치 없이 붙들고 늘어지다가는 될 일도 그르치기에 십상이다.
밤은 낮보다 여유가 있다. 말단으로서 고충을 듣고 위로도 하고, 내 생각을 편하게 건넬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나라는 情이 통하는 사회다.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나누다 보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풀리곤 한다. 당시엔 주치의 선생님들과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서로의 애틋한 사정을 알아주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다 보니 집에는 매일 늦게 돌아왔다.
병원에서 나오는 시간이 늘 밤 10시가 넘었으니까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었다. 지하철이 끊어지면 사당동에서 안양까지 총알택시를 타야 하기도 했다.
결혼한 지 겨우 3년,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아기가 둘.
지방에서 날 믿고 시집온 천사 같은 아내의 격려와 배려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새벽에 집을 나와 지옥철을 꼬박 두 시간 타고 출근해, 다시 전쟁을 치르는 일과의 연속이었다.
일상에 젖어서인지, 젊어서인지 그리 힘들다고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일이 잘 풀려서 즐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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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번째 시즌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 더는 남은 여백이 없다.
1편까지 합해서 총 55회를 연재했는데 겨우 5년 치다.
앞으로 30년 이상 남았다. 시즌이 얼마까지 갈지 나도 궁금하다.
재미있게 읽어주는 독자님들이 계시기에 더욱 열심히 이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