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결혼하고 정확히 1년이 지나, 고대했던 아이가 생긴 것이다.
난 장남이고 우리 집이 손이 귀한 집안이라서 어른들도 무척 기다린 희소식이었다. 아내 산부인과 첫 진료 때, 나는 마침 회사 단체 여행(Incentive Trip) 중으로 해외에 있었는데 아내의 들뜬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기쁜지.
함께 간 동료들의 쏟아지는 축하 환호성을 들으며 기쁜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새 생명에 대한 기대감,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했다는 안도감 등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겨우 우리 나이 서른이 된 우리 부부는 이때부터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경험으로 다소 우왕좌왕하기는 했으나 비교적 슬기롭게 10개월 지낸 것 같다.
동네 산부인과는 내 거래처인데 개인적으로도 형님 같은 분이셨다. “여자애가 좋아? 남자애가 좋아?” 장남인 내 사정을 잘 아시는 분이라서 답이 뻔한 질문을 하셨다. 그래도 뻔한 대답을 할 수야 있나. “첫애인데 뭐라도 좋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35년 전 성별을 가르쳐주는 것이 엄격히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 ‘뭐라도’ 좋지!” 충분히 답이 되었다. 이심전심. 잘~~ 전달되었습니다!
사실 부모님은 아들을 엄청 기다리셨지만 진짜로, 정말로 우린 상관없었다. 그저 좋기만 했다. 그날 우리는 기분 좋게 맥주 한잔했다. (아마 나 혼자 마셨을걸? 아내는 술을 못한다. 대신 치킨은 엄청 좋아한다. 아마 치킨만 먹었을 거야)
그리고 딸이 태어날 때까지 부모님은 아이의 성별을 모르셨다.
임신 기간 내내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입덧도 없었고 말이다. 단지 아내의 차멀미가 좀 더 심해진 정도. 순탄했다. 어머니께서 올라오셔서 팔뚝만 한 잉어를 고와주셔서 아내가 곤욕을 치르면서 다 먹은 일이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다.
1990년의 일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자.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행복 엔돌핀이 뿜뿜한다.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지다니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