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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경 Jul 20. 2023

자퇴는 일반적으로 '해결'이 아닌 '도피'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자퇴한 교육학 전공자의 자퇴 이야기

오늘은 제목이 조금 공격적이다. 하지만 자퇴에 당면한 학생이라면 꼭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주제라고 생각하여 적게 되었다. 


우선 글에 앞서 밝히고 싶은 점은 모든 자퇴가 도피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라는 말을 제목에 붙였다. 다수가 행하는, 일반적의 자퇴의 형태가 도피에 가까울 뿐, 다른 형태의 자퇴도 매우 많다.


또한 모든 '도피'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밝히고 싶다. 삼국지나 전쟁 콘텐츠를 보면 '전략적 후퇴'라는 말이 나온다. 그저 형태만 보았을 때는 후퇴에 불과하지만, 전략적 후퇴는 결국에 더 큰 승리를 위한 발판이 된다. 불가항력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현명한 것은 그 상황을 너무 힘들게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후퇴'를 통해 상황의 개선을 꾀하고 이후에 더 큰 성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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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자퇴가 곧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자퇴는 '해결'보다는 '도피'에 훨씬 가깝다. 


나는 중학교 때 교우 관계가 참 안 좋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학교를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방학이 끝날 무렵 다시 학교를 가서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그래서 나는 자퇴를 선택하면 친구들을 보지 않을 수 있으니 자퇴를 선택했다. 자퇴를 하자 당연하게도 친구들을 보지 않을 수 있었고, 나는 평안해졌다. 자퇴를 선택한 15살 학생의 입장에서 이건 '문제의 해결'이었다. 나와 관계가 안 좋은 친구들이라는 '문제'를 '자퇴'로 '해결'한 것이니 말이다. 물론 이 상황을 당면한 15살 학생의 입장에서 이건 별로 틀린 말도 아니다.


근데 여러분이 봤을 때 이 15살 학생은 문제를 '해결'한 것인가? 


이 학생이 한 1년만 살다가 죽을 것이라면 이 행동은 '해결'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남은 1년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죽으면 되니까. 


근데 이 학생이 기대수명이 80년도 넘는 세상에, 앞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행동은 '해결'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학생은 언젠가 다시 '학교' 혹은 다른 형태의 조직으로 들어가야 하고, 불특정 다수가 함께하는 상황 속에 던져질 것이다. 이 경우 언젠가 다시 마주해야 할 문제를, 마주했을 때 해결할 대책 없이 상황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도피'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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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도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히 있다. 이 때는 아까 말한 '전략적 후퇴'를 해야 한다. 나는 지금 돌이켜봐도 중학교 때 있었던 친구 문제를 다시 해결할 자신이 없다. 너무 외진 시골 동네에 자기들끼리 친하던 또래 집단과, 학구적이라기보다는 야성적인 학교 분위기, 왜소하고 또래 집단의 놀이 문화와는 너무 동떨어진 나를 다시 돌이켜보아도 그 당시에 문제를 '해결'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듯하다.


그런 상황이면 과감하게 도피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러한 선택을 계속 부정적으로 '도피'라고 부르는 이유는 언젠가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를 자퇴하고 나서 특별히 인간관계 등에 개선이 전혀 없고, 또한 자퇴한 이후 또래를 만날 일이 없어 사회성이 계속 침체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나는 더더욱, 계속해서 학교를 비롯한 사회의 집단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도피'를 한 경우 필요한 자세는 문제를 직시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이다. 친구 문제 때문에 자퇴를 했다면, 학교 밖에서 나랑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 친구들로부터 또래와 소통하는 방법을 연습해 나가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랬을 때 나중에 다시 의무교육으로 복귀를 하거나, 이외의 사회 집단에 융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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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관계가 아니라 학업이 이유가 되는 상황에도 공식은 여전하다. 만약 내가 준비가 너무 안 된 상태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내신도 너무 안 나오고, 학습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상황이라 자퇴를 선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도 자퇴는 절대 '해결'이 아니다. 자퇴를 한 것 만으로는 해소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당면한 문제에서 '도피'한 것이다.


도피할 수 있다. 내가 학업으로 이루고자 하는 성취가 명확한데, 지금 내 역량으로 도저히 원하는 성취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진다면 '전략적 후퇴'가 필요한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자퇴를 한 것까지는 '도피'임을 인정해야 한다.


자퇴를 하고 나서 기초를 튼튼하게 쌓고 재입학을 하거나, 아니면 자퇴를 한 이후 검정고시를 빠르게 응시하고, 기숙학원에 들어가서 수능을 열심히 준비해서 이루고자 하는 학업적 성취를 이루는 것이 '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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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와 '해결'을 혼동한다면 자퇴 직후에 침체되기 쉽니다. 


친구 문제가 자퇴의 사유였다면, 그리고 자퇴를 '해결'로 인지했다면 이 학생은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앞으로 계속 집단 속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태로 살아간다면 이 친구에게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또한 괴로운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이후에 내가 성취해야 할 과업이 적절히 주어지지 않는다면, 마땅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곳을 쉽게 찾겠는가. 어렵다고 본다. 


학업 문제가 자퇴의 사유였다면, 그리고 자퇴를 '해결'로 인지했다면 이 학생은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겠는가. 아마 높은 가능성으로 엄청난 학습량과 압박에서 벗어난 그 상태를 향유할 것이다. 그래서 학업적인 사유로 자퇴했지만, 자퇴한 직후부터 생기는 엄청난 자유를 만끽할 뿐 학습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학생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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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의 기본적인 속성은 결국 '도피'이다. 자퇴 자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문제의 '해결'을 다시 찾아야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자퇴 이후에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면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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