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문장을 줍는 취미는 오래되지 않지만, 소중한 일상이 된 것은 맞다. 처음부터 문장을 수집했던 건 아니다. 한때는 책을 읽는 속도에만 집중해, 얼마나 빨리 또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남는 문장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를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단순히 페이지를 넘기며 이야기를 흡수하는 것만으로는 책이 내 안에 자리 잡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때부터 문장을 줍기 시작했다. 단순히 멋진 문장을 수집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문장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감정의 결을 느끼고 싶었다. 문장을 모으는 일은 마치 작은 보물을 찾는 기분이었다. 책장을 넘기며 작가의 생각과 맞닿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문장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면, 그 문장은 곧 내 것이 되기도 했다.
얼마 전, 함께 글을 쓰는 이들과 신유진 작가의 <상처 없는 계절>을 읽었다. 역시나 읽으면서 많은 문장들을 주웠다. 신유진 작가의 문장은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이 나를 넘어져도 웃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 모양이다 / 겨울입니다. 눈이 오네요. 거기, 당신은 어느 계절을 살고 있습니까? / '쓴다.' 이 믿음에는 과거형도 미래형도 필요하지 않다 / 우리가 바보처럼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오직 일리야만이 그 물줄기를 가졌다 /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향해 썼던 모든 글이 내게로 되돌아왔던 것 같다. 기쁜 이야기는 내 마음의 기쁨의 자국으로, 슬프고 아픈 이야기는 작은 성장으로 그러니 글쓰기는 결국 보내는 말이 아니라 맞이하는 말이 아닐는지 / 춤을 추듯 자유롭게 흔들리면 그만 아닌가 / 닳지 않도록 꾸준히 돌볼 것, 어쩔 수 없는 상처와 흠집을 무늬로 받아들일 것 /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쓸 수 있는 사람,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 이 문장들은 나에게 위로를 주기도, 때로는 날카롭게 나의 내면을 파고들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책 속 문장을 통해 내 안에 나조차도 몰랐던 내 마음과 마주하며, 치유를 향한 작은 실마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쓸 수 있는 사람,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자신 없고 걱정되고 의심하는 마음 대신 ‘나도 이미 쓰는 사람이구나, 앞으로 의심하지 말고 쓰는 삶을 잘 살아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신유진 작가에 이어서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최근 읽으며 새로운 문장들을 발견하는 중이다. 박완서 작품은 이미 여러 번 읽었지만, 매번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속에서 또 다른 보물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고 재밌기까지 한 문장들, 그 속에 숨어있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나고 싶다.
이렇듯 문장을 모으는 일이 단순한 취미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내가 글을 쓰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책 속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은 나의 생각을 확장시키고, 또 다른 문장들을 만들어내는 영감이 되어준다. 그래서 문장을 줍는 일은 이제 나에게 있어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앞으로도 책 속에서 주워 올릴 문장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장을 줍는 이 작은 습관으로 작가와 대화하고, 또 나 자신과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 더 풍부하고, 조금 더 의미 있는 사유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