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떻게 독이 되겠니 사랑 받는 법 몰라 상처가 될 순 있어도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겠니 사랑 주는 법 몰라 내 맘 속 슬픔 쌓여가도
사랑 받은 적 없는 티 난다고 사랑해 본 적 없는 티 난다고 사랑 원하는 티 난다고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티가 난다고
참나 의사 나셨네 의사 나셨어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놀리기나 하구 말이야 그렇게 잘났으면 내 이빨이나 봐줘 살 안에 사랑니 단단히 박혔는지 매일밤 아파서 잠도 못 자
<사랑니>, 2019.11
<색채>, painted by Midjourney
'사랑니'는 성인이 된 후에 자라는 어금니를 뜻한다. 사랑니를 사랑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설이 다양하다. 사랑을 알 때쯤 나는 이라고 해서 사랑니다, 살 안에 나는 이라서 '살안니'라고 부르던 게 사랑니가 된 것이다 등등. 개인적인 사담으로 사랑니는 그 흉악함과 죄질에 비해 너무 낭만스러운 이름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살갗을 뚫고 나오는 이니까 '살갗니'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사랑할 때 나는 이'라는 말은 진짜 어불성설이다. 내가 바로 살아 있는 반증이다. 나는 사랑니가 4개나 있다. 그중 하나는 중요한 신경에 맞닿아 있어서 대학병원에서나 발치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랑할 때 나는 이라면, 사랑해 본 적 없는 나는 사랑니가 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건 신의 농간이 분명하다. 이빨의 신, 줄여서 빨신이 존재한다면 빌어먹게 삶에 도움 안 되는 신이 분명하다. 사랑니 같은 걸 대체 왜 만든 거야.
사랑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사랑은 고통스럽다는 오명은 사실 사랑의 부수적인 요소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 생긴 것이다. 사랑은 독이 될 수 없다. 사랑을 주는 법, 사랑을 받는 법을 모를 때에나 사람은 쓸쓸하게 상처받고, 그것을 사랑 탓으로 돌리는 것뿐이다.
친구는 내게 사랑해 본 적 없는 티가 난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웃어넘겼다. 그 와중에 왼쪽 사랑니 때문에 잇몸이 욱신거렸다. 의사는 깊숙이 박힌 사랑니를 하루빨리 뽑아버려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해 본 적 없는 나는 사랑니를 미처 뽑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