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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Feb 07. 2022

그깟 컵라면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정(情)이라는 큰 의미를 말이지요

엊그제 주말은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었다. 여기에 옷깃을 파고드는 칼바람까지 정말 매서웠다.


흔히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고들 한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말일 게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다. 추운 겨울을 반기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유는 뭘까


지난 2월 4일은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入春)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권이고 이런 추위는 당분간 계속된다는 기상청 예보다. 입춘도 지났지만 아직은 봄을 논하기에는 겨울 추위가 만만치 않은 요즘이다.


이렇게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게 마련이다. 실제로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그렇지 않은 날의 재래시장이나 길거리는 한산함을 느낀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추운 날에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안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 주말에도  마찬가지 었다. 어쩔 수 없이 재래시장 한번  다녀온 거 말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따뜻한 아랫목 '뒹글 뒹글' 방콕 신선놀음이었다.


집에서 뿐만 아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그렇다. 점심시간 먼 곳을 찾아 맛있게 먹기보다는 가까운 곳에 그냥 대충 때울 때가 많다. 어쩔 때는 이것도 귀찮아 출근길의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곤 한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그곳 편의점에 그동안 볼 수없었던 비빔밥이 반갑게도 나를 맞이한다. 그동안 먹어본 편의점 도시락 중에서 그 비빔밥을 제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고슬고슬한 새하얀 밥이 일품이다. 이런  밥만을 따로 전자랜지에 데운다. 그리고  같이 딸려 나온 8가지나 되는 각종 나물을 드리 붓는다. 새콤 달콤한 양념을 '쭉~욱~' 투하한 후 한 손으로 비비고, 두 손으로 비벼 '얌냠' 입에 넣으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변한다.


그런데 이 비빔밥에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 양이 약간 적다는 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컵라면이다. 보족한 양을 보충해 줄 뿐만 아니라 비빔밥 한 숟갈에 마법의 국물 한 숟갈 '후루룩~'그야말로 비빔밥의 '화룡점정'이다.


오늘이라고 이 조합을 외면할 수 없었다. 컵라면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컵라면에서 그 옛날의 향수가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바야흐로 직장인 초년 어느 해 추운 겨울이었다. 당직을 선 어느 날 아침 그때 가장 먼저 출근한 어느 선배가 '추운데 당직을 서느라 고생 많았다'며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건네준  컵라면의 따뜻한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누군가는 '그깟 컵라면 하나에 너무 감성적이지 않느냐'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선배가 건네 준 컵라면에서 그깟 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그 선배의 후배를 향한 큰 정을 느꼈기에 그깟 컵라면에 보름달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래서 나 또한 오늘 아침 그러고 싶었다. 당직 직원을 위해 컵라면 하나 더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 추운 날씨에 고생했다며 그때 그 선배와 똑같이 컵라면을 건넸다. 그런데 그 직원에게서도 그때 나와 다를 바 없는 얼굴 표정을  느꼈다. 참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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