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인 가구 세대주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지방에서 서울로 와서 혼자 살았으니 햇수로 치면 혼자 산 지는 정말 오래됐다. 그런데 내가 1인 가구 세대주임을 자각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1인 가구 세대주’라는 말의 뜻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 뜻을 몰라도 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여태까지 별 탈 없이 살았다.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다. 감사할 일이다. 1인 가구 세대주. 이 말을 다시 쓴다. 너무 흔한 말, 하지만 너무 낯선 말로. 나는, 혼자, 산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지는 6년 가까이 됐다. 그간 큰 문제없이 살았다. 그런데 지난해 드디어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싱크대 수도가 터졌다. 호스 연결부가 오래돼 찢어지면서 삽시간에 물이 싱크대 하부를 타고 거실로 흘러들었다. 멘붕.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했다. 다급한 마음에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현관 밖 수도 계량기를 찾아 헤맸다. 밸브를 막는다고 막았는데 물줄기는 더 거세졌다. 알고 보니 밸브를 ‘닫침’ 쪽으로 돌린 게 아니라 ‘열림’ 쪽으로 돌려버렸다. 거실에 물이 찰랑찰랑할 정도였다. 바닥이 나무로 돼 있는데 정말 아찔했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물의 기세에 놀라며 이대로라면 집 전체가 잠길 것만 같았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했고 곧 무서워졌다.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었다. 지금 당장 내게 달려와 달라고 SOS를 치고 싶었다. 몇몇 친구와 동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려움을 호소했을 때 나 몰라라 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런데 정작 나는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도움을 청하는 연습이 돼 있지 않았다. 괜히 폐를 끼치는 것 같고, 호들갑을 떠는 거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물 앞에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난리를 해결해야 할 사람도 나였다. 지금 내가 아는 세계는 수도관이 터져 물난리가 난 이 집 안이 전부였다. 세상에 나 혼자였다. 내가 감당해야 했다. 집 안에 드라이버 하나 구비해두지 않고 살던 나, 계량기 한 번 들여다본 적 없던 나, 동네 만물상이나 수도 수리점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던 나, 그런 나를 감당해야 할 사람, 나.
감당해야 할 건 집과 생활만이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아프고 늙어가는 내 몸을 감당해야 했다. 지난 연말부터 발에 통증이 시작됐다. (이 정도면 지난해가 문제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다.) 결국 수술했고 핀을 제거하기까지 장장 7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정말 괴로운 나날이었다. 다른 쪽 발도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지만 정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통증이 심화하지만 않는다면 수술하지 않고 이대로 살고 싶다. 수술 후유증인가. 체력 저하로 면역 균형이 깨져서인지 피부 질환까지 생겼다. 먹고 자고 입는 데 민감해졌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프다는 얘기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아 궁상맞아 보인다. 그런데 이게 내 상태이기도 하다. 그렇게 지난해와 올해를 보내며 가장 많이 의지하게 된 사람이 있다면 나이 든 부모다. 내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됐다. 혼자 산 이후 가장 많이, 가장 자주 부모가 있는 곳을 오가며 돌봄을 받고 요양의 시간을 갖게 됐다. 돌봄과 요양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또다시 엄마의 돌봄 노동에 기대고 기생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혼자 다 해결하며 살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살았던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간 것일까. 그땐 내가 관심 두는 일만 해도 살 수 있었다. 살아졌다. 생활이, 몸이 알아서 굴러갔다. 그런데 이제는 절대 굴러가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도에 이어 1990년대 건물을 지은 후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다는 보일러도 고장이 나 교체했다. 노후화된 생활 공간 곳곳은 수리를 요하고, 해묵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간다. 몸은 관리와 치료를 더 강하게 요구한다. 여기저기서 유효 기간이 다 됐다며 아우성친다. ‘나 혼자 산다’는 건 이처럼 망가지고 허물어져가는 것들과 실랑이 벌이고 씨름하며 어떻게든 지지 않고 살아내는 일일 것이다.
나는 나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혼자 살되 고립되지 않기, 혼자 살지만 혼자라고 느끼지 않기, 혼자 살지만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을 땐 그럴 수 있기, 함께하면서도 혼자가 되고 싶을 땐 기꺼이 그럴 수 있기. 쓰고 보니 야무진 꿈이다. 바라는 바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 인생의 예측 가능성은 좀 더 커지고 변수는 줄어들 거라 막연히 생각해왔다. 세상 만사까지는 알 길 없겠으나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내가 나는 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 원하고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정도는 간파해 그때그때 사안별로 융통성
있게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큰 오산이었다. 나는 나를 모르겠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매번 새롭고 낯설다. 나라는 난제. 나를 감당하며 산다는 게 더더욱 어려워진다.
존재론적으로 보자면 누구나 혼자가 아니겠느냐고 물을 것이다. 맞다. 살면서 감당해야 할 각자의 몫이 왜 없겠는가. 인정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지옥이 있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게, 물리적으로 온전히 혼자 사는 1인 가구 세대주는 감당해야 할 생활과 감정의 몫이 있다. 게다가, 심지어, 여성으로서 혼자 산다는 더 치열하고 괴로운 감당을 요하곤 한다. 이를테면 이런 일을 겪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같은 건물에 사는 장년의 남성이 자신보다 나이 어린, 혼자 사는 여성에게 ‘친절’이랍시고 하는 반말과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는 유의 궤변. 물론 나는 나의 생활을 감당하기 위해 ‘반말하지 마시라’고 정확히 말했다. 그러고 나서도 감당은 계속된다. 괜히 그가 해코지할까 약간의 두려움과 신경 쓰기를 거둘 수 없다. 왜 내가 이런 것까지 감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 전혀 없다지만, 그렇게 된다.
혼자라는 감각을 느낄 일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게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무너지지 않고 나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정답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다. 그저 이런저런 대처의 방법을 미리 알아두면 되는 걸까.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그러면 조금 덜 허둥대고,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무서울까. 할 수 있는 걸 한다. 지난해 여름부터 반려 식물을 다섯 종을 들였다. 내 안의 두려움의 비례해 식물의 개수가 늘어났다. 슬픈 소식이 있다면, 피부 질환이 시작되고 잠깐 신경을 못 썼더니 그새 로즈마리가 죽었다. 마음이 아프다. 레토르트 식품을 먹더라도 그릇에 담아 먹으려 한다. 최대한 집에서 식사를 챙기려 하고 좀 더 일찍 잠자리에 들려 한다. 밀가루는 최대한 피하고 커피는 줄이고 물을 더 많이 마시고 영양제를 챙긴다. 자외선 차단제를 좀 더 꼼꼼히 바르고 양산을 쓴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막상 하려고 하니 정말 어렵다. 사소한 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되레 더 신경을 쏟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나는 어떻게 통증과 함께 무리 없이 살아갈 것인가. 나를 어떻게 돌보고 살필 것인가. ‘어떻게’가 관건이다. 나를 감당한다는 건 이 ‘어떻게’를 붙잡고 서성대고, 갈팡질팡거리며, 끙끙대는 일 같다. 괜찮은 방도가 있다면, 내게 알려주시라.
글. 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