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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Aug 10. 2024

가난을 이야기해도 될까?

정신과에 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난과 외로움 때문이었다.

결혼 전에도 종종 정신과를 다니긴 했지만, 그때는 솔직히 친구가 없었고, 우울감이 있는 성향이었고, 무엇보다. 예술가 병에 걸려서 다닌 것이 컸었다. 

결혼하고 나니 그것도 다 돈이 있고, 시간이 남아도니까 다닐 수 있었던 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될 정도였다.


결혼하자마자 돈과의 전쟁, 출산과 육아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악다구니를 써도 병원에 갈 시간과 돈이 없어서 갈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2번 정도 갔었는데. 병원에서 "약을 먹고 치료받고 할 일이 아니라, 쇼핑도 좀 하고, 나를 위해 돈도 좀 쓰고, 나를 위한 시간도 좀 가져야 나아요. 지금 육아로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소리를 듣는데. 현실은 남편은 1주일에 1시간도 아니 하루에 5분도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사람이고, 쇼핑은커녕 분유살 돈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안 갔었다. 


그렇게 13년.

어느새 병원값을 낼 돈이 생기고, 시간도 낼 수 있고, 무엇보다. 내 아이가 내 정신 상태 때문에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병원을 다니게 된 것이었다. 비록 약이 필요 없던 상태에서, 이제는 기약 없이 정신과 약을 먹여야 하는 상태까지 악화될 정도로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벌써 8개월 정도 되었고, 이제는 한 달에 한 번만 오라고 할 정도로 진전되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암튼, 가난과 외로움이 내 정신병의 근원이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 정신과 치료 이야기를 쓸 때마다. 가난과 남편 욕을 그리 해대는데.

다른 건 몰라도, 가난, 돈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이 된다. 


나는 결혼 직전까지 돈을 아끼고, 저금하고 사치는 안 하고, 무엇보다 돈이 부족함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일요일에 1만 원 내고 하루 종일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기에 한 달에 180만 원 벌어서 100만 원 저금하고, 80만 원이면 아주 풍족하게 한 달을 살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부모님이 학자금대출도 다 갚아주고, 부모님 집에서, 밥값도 안 내고 살았으니까.


그리고 

아티스트와의 결혼으로, 결혼하자마자 월급 없는 삶의 힘듦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혼돈 속에서 가난이 시작되었으나

솔직히 내가 비정상적으로 구두쇠 노릇을 지금까지 하고 있어서 그렇지

결혼 7년 정도 차부터는 사실은 평범한 좆소기업 다니는 연봉 4,000 정도의 직장인 집안 수준은 되었었다.


결국

내 45년 인생에 객관적인 가난은 고작 7년 정도밖에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기를 당해 너무 힘들어 동사무소 긴급구호를 알아보러 갔을 때도, 친정부모님이 부자니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솔직히 내가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면, 어느 정도 돈을 주셨을 거란 뜻이다. 


정말 비빌대가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가난은 어쩌면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돈이 없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은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어떻게든 최소한으로 받으려고 했고, 어떻게든 밤을 새워, 주말에도 일하며, 가난에서 벗어나고 일어서려고 했고, 정말 진심으로 양말 한 짝, 라면 한 개를 아끼며 노력을 하긴 했었기 때문이다. 절간에 들어앉은 수험생처럼, 커피값이 없어서 친구들을 일절 안 만나고, 호떡 한 개 아껴 사 먹으며 정말 노력했었다.


남의 큰 병보다, 내 손톱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고 했던가.


남과 비교하면 감히 네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악착같이 싸우고, 버텨서 이겨내고, 그러면서 세상을 배우고, 시야가 넓어진 아프고 힘들었지만 소중했던 시기였기에 자꾸 말하게 되는 것 같다. 

뭐랄까 군대 이야기, 출산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자꾸자꾸 쌀한 톨 아끼면서, 두 달에 한 번 짜장면 외식에 행복해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것 아닐까. 


돈이 없어 정말 힘들었지만,

눈물 나고 속상한 일이 정말 많았지만.

그 덕에 지금 당당하게 내가 벌어먹고살고 있으니까. 감사해서 말이다. 


500원으로 연을 끊기까지 해 봤으니

지금 좀 먹고 산다고 해서 가난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

꼰대 같지만 해도 되겠지.


나에게 가난은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알게 해 준, 그러나 정신병을 앓게 만든 애증의 존재이기에

앞으로도 가난했던, 지금 내가 왜 이렇게 구두쇠가 되었는지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진짜 생각해보면 주관적으로는 가난을 겪지 못했다고 할 수 있어도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정신병까지 얻을 정도로 살았다면

정말 정말 가난하게 살아봤구나 이야기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니

내가 이정도로 아파도 될까? 생각하지 말고

혹시 아프다면, 아픈 것은 주관적이니 

일단 병원에 가보기를 바란다


정신과 약은 처음에는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고,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나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조절하고 바꾸고 하다보면

살기 훨씬 편하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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