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심리상담과 병행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 때였다. 지금과 다른 병원이었다.
나름 도와준답시고 남편은 여행을 가자고 했고, 나는 여행 가면 삶의 리듬이 흔들리고 갔다 오면 또 피곤하니 가기 싫었지만, 남편은 여행을 원했고, 남들 다 여행이 좋다고 하니 갔었다. 하지만 정말 너무 피곤해서 속상했었더랬다. 다녀와서 정신과 진료 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에 여행은 안 하는 게 좋아요. 리듬이 깨지니까. 일상에 변화가 없는 게 나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역시나 나에겐 여행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러 이유로 1박 2일 다녀올 때가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힘들어서 진짜 나는 여행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올여름, 여름휴가를 가기 싫었다.
우울증에 여행이 안 좋다는 것도 알았고, 장사도 너무 안 되고, 그래서 더 마음이 조급해져서 일을 쉬고 휴가를 떠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냥 애들 데리고 목욕탕이나 몇 번 다녀오고, 당일로 워터파크나 한 번 다녀올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큰애가 "이제 곧 중2 되면, 시험 때문에 편하게 여행도 못 다닐 텐데, 공부 생각 안 하고 놀러 갈 마지막 기회인데"
둘째가 "친구들은 일본을 가네, 태국을 가네 하는데, 나는 아무 데도 못 가? 나 이제 생존수영 수업 들어서, 수영도 잘하는데. 나 수영학원 보내줄 것 아니면, 목욕탕 매주 가고, 워터파크도 가고, 여행도 가야 해"
라며 조르기도 하고
친정 부모님이
"돈이 없니? 돈을 줄까? 애들 기죽이지 말고, 1년에 한 번 여름휴가는 가야지" 라며 또 걱정과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장사가 안 돼서... 출근을 안 해도 되는 날이, 웃프게도 생겼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떠났다.
비싼 호텔은 아니지만, 호텔은 호텔인 곳으로 숙소를 잡고, 동해 바다로 조금 늦게 다녀왔다.
가기 전에 나는 술 취해서 주정을 부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술을 마음껏 먹기로 했고,
남편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겠다고 했고,
애들은 최대한 둘이서 놀기로 했다.
사실 가족 여행을 가면, 내가 술 취해 주정을 부리고 토를 하는 추태를 부리거나, 내가 너무 피곤해서 힘든 일정에 악을 쓰고 화를 내거나, 남편에게 싸움을 걸어서 , 또는 피곤한 애들이 본인들끼리 싸우다가 내가 화나서 딸내미 둘을 큰 소리로 혼내거나 등등
꼭 한 번은 큰소리가 났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럴까 봐 정말 걱정했었다.
그렇게 걱정반, 이번에는 다르기를 기대하는 마음 반, 애들에게 이번에는 좋은 추억을 남기기를 원하는 마음반으로 여행을 떠났다.
둘째는 첫날 오전 7시에 떠나야 첫날부터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너무 늦게 12시 다돼서 출발했다고 여행 초기에는 심기가 불편했지만, 도착한 첫날 파도가 너무 커서, 바다에 입수 금지가 떠서, 물에 젖지도 못한 수영복을 벗으며 눈물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지만
첫날 치킨에 게임에 티브이에
둘째 날 바다에서 실컷 놀고
셋째 날 호텔 수영장과 목욕탕에서 마무리 물놀이를 하면서
둘째의 기분은 최고로 좋았다.
큰애도 아닌 척, 무심한 척, 시크한 첫 했지만 물속에서 둥둥 떠서는 엄마손을 꼭 붙잡고 계속 나불나불 쉬지않고 수다를 떨면서,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술을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애들이 계속 물이 무섭다고 엄마가 들어와야 한다고 계속 계속 나를 붙잡아서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애들과 물에서 놀아주었다.
여행 가서도 아침약은 꼬박꼬박 먹었다.
밤에 흥분하고, 낯설어서 잠을 꼴딱 세기는 했지만. 애들에게 화를 내거나, 남편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다.
감정기복이 크지 않은 상태로 안정적으로 3일을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가 좋았다.
물을 싫어하는 남편은 물에 거의 안 들어오고,
첫날 둘째 날은 일도 했지만
그래도 쉬기도 하고, 가족들이, 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결혼 15년, 큰애 14살에 드디어 처음으로 큰소리 한 번 없는, 화목하고, 안정적인 여행을 해본 것이다!!
휴가를 간 망상 해수욕장은 올해로 3번째인데
나름 익숙한 곳에서, 나름의 루틴을 만들고, 놀았더니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 된 것 같다.
애들이
내년 여름에도 와서, 첫날은 휴식, 둘째 날은 바다, 셋째 날은 수영장, 식당은 쑝쑝돈까스, 묵호정, 치킨, 삼겹살 이면 된다고, 내년도 똑같이 놀자고 해주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
우울증에는 여행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일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일상을 벗어나봤자 여행이 끝나면, 결국 다시 문제의 근원으로 돌아와야 하기에, 기분전환만 될 뿐, 병을 치료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는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거의 6개월째 약을 잘 먹고 있고,
나름 3년 차의 루틴이 있는 여행을 한 결과
매우 뿌듯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 우울증이 나은 것 같아서 더더욱 기분이 좋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도 아침에 약을 잘 먹었다.
내일도 또 잘 약을 먹을 것이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