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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Aug 17. 2024

우울증에는 여행이 좋지 않다고

작년에 심리상담과 병행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 때였다. 지금과 다른 병원이었다.

나름 도와준답시고 남편은 여행을 가자고 했고, 나는 여행 가면 삶의 리듬이 흔들리고 갔다 오면 또 피곤하니 가기 싫었지만, 남편은 여행을 원했고, 남들 다 여행이 좋다고 하니 갔었다. 하지만 정말 너무 피곤해서 속상했었더랬다. 다녀와서 정신과 진료 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에 여행은 안 하는 게 좋아요. 리듬이 깨지니까. 일상에 변화가 없는 게 나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역시나 나에겐 여행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러 이유로 1박 2일 다녀올 때가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힘들어서 진짜 나는 여행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올여름, 여름휴가를 가기 싫었다.

우울증에 여행이 안 좋다는 것도 알았고, 장사도 너무 안 되고, 그래서 더 마음이 조급해져서 일을 쉬고 휴가를 떠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냥 애들 데리고 목욕탕이나 몇 번 다녀오고, 당일로 워터파크나 한 번 다녀올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큰애가 "이제 곧 중2 되면, 시험 때문에 편하게 여행도 못 다닐 텐데, 공부 생각 안 하고 놀러 갈 마지막 기회인데"

둘째가 "친구들은 일본을 가네, 태국을 가네 하는데, 나는 아무 데도 못 가? 나 이제 생존수영 수업 들어서, 수영도 잘하는데. 나 수영학원 보내줄 것 아니면, 목욕탕 매주 가고, 워터파크도 가고, 여행도 가야 해"

라며 조르기도 하고

친정 부모님이 

"돈이 없니? 돈을 줄까? 애들 기죽이지 말고, 1년에 한 번 여름휴가는 가야지" 라며 또 걱정과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장사가 안 돼서... 출근을 안 해도 되는 날이, 웃프게도 생겼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떠났다.


비싼 호텔은 아니지만, 호텔은 호텔인 곳으로 숙소를 잡고, 동해 바다로 조금 늦게 다녀왔다.

가기 전에 나는 술 취해서 주정을 부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술을 마음껏 먹기로 했고,

남편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겠다고 했고,

애들은 최대한 둘이서 놀기로 했다.


사실 가족 여행을 가면, 내가 술 취해 주정을 부리고 토를 하는 추태를 부리거나, 내가 너무 피곤해서 힘든 일정에 악을 쓰고 화를 내거나, 남편에게 싸움을 걸어서 , 또는 피곤한 애들이 본인들끼리 싸우다가 내가 화나서  딸내미 둘을 큰 소리로 혼내거나 등등 

꼭 한 번은 큰소리가 났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럴까 봐 정말 걱정했었다. 


그렇게 걱정반, 이번에는 다르기를 기대하는 마음 반, 애들에게 이번에는 좋은 추억을 남기기를 원하는 마음반으로 여행을 떠났다.


둘째는 첫날 오전 7시에 떠나야 첫날부터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너무 늦게 12시 다돼서 출발했다고 여행 초기에는 심기가 불편했지만, 도착한 첫날 파도가 너무 커서, 바다에 입수 금지가 떠서, 물에 젖지도 못한 수영복을 벗으며 눈물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지만

첫날 치킨에 게임에 티브이에

둘째 날 바다에서 실컷 놀고 

셋째 날 호텔 수영장과 목욕탕에서 마무리 물놀이를 하면서

둘째의 기분은 최고로 좋았다.


큰애도 아닌 척, 무심한 척, 시크한 첫 했지만 물속에서 둥둥 떠서는 엄마손을 꼭 붙잡고 계속 나불나불 쉬지않고 수다를 떨면서,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술을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애들이 계속 물이 무섭다고 엄마가 들어와야 한다고 계속 계속 나를 붙잡아서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애들과 물에서 놀아주었다.

여행 가서도 아침약은 꼬박꼬박 먹었다.

밤에 흥분하고, 낯설어서 잠을 꼴딱 세기는 했지만. 애들에게 화를 내거나, 남편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다.

감정기복이 크지 않은 상태로 안정적으로 3일을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가 좋았다.


물을 싫어하는 남편은 물에 거의 안 들어오고,

첫날 둘째 날은 일도 했지만

그래도 쉬기도 하고, 가족들이, 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결혼 15년, 큰애 14살에 드디어 처음으로 큰소리 한 번 없는, 화목하고, 안정적인 여행을 해본 것이다!!


휴가를 간 망상 해수욕장은 올해로 3번째인데

나름 익숙한 곳에서, 나름의 루틴을 만들고, 놀았더니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 된 것 같다. 


애들이

내년 여름에도 와서, 첫날은 휴식, 둘째 날은 바다, 셋째 날은 수영장, 식당은 쑝쑝돈까스, 묵호정, 치킨, 삼겹살 이면 된다고, 내년도 똑같이 놀자고 해주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 


우울증에는 여행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일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일상을 벗어나봤자 여행이 끝나면, 결국 다시 문제의 근원으로 돌아와야 하기에, 기분전환만 될 뿐, 병을 치료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는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거의 6개월째 약을 잘 먹고 있고,

나름 3년 차의 루틴이 있는 여행을 한 결과 

매우 뿌듯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 우울증이 나은 것 같아서 더더욱 기분이 좋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도 아침에 약을 잘 먹었다.

내일도 또 잘 약을 먹을 것이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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