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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서 김장을 못하는 것이다

by 지망생 성실장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꼭 김치를 담가야 했었을 것 같다.

100 포기 담가놓고 일 년 내내 먹는 음식이니, 하루 고생하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게다가 집집마다 누구 하나는 농사를 짓곤 했을 테니, 믿을 수 있는 농수산물, 쪼끔이라도 저렴하게 쟁여놓을 수 있고, 100 포기 50 포기 할 양이면 다른 부재료도 대용량으로 구매할 테니 단가는 많이 낮아졌을 것이고.


하지만, 지금 나는 돈이 없어서 직접 김장을 못한다.

돈만 없는가? 체력과 시간도 없어서 더더욱 김장을 못하겠다.


결혼하기 전에는 김장이란 엄마가 힘든 날이었다.

인터넷에서 김장하는 날 수육 먹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기 전에는 굳이 수육을 하지도 않았고, 김장하는 엄마와 아줌마들 힘드니까 짜장면이나 시켜 먹고 헤어지는 날이었다.

나는 김장을 돕는 것도 거의 하지 않았고, 나와는 상관없는 날이었다.


결혼 후,

신혼여행 다녀온 다음날, 시어머니의 주도로, 신혼집에서 100 포기를 절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한 날,

임신 8개월에 시어머니와 단 둘이 또 100 포기를 하고 대상포긴 걸린 날 이후

김장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첫애를 낳고도 3-4년은 시댁 김장에 가긴 했지만, 결국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며 가지 않았고, 시댁은 그때부터 김치를 사드신다.


친정 엄마는 꼭! 김치를 만들어 드신다. 철마다 종류별로 다 만들어 드시는데, 맛이 기가 막히는 것은 물론이고, 꼭 우리 집에 가지고 와주신다. 그 먼 거리를 전철을 타고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이제 힘드니 하지 말라고 해도, 애들 먹여야 한다고 사 먹는 김치는 맛이 없다고, 먹고 싶은 김치는 나박김치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파김치 등등 다 해줄 테니 말만 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친정엄마 김장은 도와드리러 가고 싶어도 엄마는 새벽에 일을 하시니, 출근하는 나는 가서 도울 수가 없다.


그런 친정엄마는 맨날 나보고 돈 아깝게 김치를 사먹는다고, 세상 제일 이해 안가는게 반찬이랑 김치 사먹는 거라고, 정 못하겠으면 엄마한테 말하라고하신다 그러면서 "여자가 돈 벌어봤자 얼마나 번다고, 그걸 다 사먹는 거로 쓰면 남는게 뭐 있니, 사먹는거 아껴야 돈 버는 의미가 있지, 사다먹지 말고 조금만 부지런하게 해먹어, 그 정도도 못하는게 니가 엄마냐. 쪼금만 부지런떨면 되는 걸, 그리고 엄마가 매주 갈때마다 가져갈테니 엄마한테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라고 하시는데... 일주일에 한 번 오실 때마다. 집안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다 해주시고, 애들 얼굴보고 용돈까지 주시는데 감히 먹고 싶은 반찬을 주문할 자신이 없다. 심지어 애들은 냉장고에서 꺼내먹는 것도 잘 안해서... 반찬 가져오시면 남을 때도 있어서 죄송해서 말을 못한다. 그래서 그냥 미리미리 주문해서 채워넣고, 엄마한테 김장할때 우리집것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우리집 것을 담가주시고, 수육해놨으니 김치 가지러 오라고 하셨다. 그저 죄송할 뿐이다.


사실, 나는 나 혼자 김장을 담드고 싶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요리하다 보면 냄새에 질려서 막상 먹기 싫어진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저렇게 요리하면 그 결과물이 엄청나가 맛있겠지 하는 상상에 입맛을 다시며 요리를 하고, 맛있는 결과물이 나오면 배 터지게 먹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김치를 좋아하니 내가 만들어 먹고 싶은 욕망이 있긴 한 것이다.


하지만,

한 달에 1-2일 겨우 쉬는 일정과

수많은 부재료를 하나하나 질 좋은 것으로 구매해야 하는 정성과 그리고 "돈"

적어도 10 포기는 해야 김장다울 텐데, 채소 다듬기부터 시작하며 요구되는 체력

이것들 중 내가 충족시키는 요소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 큰 프로젝트를 공감하며 함께 준비해 주고 의견을 나눠줄 멤버도 없다.

남편은 내가 살림으로 스트레스받는 것을 너무 싫어하기에 그냥 하지 말라고 사 먹자고 하는 스타일이고

애들은 김치 자체를 잘 안 먹으니 관심이 없다

해도 고마워할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취미처럼 담그기엔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리고 특히 "돈" 부분이, 결국 돈이 시간이고 체력이니까 주저되는 부분도 있지만

김장을 위해 10만 원 30만 원 50만 원을 썼는데 (얼마 드는지 모름 )

맛이 없어서 버려야 한다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

실패 리스크를 안고 시작해야 하는 시도가 두려운 것이다!


주말에 애들 얼굴 보는 것과 김장!

주말에 설거지와 빨래 겨우 하는 게 김장!

하루 일을 쉬면, 그만큼 장사를 못하는데, 김장!

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은 당연하고.


그런 거에 비해서, 사 먹는 김치는 맛도 기본은 보장하고, 돈과 시간과 체력을 생각하면 저렴하다.

심지어 이제는 10kg 김치를 사서 통에 옮겨 담는 것도 귀찮아서

소분된 작은 용량의 김치를 사기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돈이 없어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김장을 못하는 것이다.

돈이 많아서 김치를 사 먹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가끔 나는 내 먹거리를 보면

요리할 시간과 재료를 살 시간이 없고, 돈이 없어서 패스트푸드만 먹는 미국 하층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애들도 이제 햄버거 치킨 피자 지겹다고 집밥이 먹고 싶다고 할 정도니,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외할머니가 오셔서 밥 해주면 꼭 챙겨 먹을 정도니


돈이 없어서 김치도 못해먹는다는 생각을 하니 참 슬퍼진다.

이렇게 돈 벌어서 뭐 하나 싶고.....

아직 젊은 40대, 주말도 없이 열심히 장사하고, 아끼면서 산다고 하는데, 결국 사 먹는 걸로 돈을 다 쓰는 것 같아 아깝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싼 것 사다 먹으면서, 외할머니가 챙겨주는 제철음식으로 버티면서,

서로 매일 뽀뽀하면서 꼭 안아주며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내 나이 60살 넘으면, 나도 내 자식을 위해 김치를 담가줄 수 있겠지 하는 믿음으로

오늘도 주말에 나와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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