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첫 명절이다.
벌써 돌아가신 지 6개월이 되었고, 아직도 가족들은 슬픔에 젖어있다.
나는...... 한 다리 건너이고, 딱히 추억이 크지 않아 많이 슬프지는 않지만, 그래도 17년을 알던 분인데 싶어 조금은 울컥하긴 한다.
지난 주말에는 추석을 맞아 미리 납골당에 다녀왔다.
날씨가 매우 좋았고, 이젠 우는 애기도 없어서 차분하게 밥도 먹고, 커피숍에서 여유를 부리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님께서 추석부터 다시 제사를 지내신다고 하셨다.
( 정확히는 차례겠지만 )
시아버님 돌아가시기 전 정신이 또렷하셨을 때, 아들내외와 큰 딸을 앉혀놓고 어머님이 물어보셨다.
"당신 죽으면, 제사 지내면 좋겠어요?"
"응"
"제사 지내면 좋겠냐고"
"응, 난 해주면 좋겠어"
"그럼 3년만 해줄게. 괜찮아?"
"응. 좋아"
나도 정확히 기억하는 그날의 대화이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원하셨으니 협의 본 대로 3년은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3년은 제사에 다 참여하라고 하셨다.
큰 사위네는 교회를 다니고, 둘째 사위네도 제사를 없앴으니 괜찮을 테니 참여하라고 하셨다.
착한 사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나섰다.
"엄마, 사돈네가 제사를 지내건 안 지내건, 명절에 시댁먼저 안 가고, 처갓집부터 오는 건 정말 배려해 주시는 거니까 고마워하셔야 해요."
"뭐가 고마워? 그건 당연한 거야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내가 뭐 일일이 그런 거를 다 말해야 하니? 나는 막 그렇게 고맙다 미안하다 말 못 하는 사람이야"
글로는 차분히 적었지만, 아들의 사위들과 사돈네가 허락(?)을 해준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좀 알고 딸과 사위에게 고마워하라는 말을, 어머니는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면서 역정을 내셔서, 아주 조금 큰 목소리가 잠시 오갔었다.
사실 2년 전부터 제사와 차례를 없앴었다.
그때 설 추석 중 한 번은 시댁먼저 가서 하루 편하게 있고, 다음날에 다른 집에 가서 하루 편하게 있고, 그렇게 느긋하게 하루씩 보자고 해서 좋았었다.
그리고 작년 설에 처음으로 친정에 먼저 갔었다.
애들한테 처음으로 시댁과는 다른 친정 제사도 보여주고, 느긋하게 친정에서 있을 수 있어서 정말이지 이게 명절이지 하는 마음이었다.
명절 오전 아침 일찍 일어나, 시댁 가서 차례 지내고, 점심 먹고 눈치 보다가 3-5시 사이에 겨우 일어나서 친정 가면, 친정에 저녁 6-7시에 도착해서, 밥만 먹고 허겁지검 다시 집으로 오는 게
항상 정신없어서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댁과 친정이 2시간 거리로 하루에 오갈 수 있는 거리라 얼마나 다행인지 싶고)
하지만 다시 차례, 제사가 시작되었다.
다시 오전에 시댁에서 차례 지내고, 점심 먹고 친정으로 가는 루틴으로 복구한 것이다.
다만 감사한 것은
신랑이 먼저 "당신 신경 안 쓰이게 할게"라고 말해준 점이다.
"미리 뭐를 해갈지, 가서 만들지, 사서 갈지, 어머님과 알아서 잘 준비해요."
라는 나의 말에도 토를 달지 않고 알았다고 잘하겠다고 해줘서 고마웠다. ( 당연한 거지만 )
이번 차례에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것이다.
특히 설거지는 절대 안 할 것이다.
당신 아들 설거지 한다고 울면서, 절대 우리 집에서 귀한 우리 아들 설거지 하는 꼴은 못 본다는 어머님 말씀은 뼈에 사무처 잊히지가 않는다.
그렇게 귀한 아들이라 설거지를 못 시킨다면
어떻게 남의 집 귀한 딸은 16년간을 설거지를 시키셨을까?
이번 차례에 딸과 사위들도 오겠지만, 그들도 며느리인 내가 안 하면 절대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딸들이 설거지를 한다고 하면 내가 큰 소리로 "아가씨, 귀한 오빠도 못하는 설거지를 귀한 아가씨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막상 입밖으로는 꺼내기 힘들겠지만)
암튼
나는 이번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할 예정이다.
오전에 가서 그릇이나 좀 나르고, 커피 주문 하는 정도만 하고, 최대한 빨리 친정으로 갈 예정이다.
시아버님 첫제사이기에 신경이 안 쓰이는 것은 아니나
지난 추석에도 마지막일수도 있다고 시댁여행을 갔었고, 설날에도 마지막일 수도 있다며, 설 당일에 친정에 못 갔었다.
마지막이니까, 처음이니까. 장남이니까 이런 핑계로 계속 명절 당일에 친정을 못 가고 싶지는 않다.
말로는 "며느리야, 조심스럽지만 만약에 네가 상을 당하면, 너도 똑같이 내가 할 수 있게 해주겠다"라고 하시지만.
딸들이 명절 오전에 시댁 가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시는 분인데 믿을 수 없다,
더구나, 친정 옆에 살면서 엄마가 5살 1살 우리 아기들 봐주실 때, 상추를 주시면서 "친정에는 절대 드리지 마라"라고 하셨던 분이시고.
( 보통은 애기 봐주시는 사돈댁에 사과라도 보내지 않나? 절대 하나도 없으셨고, 우리 집에 반찬 주시면서도 친정 주지 말라고 하셨고, 한 번도 애봐줘서 고맙다는 말도 없으셨고, 다 크면 알아서 친가로 온다고 하셨던...... )
암튼
나는 주말에 시어머님을 만나고 다시 한쪽 눈이 감겼다.
추석, 제사의 스트레스가 생긴 것 같다.
그래도 첫제사인데... 맏이인데... 하는 생각이 나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닐 테니
나도 나름 종갓집 딸이라서 유교사상이 뿌리 깊은 종자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고개를 젓는다.
하나같이 양보만 하기 싫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남편이 가서 일을 돕던, 제사비를 드리던 나는 못하게 막지는 않으니까.
이 정도면 기본은 하는 것이라도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제사에 나서지 않을 것이며, 아무것도 안 할 것이다.
그 집 제사는 그 집 자손들이 할 일이니까.
내가 잘한 것 맞겠지......
( 이 와중에도 친정 엄마는 친정 안 와도 된다는 빈말을 하며, 시댁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라고, 일하라고, 뭐라도 하라고 하는 게 더 마음이 아플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