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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Sep 11. 2023

수치심과 한 몸이 되었다.

수치심 (나의 자가면역질환 원인#7)

'엄마가 그리 말했으면 너무 슬펐을 것 같다.
 내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것이다.'라고 하던데,

 나는 어려서부터 들어온 말들에
내성이 생긴 것인지
 늘 그렇듯이 말없이 '그런가 보다' 정도였다.



"그 아이를 낳았어야 했는데, 그 애가 아들이었는데"

엄마의 소원은 아들을 낳는 것이었다. 나를 낳기 전에는 용하다는 점쟁이들이게 확인하러 다녔다. 틀림없이 아들이라 그랬는데 딸이 나왔다. 내 위로 낙태된 아이가 있는데, 둘째 언니가 너무 울어서 도저히 낳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번씩 아쉬워하면서 말씀하시길 "그 애가 아들이었는데, 그 애를 낳았어야 했는데..." 가끔 나를 두고 "ㅇㅇ가 아들이었으면..."이라고 바라셨다. 그럼 점쟁이가 딸이라고 했으면 나를 낙태하고, 낳지 않았을 테니 나의 생명의 은인은 그 무당이다.


무의식을 공부하다 보면 태아 때의 아픔과 상처도 그대로 우리 마음에 저장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딸 둘이 있던 엄마의 임신한 배를 보고 사람들은 한 마디씩 했다고 한다. "아들이어야 할 텐데..." 그때는 다 그랬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데, 무의식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당시 태아가 느꼈을 수치심을 느껴주어야 한다. 내 존재자체를 거부당한 수치심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도 이미 내 몸과 하나가 되어서 인지 느껴지기가 쉽지가 않았다. 한 번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위 사실들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몇몇의 사람들은 '엄마가 대놓고 그리 말했으면 너무 슬펐을 것 같다. 내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것이다.'라고 하던데, 나는 어려서부터 들어온 말들에 내성이 생긴 것인지 말없이 '그런가...' 정도였다. 


태아 때의 수치심을 느껴주기 위해 거울명상을 해보았지만 크게 차도가 없자 다른 방식들을 선택했다. 내가 직접 '상처받은 태아치유'명상 파일을 만들어해보기도 했다. 그 태아의 아픔을 깊이 느껴주며 내가 태아일 때의 엄마가 되어 명상을 했다. (명상을 통해 태아 때부터 나 자신의 엄마가 되어주어야 한다니...... 보통은 어린 시절 상처 치유만 하던데...... ) 명상으로나마 내가 태아인 나의 엄마가 되어주니 친정엄마라는 존재는 미성숙한 어떤 타인일 뿐이라 여겨졌고, 더더욱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쉬워졌다. 그동안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인정'을 받고자 고군분투 애써온 그 모든 시간들이 눈물 나게 쪽팔렸다. 어차피 태아 때부터 난 아들이 아니었기에, 이미 존재 가 인정받을 수 없었는데, 그토록 애써왔던 것이다. 그 '상처받은 태아치유'명상을 하며 정말 치유가 되었는지 신기하게도 아주 자연스럽게 태아가 찾아왔다. 난소나이 46세(실제 41세)였고 날짜조차 굳이 맞추지 않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배란일 이틀 전이 더 임신이 잘 된다고 하는데 그때였던 것 같다. 혹시 임신을 바라신다면 참고하시길)


 금쪽이 방송을 시청하며 내 어린 시절의 비슷한 사례들을 보고 잊고 있던 아픔을 느껴준다거나 오은영박사님 상담내용 몇 개를 내 것으로 삼아 적용해보기도 했다. 수도 없이 울고, 혼자서 풀어내다가 20년 넘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가족들에게 꺼내놓자 둘째 언니는 정신과 가서 약먹으라고 했다. 그래도 하고 싶던 얘기를 풀어놓으며 해소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방어할 나름의 공격성을 터득해 선을 제대로 긋고 비로소 평온함을 찾기도 했다.




어쩌다 낯설고 새로운 장소에 가면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큰 문제는 나 스스로 그 수치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한 번은 교회 한의사 언니가 일하는 한의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 가본 그 장소에서 어지간히 쑥스러웠나 보다. 언니는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라고 얘기하기에 그제야 '내가 그랬나?' 싶었다. 마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어려움을 겪었을 거다. 미 오래전부터 의 발목을 잡았던 수치심은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었는데 크게 문제 삼지 않았었다.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내 안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병을 키우지 않는 지름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수치심이란 어떤 감정일까? 발가벗고 있는 기분? 수치심이 자기학대가 되어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덕분에 나의 수치심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내 인생 전반을 두고 탐구하는 중이다. 그리고 많이 좋아졌다. 자가면역질환 루푸스 약을 챙겨 먹지 않는데도 몇 년째 피검사는 정상수치를 찍었고, 난소나이 46세(실제 41세)의 나이에 자연임신에 성공했다. 3인 이상의 가족이 된다는 건 극도로 공포스러웠고,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며 딩크를 바랐지만, 막상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는 감동했다. 루푸스 증상인 아토피성 피부발진도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약간 있는 걸 보면 아직은 완전히 수치심이 정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도 수치심을 풀어내려는 노력은 계속 ing(진행 중)다.


https://youtu.be/JBePSRkmsH0?si=qqv9JhvNMR1cwu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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