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오늘, 만남과 이별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아기 천사. 하늘에서 내려오자마자 다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심장소리를 들으러 갔던 8주. 들뜬 기분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했고, 처음에 웃으며 진찰하던 담당 선생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시곗바늘만 똑딱거리고, 고요한 정막이 흘렸다. 덜컥 무서워졌다. 이 고요함이 너무 싫었다. 1초가 하루같이 길게만 느껴졌다. 초음파 보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더니 옷을 추스르고 상담의자에 잠시 앉으라고 하셨다.
듣기 싫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아이가 날 정말로 사랑해서, 엄마 힘든 거 보기 싫으니까 스스로 결단을 내렸다고 하셨다. 내가 주는 영양분을 먹지 않고 내 뱃속에서 죽어 있었다. 태어나면 평생 병원 신세를 지는 아픈 아이였을 거라고, 아이의 결단을 감사히 여겨주자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걸 어떻게 감사하다가 여길 수가 있어? 당신이 엄마라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겠어?’
욕을 하고 싶었다. 한참 동안 울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날 부축해 주셨지만 내 몸이 내 몸같이 움직이지가 않았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남편이랑 같이 진료 보러 올걸 왜 혼자 왔을까 하는 마음에 더 서러웠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남편도 알았는지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하며 나를 향해 달려와 주었다.
계류 유산.
이러한 시련이 왜 나에게 온 걸까?
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내가 태몽을 꿨다. 나는 뱀을 몹시도 무섭고 징그럽다고 생각하는데 태몽이 뱀꿈이었다. 뱀이 내 윗옷을 걷어 배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 뱀이 너무 무서워서 저리 가라며 마구잡이로 때렸다. 나는 그렇게 잠에서 깼다. 처음에는 이 꿈이 무슨 꿈인가 했더니 태몽이었다.
‘그 뱀을 못살게 굴었는데 어떻게 하지?’
불안감이 있었지만 뱀 죽이는 꿈도 좋은 꿈이라고 하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름의 합리화였다. 그런데 유산이 되고 나니 혹시 꿈에서 내가 뱀을 해한 것 때문은 아닐까 라는 죄책감이 생겼다.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는데 나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는 생각에 나는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내 꿈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아니면 진짜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에 떠난 걸까?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너무 답답했다. 인생은 원하는 데로, 생각하는 데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니 눈앞이 깜깜했다.
소파술을 받았다. 너무 허무할 정도로 정말 금방 끝났다. 회복실에서 영양제를 맞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출산한 것과 마찬가지로 몸조리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에겐 그런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회사도 그만뒀다. 일찍 결혼한 터라 친구들 중에서는 결혼도 빨랐고 임신도 빨랐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매일 밤 어떤 아이가 날 바라보는 꿈을 꿨다. 그리고 울면서 깼다.
유산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수많은 이별이 있지만 그중 가장 힘든 이별이 있다면 아이와의 이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별은 우리에게 아픔과 상실감을 안겨주는 힘든 경험이다. 이별의 순간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되기가 힘이 든다. 사람과의 이별이든, 물건과의 이별이든, 동물과의 이별이든 모두가 같다. 이별과 마주하면 분노도 하고, 그 상황을 거부하기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점차 수용의 단계로 넘어간다. 그리고 치유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며 헤어짐의 아픔이 사라지길 기다려야 한다.
헤어짐의 아픔은 큰 시련이 될 수 있지만, 그 또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긴 세월을 살아야 하기에. 수많은 만남과 수많은 헤어짐.
가슴 아프지만 그 또한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함을-
여덟 번째 오늘, 끝.
• 오늘의 질문 일기 •
Q1. 잊기 힘든 이별이 있나요?
Q2.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