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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Apr 08. 2022

어쩌다 농업인이 된 도시녀

눈앞에 펼쳐진 대지, 우선 농업을 알아야겠다!

농막이 들어오기로 한 날 종일 비 예보가 떴다. 농막 회사에 전화해 간신히 하루 앞당겨 놓았다. 그에 맞추어 농막을 트럭에서 내려줄 크레인 예약을 변경하고자 했더니 그날은 안된다고 한다.

 이때부터 계속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일반 회사를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크레인은 개인 기사와 상대하다 보니 저마다 부르는 가격도 조건도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농막 놓을 자리에 제대로 트럭이 들어올 수 있다 없다 등 현장 답사하는 기사마다 얘기가 다르다. 아! 농막 하나 설치하는데 이 정도 복잡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나중에 집 짓기는 어찌해야 할까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리잡은 농막



농막 설치 후 바로 농업인 모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농막이 설치됐다.

전기와 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상태라 샤워와 화장실 이용은 또 윗집 신세를 져야 했다. 처음 이 동네 왔을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동네 땅 내놓은 게 있는지 물어보려고 다가가 말을 건넸다. 그리곤 동네를 돌아보다가 다시 만났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라며 자리를  마련해 주더니 자고 가라며 처음 본 나그네에게 잠자리까지 내어준 이웃이다. 한없이 감사하고 미안한 이웃!!

앞으로 두고두고 좋은 이웃이 되어  보답하리라.


물은 마당에 뽑아놓은 수도를 이용해 농막 내부를 청소하고 차에 싣고 간 필요한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캠핑 온 기분으로 밥을 지어 점심을 먹었다.

농막이 들어오기까지 시골살이 포기하고 싶을 만큼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농막이 자리 잡고 그 안에서 밥을 지어먹다 보니 그 모든 감정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차 한잔 들고 맑은 공기와 햇살 쏟아지는 밖으로 나왔다.

고층 빌딩 대신 탁 트인 풍경 너머로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웅장한 금당산과 주변 굽이치는 능선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여행을 떠나온 듯 기분이 좋아졌다. 딱 여기까지가 예정에 있던 일정이었다.


겨울 내내 수단그라스와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체 메말랐던 대지를 정리하고 보니 땅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아랫집에 내려갔더니 로터리(땅을 뒤집는) 작업 전에 거름을 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아직은 경영체 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농부가 아니니 모든 농자재나 씨앗 등을 비싸게 구매해야 한다. 아랫집 어르신이 신청해 준다기에 거름 50포를 주문하니 다음날 바로 도착했다. 비용은 얼마가 될지 모르고 가을에 지불하라고 할 때 계산하면 된단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농막에서 하룻밤

강원도 산골 날씨는 3월 말에도 밤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윗집에서 보일러 켜 놓았으니 올라와 자라고 했지만 자다가 정 추우면 올라가겠노라 했다. 다음날 일산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하룻밤이지만 농막에서 전기 없는 생활 체험을 해보고 싶어서다. 이 무슨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 같은 생각인지...,


전기가 없으니 어둡기 전에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가져간 매트를 깔고 그 위에 각자 침낭 속으로 들어가 꼼지락 거리며 추위는 견딜만했다.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푹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총총하다.


나무시장도 다녀오고  밭에 거름도 뿌려주고

아침에 눈을 뜨니 농막 내부도 우리의 몸에도 냉기가 흐른다. 뜨끈한 국물 생각이 나서 라면을 끓여 꿀맛으로 몸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햇살이 드리우니 추위는 금방 녹아내린다.

 

기분 좋게 모닝커피 한잔 마시고 나니 이웃에서 평창 나무시장엘 다녀오란다. 1년에 한 번 한 달 정도 평창 나무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우리는 농사를 짓더라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관행농이 아닌 자연농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책과 유튜브 교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배워가는 중이다. 제아무리 공부를 해도 이론일 뿐이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현장 경험 없는 우리가 자연 농이니 뭐니 아는 체하는 게 도리가 아닐 것 같아 일단 첫해는 이웃에서 시키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나무시장과 종묘사에 들러 묘목들과 씨앗을 사 왔다. 씨앗으로 사 온 모둠 채소는 아랫집 어르신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종으로 키워주신다기에 맡겼다. 과실수 등 몇 종류 사온 나무는 여기저기 심었지만 표도 나지 않는다. 아랫집 어르신이 밭에서 초록초록 올라온 산마늘을 나누어 주셔서 비탈진 곳에 산마늘까지 심어놓고 뿌듯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날의 미션은 거름 주기까지였다. 농기구 하나 없이 이웃에서 빌려온 삽과 손수레 지게가 전부였다. 한 포대 20kg짜리 50포를 그 넓은 밭에 골고루 뿌려줘야 했다. 이미 땅을 고른 상태의 밭이라 손수레로 옮기는 게 더 힘들었다. 결국 나는 먼저 앞으로 나가 위치를 지정해 주고 짝꿍이 지게로 한 포대씩을 지고 옮겼다.

적당한 위치에 나누어 놓기를 마쳤다.  나는 칼로 포대를 르며 다니고 짝꿍은 포대 속 거름을 삽으로 밭에 뿌려주었다. 보다 못한 이웃에서 그걸 혼자 언제 다 뿌리냐며 둘이 같이 하라고 삽도 하나 더 가져오셨다. 그리고 삽보다 편하고 빠를 거라며 어깨에 메고 손으로 뿌려주는 바구니 같은 것도 들고 나와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21세기 첨단시대를 살면서 이게 도대체 언제 적 농법이냐며 우리는 지쳐갔다. 정신도 혼미하고 몸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에 이를 무렵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어쩌나 싶었는데 구세주처럼 윗집 아랫집 그 옆집까지 사람들이 우리 밭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저기 포대에 남아 있던 거름은 순식간에 밭에 뿌려졌다. 마치 동네 공동 농장이 된듯했다. 마음엔 잔잔한 감동이 흐르고 함께의 힘이 이렇게 무섭구나 실감했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내가 자연과 더불어 느리게 살아가는 시골살이를 꿈꾸었지 농업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다 보니 예상보다 넓은 토지를 구매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시작부터 좌충우돌 농업인이 되었다.

전문 농업인이 될 자신은 없지만, 어쨌든 시골살이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농업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설렘 반 걱정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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