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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Jun 30. 2022

두배로 누리는 수확의 기쁨

가성비로 따질 수 없는 행복 바이러스

5월까지도 서리가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4월 중순을 지나 감자 심기부터 시작했다. 서리 피해를 막기 위해 5월이 되어서야 고추심기부터 쌈채소 참외 토마토 등 씨앗과 모종으로 줄줄이 심고 싶은 걸 다 심었다.

가장 먼저 심은 감자는 아직 수확 전으로 하얀 꽃을 한창 피워내고 있다. 감자 수확은 대개 90~100일 만에 한다고 한다. 이제 곧 감자도 얼마나 자랐는지 결과물을 보여줄 때가 되어간다.

6월 봉평 들녘에는 하얀 감자꽃이 지천으로 펼쳐진다

평생 관행농을 해왔던 이웃분들이 지금은 제초제를 뿌려야 하고 비료를 주어야 한다 등 때에 맞추어 작물에 투여할 농약이며 화학 비료들을 알려주었지만 고집스럽게 버텼다.


작물들을 심어놓고 우리가 한 거라고는 잡초 뽑기도 아닌 자르기로 멀칭 하며 밭에 노동을 바치는 일이었다. 온통 돌밭이라 잡초 뽑기보다 잘라내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온몸의 근육통을 견디며 그 일은 평창 갈 때마다 해야 했고 여전히 쌓여가는 과제다. 지치고 힘들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물들이 힘이 되어주고 있다.

손가락 물집 생길 정도로 가위질한 잡초로 멀칭한 대파밭과 감자밭
먹을줄만 알았지 이렇게 예쁜 강낭콩 꽃을 처음 보았다

같은 시기에 심었던 이웃 밭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데 우리 밭은 고추가 먼저 달리고 오이도 큼직하게 하나 열렸다. 그뿐인가 쌈채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푸짐하다. 대파도 잘 자라고 있다. 대파가 되기 전 부드럽고 작은 파를 미리 상자나 수확했다. 파김치를 담글까 하다가 몽땅 이웃들과 파전 파티를 해버렸다. 연하고 달달한 그 맛이란! 

작물보다 더 빠르게 자라는 잡초 속에서도 대파를 수확해 낸 기쁨
튼실하고 맛있는 오이 고추도 수확



모둠 쌈채소는 가장 먼저 수확해 벌써 몇 상자째인지 모르겠다. 쪼그리고 앉아서  한 상자 작업하고 나면 다리며 어깨 통증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청정 자연 속에서 키운 건강한 채소를 하나라도 더 나누고 싶은 욕심에 몸의 고단함은 뒷전이다.


빡빡하게 자란 쌈채소 솎아주고 잡초는 가위로 잘라 멀칭;;;

도시의 이웃들, 경비 아저씨, 커피 찌꺼기를 정성스럽게 포장해 무료 나눔 하는 동네 카페 사장님께도 키운 작물을 나누었다. 커피 찌꺼기는 대부분 그냥 일반쓰레기에 섞어서 버린다. 그런데 이곳은 나눔을 한다. 원두 담았던 봉투에 가득 채워 가져 가기 편하게 테이핑까지 해서 한쪽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매장에서 꼭 커피를 사 먹지 않아도 부담 없이 가져갈 수 있는 위치다. 그 마음씀이 참 고맙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누어준 커피박으로 거름을 만들어 사용하고 식초 소주 EM을 희석해 살충제 대신 사용했다. 덕분에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었다며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쇼핑백에 담아 들고 매장에 갔더니 마침 카페 주인이 나와 있었다. 대부분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어 주인은 처음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수확한 채소를 건네 서로가 감사함을 전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한테는 택배로 보내며 나눔을 했다.


사실 봄이 되며 농막을 설치하고 밭갈이를 시작으로 그 땅에 쏟아부은 비용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농작물이 다 성공한 것도 아니다. 얼갈이는 올라오자마자 벌레들이 잔치를 벌였다. 잎보다 송송 구멍 뚫린 곳이 더 많아 갈아엎었다. 처음 심은 옥수수는 동물들이 씨앗을 다 파 먹었는지 이제야 몇 개 올라오기 시작했다. 양배추도 알이 차기 시작하지만 벌레들이 먼저 장악했다. 양배추와 파에 농약을 그리 많이 친다는데 파는 아직까지 괜찮아서 첫 수확은 해보았다. 가성비로 따지자면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사 먹는 게 훨씬 저렴하다.

벌레들이 잔치를 벌여 멀쩡한 잎이 한장도 없는  얼갈이

봄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벅찬 일이 너무 힘들어 갈등하기도 했다. 이제 장마가 시작됐고 기온이 점점 더 오르면 벌레들이 더 기승을 부릴 테다. 작물을 살릴 것인가 토양을 살릴 것인가! 고민은 잠시였다. 작물 포기 토양 살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도 계속 잡초와 녹비 식물을 키워 잘라내며 멀칭 할 생각이다. 작고 못생기고 소량일지라도 먹을 수 있다면 자연농으로 수확한 건강한 먹거리가 될 테다. 그렇게 거둔 작물을 나누는 뿌듯함이 수확의 기쁨을 두배로 안겨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청정 자연 속에서 건강한 먹거리가 자라고 있음은 진행형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다. 고단함은 녹아내리고 마음속엔 행복이라는 씨앗이 자란다. 그러니 알 수 없는 이 행복 바이러스를 어찌 가성비로만 따질 수 있으랴!!

금당산을 배경으로 건강한 작물이 자라는 비오는 날의 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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