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퇴사

by 빈땅

2019년 2월, 팀장을 맡은 지 1년 정도 되어갈 무렵 회사 대표와 정기 인사평가를 위한 면담을 가졌다. 주로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여러 직장을 거치며 다양한 리더를 만났고, 그러면서 나 나름의 리더상을 그려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런 이상적인 리더였을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지키고 싶었다. 직원들의 워라벨, 휴가 쓰는 이유 안 물어보기,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기, 지나친 업무 부담 주지 않기, 점심시간 방해 안 하기, 첨삭만 하는 빨간펜 되지 않기, 업무에 있어 자율성 보장하기 등등. 그 과정에서 작은 고비들도 있었다. 나름 판단이나 상황에 근거해 의견을 제시했는데 팀원이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려버리는 경우에는 머리꼭지가 돌기도 했다. 해당 직원은 눈치를 못 챘을 수도 있겠지만... 재미난 건 그렇다고 일이 크게 틀어지지 않았다는 거;

이런 내 모습이 직원들을 편안하게만 해주려는 인기 영합적인 행동으로 보였나 보다. 대표는 처음부터 그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사실 난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가 상급자에게 바랐던 대로 직원들을 배려하고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선을 지켜주고 싶을 뿐.


그러면서 직원들 사이에 단합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고 했다. 왜? 점심을 같이 먹지 않기 때문에... 나만 빼고 셋이 자주 먹던데, 그럴 때마다 하하호호 즐거워하더란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소외됐다고만 생각하신 게다. 저녁 회식(이건 더 싫다;)도 아니고 점심을 같이 먹어야 의쌰의쌰가 된다는 이야기는 이 때가 처음이었다. 상사와 같이 점심을 먹음으로써 직원들이 받는 가공할 만한 스트레스의 위력 같은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다.

솔직히 처음엔 나도 당황스러웠다. 난 충분히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많지 않은 나이지만 그래도 팀장이란 자리에 앉아 있어서인 나를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다.

향후 2~3년 안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과거 경력을 살리려 지금 맡고 있는 업무와는 다른 분야를 적었더니, 대표는 "넌 자신이 맡은 분야에는 관심이 없고, 그로 인해 맡은 일을 게을리하며, 직원들을 이끌어주지도 못하는 무능한 리더다"라고 말씀하셨다.

하긴 사단법인이긴 하지만 엄연히 주인이 있는 회사고, 할당된 숫자라고는 하나 작년 수주 목표치의 10% 밖에 달성을 못했으니 별 다른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지난 1년간 나름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고 퇴근 후 여러 외부 교육도 찾아다니며 들었다고 했더니 그것도 다 쓸데없는 짓이란다. 자기가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만 하고 업무 지시만 하면 쌓이는 게 리더십인데, 대표란 사람 눈엔 내가 정말 뻘짓거리만 했던 것이다.


함께 일하는 직원을 지키기 위해 외부 전문가에게 직언을 하고, 제안서를 쓰느라 며칠 밤을 야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새벽에 택시를 타고 퇴근을 해도(난 택시비만 5만 원이 넘게 나오는 곳에서 출퇴근해 이것도 눈치가 보인다), 이 분 눈에는 경영진의 전략 실패나 리더십 부재는 없고 나의 무능함만 보이는 거다.

그렇게 대단한 경영진 밑에서 1년도 채 버티질 못하고 그만둔 직원이 대체 몇 명인데...


내가 너무 순진했다. 직장에서의 언어는 달라야 하고 상사 앞에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건데, 역시나 난 포장도 못하고 자랑은 더 못한다. 팀장이 되기 전 실무자로 일할 땐 어디서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러 기관을 거쳤지만 능력을 의심받은 적은 없었다. 이미 한번 퇴사한 적이 있는 나를 다시 팀장으로 불러온 것도 현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마지막에는 다 네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충고라고 했다. 그 마음 안다. 진심이신 것도 알겠다. 그런데 내 마음에 전혀 와 닿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대표 방을 나왔다. 이후 몇 달간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너덜너덜해졌고, 난 다시 10번째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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