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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Feb 27. 2024

미군 분신 소식을 접하고...

지난 일요일에 미국 공군 병사가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미국은 현재 팔레스타인과 전선을 마주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이스라엘은 늘 미국의 무기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있고, 미국의 정치적 후원으로 휴전을 막고 대량학살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자살한 군인은 조국이 악마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 원통스러웠을 것이고, 정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자살 과정을 생중계까지 한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 댓글란은 다행히도 고인을 모독하는 글은 없어 보입니다. 열렬히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이런 소식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추모글만 보입니다. 어느 댓글은 '아무리 그래도 자살을 하면 되나. 다른 올바른 방법을 찾아야지'하고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요.


팔레스타인 문제를 9년째 연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 남일 같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변하려면 먼저 역사부터 바로 잡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8년간 책을 써서 냈지만, 와중에도, 그리고 지금 현재도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가 듭니다.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요. 한국인 최초로 1차 사료를 깊이 연구했고, 700종의 참고문헌을 비교해서 사실관계를 따져가며 쓴 책입니다. 앞으로 못해도 30년 간은 국내 최고의 역사서로 자리매김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에 팔레스타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들여다볼 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정책 변화로까지 이어지는 다리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요.


이런 현실을 몰랐던 건 아니니 처음 책을 쓸 때부터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목표로 임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출간하기 한 달 남겨놓고 유례없이 큰 규모의 전쟁이 터지고, 또 유례없을 정도로 민간인에 집중된 무차별대량학살이 계속되는 걸 보면서 너무 무책임하고 안일했나 하는 반성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자기 변론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인데, 미국에서는 군인이 분신자살을 생중계하면서까지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걸 보니 안타까움보다 부끄러움이 더 크네요.


마침 오늘 새벽에 개발협력 분야로 일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책을 쓰기 전 본업이고, 관심 분야에다 또 생업을 이어갈 수 있어 좋은 기회지만 일단은 대답을 보류했습니다. 아직은 국내에 남아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알리기 위해 조금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분신 소식을 들으니....


그런데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과연 팔레스타인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알리는 노력이 당장에 효과가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사람들은 오늘 점심에 뭐 먹고, 유튜브 뭐 볼지 이런 게 중요하지 먼 나라에서 려 150년간이나 식민주의에 저항하고 하루에 수십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소소한 일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딱히 이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인간 본성이 그런 거고,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니까요.


우리 선조들이, 김구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독립 운동가들이 어려움을 겪으셨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요. 일본의 강제지배의 부당함을 세계에 호소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매몰찬 시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식민지배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제사회를 염원했으나 우리 국민들은 이를 잊었습니다. 얼마 뒤면 삼일절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알리고 그분들의 뜻을 기리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일본에 대한 비판뿐인 반쪽자리 염원에 그칠 것입니다.


다음달부터는 도서관에 강의를 제안하며 책을 읽기 어려운 일반 시민들 위주로 다가가려고 합니다. 큰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고인에게는 조금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제가 딛는 작은 걸음이 또 다른 이들의 걸음과 합쳐져 '도약'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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