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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Sep 15. 2022

독립서점에서 전시를 합니다.

전시 첫날의 기억


나의 첫 번째 전시 <늘 봄일 순 없지만>2022.3


나의 첫 번째 전시


그림들이 쌓여갈수록 의문이 든다.

가끔은 외주도 받고, 굿즈도 제작하고 미미하지만 팔로워 숫자도 늘어가고 주변에서 작가라고 불러준다.

(주변인들에게 작가님이라고 불리는 건 내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지만 여전히 반쪽의 느낌이 지속되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해야겠다.’


음… 전시라고 함은 유명한 화가나 사진작가, 조각가들이 하는 거 아닌가?

아냐, 무명이면 뭐 어때. 나는 그냥 소박한 공간 하나 마련해서 작게 하면 되지. 

서점 그림들이 많으니 서점에서 하면 좋겠다.


꾸준함은 좀 부족해도 추진력은 쓸만한 나다.

바로 전시 가능한 서점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집에서 멀지 않고, 나만의 전시를 열 수 있는 곳이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이라 규모도 꽤 큰 곳이다. 내가 찾던 곳이다! 무작정 연락을 드려본다.


나에게 첫 번째 전시를 허락해준 곳은 잠실의 복합문화공간, <하우스 서울>로, 청년 작가(이 부분에서 좀 찔림)에게 전시 공간을 대여해주고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다.

바로 서점 측에 연락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얼마 후 나의 그림 스타일이 서점 측과 잘 어울린다는 판단에 전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만 전시 문의 당시 11월이었는데 이미 2월까지는 전시 일정이 차 있어서 내년 3월 이후로 가능하다 했다. 오히려 3개월의 준비 기간이 있어 더 좋았다.




내 그림 스타일에는 컨버스 천 액자가 어울릴 것 같아 전시 액자들은 모두 컨버스로 제작했다.

패드와 컴퓨터로만 보던 내 그림들을 실물로, 액자로 크게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립톡, 엽서, 팸플릿, 포스터, 명함… 처음 하는 전시라 모두 처음 제작하는 것 투성이었다.

전시 기간까지 넉넉하다고 생각했으나 초1 엄마는 초등학교 겨울방학이 무려 두 달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1월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제때 나오지 못한 것들은 전시 당일 퀵으로 받기도 했다. 그 문제의 퀵으로 받은 제품은 마지막까지 만들까 말까 고민했던 컬러링북이다.

컬러링북이긴 하나 책을 만든다는 것은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는데,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해보자는 결론에 다다랐고 급하게 포토샵으로 책을 만들고, 시간이 촉박해 전시 당일 을지로에서 잠실 전시장까지 퀵으로 받고야 만다.

<모두가 기다려왔던 권냥이 초대전>은 아니었기에 컬러링북이 하루 이틀 늦는다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누군가는 나의 전시를 기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약속한 날짜에 완벽하게 설치하고 싶었다. 미리미리 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건데….  

나란 인간은 늘 이렇게 스펙터클하게 끝내고야 만다.


공간은 대여해주지만 설치는 직접 해야 한다.

처음이라 와이어에 액자 거는 것도 잘할지 모르겠고, 혼자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편은 반강제적으로 끌려가서 설치하게 된다.

가져온 포스터 3장을 입구와 2층 계단, 전시 기둥 등에 붙이고, 엽서와 명함, 팸플릿, 그립톡 등을 배치하고, 와이어로 액자를 걸고... 1시간가량 소요된 설치가 끝난다.

나의편은 오전 반차를 써서 내 전시 설치에 동원되었기에 곧 출근을 해야 했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맛난 걸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뭘 먹을까 고민하며 식당으로 향하던 중에 전화 한 통이 왔다.

서점이었다.

“작가님~ 다시 와보셔야겠어요~ 화분이 엄청 큰 게 왔어요~”

차를 돌려 돌아간 서점 전시장에서 나는 엄청나게 큰 화분과 마주했다.

허걱, 누가 보낸 거지?


나를 한없이 쑥스럽고 눈물 나게 만들었던 화분



친구들이 보내 준 커다란 화분


전시 규모에 비해 너무 큰 1.8m 화분의 정체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들이 보내 준 것이었다.

전시 며칠 전 아파트 친한 언니로부터 카톡이 왔다.

“냥아~너 전시회 말야… 입장권 있어야 해?”

허걱, 그런 규모의 전시가 아닌데, 독립서점 한켠 벽면만 빌린 작은 전시인데 혹시 초대전, 개인전 급으로 소문이 난건가. 부랴부랴 작은 규모이고 그냥 오시면 된다고 설명해드렸지만, 영 찜찜하다.

그때문인가, 원래는 더 큰 화환을 보내려고 했는데, 전시장이 크지 않다는 소식을 급 접수하고 부랴부랴 화환에서 화분으로 바꿔서 주문했다는 것이 저 크기다.

신랑이 화분을 보자마자 한 마디 한다.

“저거 차에 안 실려. 카니발 불러야 돼”

전시 담당자님께 여쭤본다.

“이런 화분이 들어온 적 있나요?”

“아뇨, 처음이에요” (웃음)

주변인들에게 넘치는 축하를 받은 나.

나 몰래 커다란 화분을 보내 준 아파트 단지 사람들의 마음에 어쨌든 심쿵이다. 

전시 첫날 단체로 다녀가서 사진도 찍고, 굿즈들도 쓸어가 준 사람들.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준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고, 한편으론 미안하고 더 잘되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든다.

그저 나의 자아실현을 위한 전시일까?

나는 전시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이제 정말 작가라고 불리는 것이 쑥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날 오후 난 또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작가님~ 화분 하나가 또 들어왔어요~~”



나 진짜 잘되야겠다.



과분한 축하를 받았던 전시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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