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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Sep 07. 2022

사소하지만 감동적이고 별거 아닌 듯 하지만 크게 신경쓴

서점 한켠에 자리 잡은 내 그림엽서



기억의 조각들 (2022. 5)- 연남동 골목길에서



처음 독서 모임에 갔던 날 대표님께 책방 명함을 받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명함이 있었지? 명함이 들어있는 지갑을 꺼내서 뒤적거려본다.

이게 사실 지갑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애매한,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는 공간이다. 카드 하나 찾는 데 30초가 걸릴 때도 있는 블랙홀 같은 공간인데 그곳에 뒤엉켜 있던 명함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겨우 찾아서 꺼내 보니 테두리가 더럽기 그지없다. 이것도 명함이라고 차마 드릴 수가 없어서 일단 살포시 다시 집어넣는다.




두 번째 독서 모임에 가는 날이다. 그때 지저분해서 못 드린 명함이 생각났다. 책상 한구석에 올려놓은 명함 상자에서 깨끗한 명함 하나를 꺼낸다. 그 옆에 비닐에 한 장 한 장 곱게 포장해두었던 내 그림엽서들이 눈에 띈다. 독서 모임 하는 세 분께 나눠드려야겠다.

뭐... 서점 그림이니 딱히 싫어하진 않으시겠지?

글쓰기 시간이 다 끝나고 오늘 썼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 엽서를 슬쩍 꺼내 놓는다.

내가 근래 본 리액션 Top 5에 들 만큼 기뻐해 주는 글쓰기 동지분들.

원래 두 장씩 드리면 되겠다 하고 가져왔는데, 이 책방에 진열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엽서는 책방에 몰아주는 분위기가 되었다.




일주일 후 방문한 서점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위로를 받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왼쪽 벽면에 패브릭 천을 덧대어서 내 엽서들과 내 명함이 예쁘게도 진열되어 있었다.

아, 그렇구나. 내가 동네 책방에서 받고 싶었던 감정이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사소하지만 감동적이고 별거 아닌 듯하지만 크게 신경 쓴 마음.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 주는,

공간이 주는 위로.



동네서점 한켠에 자리잡은 일러스트 엽서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딱히 유명하진 않다.

아니 사실 무명이다.

그래도 쉬지 않고 그리는 중이다. 책이 한번 엎어진 후부터 더 제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현타를 느낀다. 세상에 이렇게 잘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실력으로 대체 뭘 쓰려고 한 거지? 그림도 애매한데 글은 더 애매했구나.

애매하지 말자. 그러려면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

그래, 오늘도 뭐라도 쓰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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