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천히, 가장 예뻤던,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
고정순, 『옥춘당』(길벗어린이, 2023)
전쟁고아로 만나 기차역이 있는 작은 도시에서 삼 남매를 낳아 키우며 다정하게 평생을 함께 살아간 부부의 이야기가 어느 집의 빛바랜 앨범을 꺼내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소외된 사람들을 품을 줄도 알았고, 손주와 만화 영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놀아 줄 주도 알았다. 그리고 ‘옥춘당’을 좋아하는 아내 입에 그것을 넣어 줄 주도 알았다.
남편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평생을 열심히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은 폐암으로 점점 작아지다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내년에 꽃이 피려는 것을 궁금해하면서 남편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내와 소소한 일상을 함께 했다.
아내는 알뜰했다. 없는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려면 화장지 휴지까지 잔소리해 가면서 아끼며 살아야 했다. 낯을 많이 가려서 아내의 유일한 친구는 남편뿐이었다. 아내 곁에는 항상 남편이 있었다.
제사상에 올랐던 가장 예뻤던 사탕인 ‘옥춘당’을 남편이 입에 하나 넣어주면 아내는 천천히 녹여 먹었다. 입안 가득 향기가 퍼지며 아내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내는 부모를 잃은 아픔을 다정한 남편의 사랑으로 건넨 달달한 사탕으로 잊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전쟁고아였던 이들에게 부모를 떠올려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내의 시간이 멈추었다. 아내는 말을 잃고 치매 환자가 되어 10여 년을 요양원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보내다가 남편 곁으로 떠났다.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한 자식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느라 부모님이 어떻게 사는지, 건강은 어떤지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폐암에 걸렸는지도 바로 알지 못했고,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어머니가 어떻게 살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버지는 폐암 말기 환자가 되어 있어 자식들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치매 환자가 되어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떠난 자리에 자식들의 슬픔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슬픔은 자식들의 일상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래서 제사상 위에 올라간 옥춘당이 단단한 것은 아닐까?
옥춘당을 먹는 동안에는 떠난 이들을 충분히 그리워하도록 말이다. 그들과 달콤했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을 녹여내 버리기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꺼내 지워낼 수 있도록 말이다.
화려한 색을 입은 옥춘당이 입안에서 녹아 하얗게 되는 것이 마치 우리의 인생 같다. 화려한 젊은 시절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빠지고, 작아지는 우리의 인생 말이다. 누구에게나 화려한 시간이 있고, 누구에게나 약해지고 작아지는 시간이 찾아온다.
인생이라는 것이 크고 대단한 산이라기보다는 하루 종일 그 자리가 바뀌는 해 같다. 아침에 떠서 하늘 한가운데 있다가 서서히 기울어지며 노을 자국을 남기며 사라져 버리는 해말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메는 것은 내가 잊고 지낸 이들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나의 부모님 이야기 같기도 하고, 혹은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잊고 지낸 시간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