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도 안 돼, 내가 오리?’
박세경, 『어떤 용기』(달그림, 2019)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높은 빌딩 안에 갇혀 열심히 일하는 점부리가 있다. 점부리는 성공하고 싶었다. 그녀의 성공은 멋진 차, 멋진 집, 멋진 남편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면 모두가 그녀를 부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시선을 즐기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다.
또, 점부리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외모 때문에 자신의 능력까지 평가절하된다고 생각해서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로 이것도 극복하려고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점부리에게 당당함을 지워냈다.
점부리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점부리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을 기대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성공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믿고 산다. 능력도 키워야 하고, 외모도 가꾸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무엇인지 볼 여유가 없다. 멈칫하는 짧은 순간도 허락할 수가 없다. 목적지만을 생각하며 견뎌내는 마음으로 일상 속에 자신을 욱여넣는다. 점부리도 그렇게 일상 속에 자신을 욱여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상이 무너졌다. 점부리의 어깨가 잘 움직여지지 않고, 아파 왔다.
점부리가 일하는 시간에 병원에 가려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일탈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병원으로 가는 길이 낯설다. 불편하다. 남들은 사무실 안에서 일하고 있을 텐데, 자신만 빠져나온 것이 밀려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 속에 오리의 모습을 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이 되어 불편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이유든지 간에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이 점부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점부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점부리에게 오리라고 말해줬다. 오리가 쉬지 않고 일해서 어깨가 뭉쳤고, 날개를 쓰지 않아서 그 기능도 떨어졌다고 한다. 점부리는 아프다는 것이 마치 실패처럼 느껴졌다.
점부리는 의사의 처방대로 다른 환자들과 함께 병원 뒤 작은 숲에서 재활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끄고, 편안한 자세로 누워 오리답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환자들과 서로의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들을 하기 시작했다. 점부리는 몸도 마음도 안정되어 갔다.
병원에 다녀온 점부리는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다. 제철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 먹었고, 산책도 했고, 집에서도 스트레칭과 근육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재활을 통해서 점부리는 자신을 아끼는 방법을 찾게 된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힘들었던 마음이 자신과 닮아 있는 다른 환자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응원을 받아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전에 점부리는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튀어나온 입을 창피하게 여겼고, 아침마다 겨드랑이 털을 뽑아냈다. 수영장에 가서도 물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점부리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겨드랑이 털을 뽑던 것을 멈추었다. 점부리의 팔이 털로 가득 뒤덮였고, 그 털 아래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이 낯선 모습이 점부리는 무서웠다. 이전과 달라진 오리다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았다.
점부리는 다시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날개가 돋아난 점부리의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했다. 사람의 모습으로 아름다워지고 싶었는데 오리의 모습으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자 점부리는 의아했다.
점부리가 날갯짓을 반복할수록 점부리의 팔과 어깨는 점점 더 강해졌고, 매일매일 연습한 덕분에 안정적으로 날 수 있게 되었다. 날개는 점부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었고, 빌딩 안에 갇혀 있던 점부리를 꺼내 세계 곳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이제 점부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자기’의 모습을 찾고 싶어졌다. 날개는 점부리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점부리는 오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날개를 통해 찾게 되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오리 점부리가 사람처럼 살려고 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었다. 혹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버겁다면, 거울에 자신을 비추기보다 지금 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자리는 나를 버겁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것을 찾는 것이 용기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용기가 자존감의 자존감의 씨앗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