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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애 Nov 19. 2024

대도시의 고시원 사는 법

2평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뒤늦은 프롤로그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고시원을 운영한 지 2년 차가 되어 가는 고시원 원장입니다. 지금은 고시원 3개를 운영하고 있고요, 저도 한 때 고시원에 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교 시절, 서울로 학교 다니기 힘들어 두 학기 정도를 고시원에 머물며 나만의 작은 공간 안에서 행복하게 지냈던 시절을 잊지 못합니다. 화장실도 없는 1평 되는 방 안에서 라면 끓여 먹고, 공부도 하며, 친구들도 초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소녀가 이제는 고시원 원장이 되어 다양한 사연들이 있는 고시원 입실자들과 살아가고 있네요.

106명 되는 입실자들은 저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분,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려 하는 분,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분 등 그 안에서 우리 부부는 공감하고, 탄식하며, 행복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삶의 가장 낮은 곳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화위복이 되고, 삶의 마지막 터전이 될 수도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우리 고시원을 저는 애정하며, 또 한 번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어서 시작한 고시원인데요, 이제는 진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곳을 스쳐가는 많은 인연들이 정말로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우리 고시원에 올라오면 계단 중간에 붙여있는 문구.

처음 인수받고 인테리어 할 때, 이곳에 머물게 되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붙였다.



고시원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학교 앞 고시원에 살았던 경험이 있으므로 고시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과거 드라마나 매스컴에서 비치는 모습 때문에 어두컴컴하고, 무섭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원장이 되고 입실자분들에게 한 명씩 인사드릴 때, 설레면서도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이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솔직히 내가 조금은 무던한 편일 수도 있지만, 지레 겁먹고 걱정하는 분들께 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습니다."이다.


우리 고시원은 모두 대도시 안에 있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빌딩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고시원은 때때로 불협화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의 거주 이유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어떠한 이유로(공부하는 학생, 직장 등) 잠시 머무는 사람과 고시원이 나의 집이고, 삶의 터전인 사람.

오늘은 후자인 고시원이 삶의 터전인 한 입실자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저건 똥이야, 된장이야?


첫 번째 인수받은 고시원은 3개의 종류의 방이 있다. 하나는 화장실, 샤워실이 방안에 있는 원룸형인 45만 원 가장 비싼 방, 또 하나는 샤워실만 있는 40만 원 방, 나머지 하나는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1평 남짓 되는 방만 있는 방.

1평 남짓 되는 방만 있는 방은 보증금 없이 28만 원으로 가장 저렴하다. J 입실자님은 기초생활수급자로 28만 원 방에서 사신다.

고시원에 살면 좋은 이유는 공과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딱 입실료만 내면 된다. 또한 김치, 쌀, 세제, 라면을 제공해 주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편리한 것이 문제다. 편리한 생활에 안주하지 말고, 이곳을 발판으로 더 나은 터전으로 나아가길 바라지만, 이곳을 내 집처럼 여기며 안착해 버린 다는 것. 그래서 청년들에게는 앞으로의 장래에 대한 솔직한 조언과 정부에서 나오는 도움이 되는 정책 정보들을 수시로 제공하며 더 나은 공간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한다.


309호 J님은 우리가 인수받기 전부터 10년째 거주 중이신 할아버지. 처음 인사드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언제나 밝은 미소로 인사해 주시며, '원장님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시는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인수받은 지 4개월 만에 우리 고시원에도 크리스마스가 왔다. 젊은 원장인 우리는 적막한 고시원에 따뜻한 분위기를 내고 싶어 트리도 꾸미고, 장식도 하며 한 껏 꾸미기에 한창이었다.

그날도 초록색 리스를 입구에 장식하고 남편과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바닥에 갈색 덩어리가 보였다.


"여보, 저건 뭐야?"

"응 뭐야?"

"설마, 저거 똥이야? 된장이야?"

"킁킁, 하. 똥이네."


으악. 살다 살다 다른 사람의 똥을, 그것도 화장실도 아닌, 멀쩡한 실내에서 보다니. 고시원 원장은 별 걸 다 보게 된다더니 정말이다.

일단 다른 입실자가 보기 전에 치우고, 청소부터 했다. 남편은 비위가 약해 몇 번 헛구역질까지 하면서도 열심히 닦았다. 냄새가 쉬이 빠지지 않아 밖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무시하고 복도 창문을 한참을 열어 놓았다. 그러고는 바로 CCTV를 돌려 보았다. 범인은 309호 J할아버지.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며칠 전부터 J님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세탁기를 멈추고 다른 입실자의 세탁물을 모두 꺼낸 뒤 본인 세탁물을 넣고 작동시키거나, 세탁기 작동법을 헤매서 전화를 주신다거나, 그런 일들이 오버랩되면서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J님을 불러내 옥상에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J님, 혹시 속이 안 좋으세요? CCTV를 돌려보니까 J님이 걸어가시다가 복도 바닥에 대변 실수를 하셨더라고요."

"아, 아, 죄송합니다. 원장님. 제가 콜라 중독이어서 매일 세 통을 먹어요. 그러다 보니까 요즘 배가 아파서 병원도 다니고 해서, 아, 그래서 원장님. 죄송합니다. 다신 그런 일 없게 할게요. 콜라 이제 안 먹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런 일이 있으셨어요.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약은 드시고 계세요?"

"네 배탈이라고 해서 약은 먹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혹시 J님 요즘 자꾸 깜빡하다거나 실수한다거나 그런 일이 잦진 않으세요?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저희는 J님이 걱정돼서 그래요. 제가 행정복지센터에 전화해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여쭤볼게요."


J님은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나라에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분이셨고, 우리는 행정복지센터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무조건 싫다고 거부하시던 J님은 결국 나의 성화에 못 이겨 행정복지센터에 담당 복지사님과 통화하고, 복지관에서 만났다. 그런데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에 점퍼 하나 안 걸치고, 회색 트레이닝 차림으로 나타나셨다. 계속 본인은 아무 이상 없다며, 억울해하고 싫다고 하셨던 J님은 그때부터는 경계를 푸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이셨다.

복지사님과 몇 가지 간단하게 체크를 한 뒤 어느 정신과를 알려주셨다. 그곳에 가면 무료로 인지기능검사 및 치매 검사를 해주신다고 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함께 나섰다.

"J님 우리가 모셔다 드릴게요"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 들렀다가 병원은 꼭 갈게요."

"정말이세요? 저희가 모셔다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정말이고 말고요. 갔다가 꼭 확인 전화 드릴게요 원장님"

꼭 병원에 간다고 나와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다.

"근데, 이 추운 날 점퍼는 왜 안 입으셨어요. 안 추우세요?"

"네, 방에 점퍼 있어요. 안 추워서 안 입었어요. 원장님 안 추워요. 정말 안 추워요. "

"그래도 안 돼요. 이런 날 이렇게 입고 가시면 얼어 죽어요. J님 점퍼 입고 가세요."

"아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그럼 이거라도 입고 가세요"

마침 차에도 점퍼가 하나 있어서 남편이 입고 있던 점퍼를 걸쳐 드렸다.

"다녀오셔요."

"아이고, 네네 고맙습니다. 원장님"


그렇게 J님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는데,

지하철을 내려가기 전까지 거듭 뒤돌아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해주신다.


"아, 다행이다. 근데, 진짜 치매 진단을 받으시면, 그땐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돼?"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밀려오는 뒷 일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잘 될 거라고 서로를 다독이면서 따뜻한 커피 한잔 하자며 카페로 들어갔다.


J할아버지의 진단명은 다행히도 치매는 아니었고,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지시지만,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지속적인 상담과 약 복용으로 나아질 수는 없지만,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다니, 다행이었다.

지금도 J님을 뵐 때마다 "약 드셨어요?"가 우리의 인사말이다. 그 이후로 실수는 여전히 종종 하시지만, 큰 실수 없이 잘 생활하고 계신다. 나중에 깊은 대화를 해보니 안 사실인데, J님은 가족이 없으시고, 친척도 형제도 없다고 하셨다. 가끔 목욕탕에서 일을 하시는데, 들어보니 사장이 악덕 업주였다. 당장 그만두시라고 몇 번 조언도 해드렸는데, "알겠다고" 하시곤 여전히 한 달에 한두 번은 나가시는 것 같다.

고시원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많은 외로운 분들이 많다. 따뜻한 말 한마디, 가끔 건네는 안부가 그분들에게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고시원 원장으로서 책임이 더 해진다. 고시원 선배들은 입실자들에게 절대 정을 주지 말라고 한다. 입실료 안내는 입실자는 가차 없이 잘라내라고. 그렇지만,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모두 인간적으로 대화하면 대화가 되고, 입실료가 늦어지더라도 끝내 안내는 분들은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애초에 방 보러 왔을 때 느낌이 심상치 않으면, 방이 없다고도 하기도 한다.

받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의 시발 점이 될 수도 있기에.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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