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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새 Feb 09. 2024

[2화] 월-E

인간 같은 로봇, 로봇 같은 인간

우린 어린 시절 "일하지 않고 평생 놀고 먹을 순 없을까?"라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신나는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로봇이 밥 해주고, 일 해주고, 뒤치다꺼리를 다 해 주면, 매일매일 축제와 같은 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환상의 만화나라 픽사는 학교 가기 싫고, 직장 다니기 싫을 사람들을 위해 인간 대신 로봇이 일하는 세상을 그린 <월-E> (2008)를 만들었습니다. 월-E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요?


<월-E> 시놉시스

텅빈 지구에 홀로 남아 외롭게 일만 하며 보내던 월-E가 탐사로봇 이브를 만나면서 잡동사니만 수집하던 인생에 소중한 목표가 생겼다. 유쾌한 캐릭터들과 함께 우주에서 펼쳐지는 월-E의 환상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일하는 로봇


<월-E>의 초반부는 열심히 일하는 로봇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폐허가 된 지구를 나홀로 청소하는 월-E, 식물을 찾기 위해 전 지구를 떠도는 이브, 오염물 청소 로봇 모를 비롯한 엑시엄(Axiom) 호의 로봇들은 모두 자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비록 자유도와 고장 여부, 임무의 목적이 다를지라도, 이들 모두 자신이 맡은 바를 충실히 다합니다. 작품 속 로봇의 모습에서 현실을 사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되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인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처럼 열심히 일하는 로봇. 고장나도 열심히 일하는 중!

많은 리뷰에서는 인간 같은 로봇의 사랑과 모험에 집중하지만, 저는 이들보다 엑시엄 호에 탑승한 인간들에게 더 눈길이 갔습니다.


일하지 않는 인간


그럼 엑시엄 호에 입주한 인간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지구에 송출되는 BnL사의 엑시엄 호 홍보 CM은 아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초호화 우주 여객선 '엑시엄'
5년의 항해 동안 로봇 승무원의 24시간 서비스,
자동 항법 시스템, 최고의 요리로 모십니다.
안락한 호버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뭐든 할 수 있죠.
'엑시엄' 호로 호화 여행을 즐기세요!


이 메시지는 잘 이행되고 있었을까요? 이브를 따라 수송선에 매달린 월-E 덕분에 우린 호화 우주 여객선의 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의자 옆에 월-E 있어요!


사람들은 호버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자동 항법 시스템에 따라 먼 우주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로봇 승무원이 언제든 제공해주었습니다. BnL사는 허위/과장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모종의 사유로 5년 안에 끝나야 할 여행이 700년 넘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이 지속되다 보니, 액시엄 호의 승객들은 자립할 수 없는 온실 속의 화초가 되었습니다.


무릇 인간이라면 자기가 생각하고 뜻한 바를 펼쳐야 하는데, 액시엄 호의 손님들은 로봇들이 모든 욕구를 맞춰주다 보니 인간성을 키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로봇처럼 되고, 로봇이 인간처럼 되는 이 모습이 얼마나 슬픈기요.


로봇의 손을 잡고 현실로 돌아오다


인간이 로봇처럼 살고, 로봇이 인간처럼 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판을 벗어난 인간들이 나타났습니다. 엑시엄 호의 6대 선장 맥크리는 이브가 가져 온 식물 덕분에 오랜 항해를 끝내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AUTO의 도움을 받아 지구에 대한 정보를 하나둘 습득합니다. 맥크리가 엑시엄 호의 생활에 만족하거나, 지구 귀환 매뉴얼을 읽지 못 했다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기 때문에 반전의 실마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브 덕에 지구 귀환의 희망을 얻은 맥크리 선장.

맥크리 선장은 이브 덕분에 자신의 고향 지구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면, 존과 메리는 우연히 만난 월-E 덕분에 스크린 밖 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홀로그램 가상 현실을 따분해하던 메리에게 스크린 밖 세상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가상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제쳐두고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며 즐겁게 노는 이 커플의 모습은 작중에서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수영장이 있는 지 몰랐다고요?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맥크리 선장, 인간성을 회복하는 존과 메리 커플은 각기 다른 과정으로 기계 같은 인간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습니다. 영원히 지구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자동 항법 시스템 AUTO를 제압하기 위해 맥크리 선장이 호버 의자에서 일어서는 장면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유명해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배경음으로 깔렸습니다. 로봇의 도움으로 인간성을 회복할 실마리를 얻었지만, 그걸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직접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장엄한 BGM이 들어갔습니다. 맥크리 선장의 위대한 한 걸음 덕분에 엑시엄 호의 승객들과 로봇들은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습니다.


맥크리 선장이 의자에서 발을 내딛을 때 들어갔던 BGM,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픽사의 영화 <월-E>는 인간처럼 사는 귀엽고 예쁜 로봇들을 보며 고된 삶을 위로하고, 동시에 로봇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희망을 줍니다. 마음 따뜻한 로봇이 이끄는 인간 찬가를 듣고 싶다면 한번 감상해보세요.


오늘의 환상극장은 여기까지입니다. 환상적인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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