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끼니 - 3
옛날 잔칫날에는 잡채를 나눠 먹었다. 큰 대야에 풍성하게 준비한 잡채를 사람들이 나눠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예전 풍경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 자료에서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사실 난 자취를 한 때부터 잡채를 직접 만들어 먹은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시청각 자료에서 본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서, 생일상을 주제로 한 이번 밥상에 올라가게 되었다. 함께 먹을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생일상이라 한 번 만들어 보았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 알려준 잡채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았다. 당면을 불리고, 갖은 채소를 손질하고, 고기나 어묵을 볶고, 모든 재료를 간장 양념에 볶아 먹으면 되었다. 재료 준비 과정은 번거로웠지만 조리 과정이 너무나 간단했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난 잡채를 만들면서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 본 영상에서는, 잡채를 만들 때 모든 재료를 대야에 담아 놓고 한데 비벼서 만들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조리법에서는 '모든 재료를 팬에 한데 넣고 묽은 소스를 볶아서 마무리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몇몇 블로그에서 비빌 때 불을 쓰지 않는 전자의 조리법이 소개되긴 하지만, 대체로 불로 볶아서 마무리하는 후자의 방법이 나와 있었다. 같은 요리지만 만드는 시기에 따라 요리법이 다를 수 있었다.
붉은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는 백김치만 있었던 것처럼, 같은 음식이라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만드는 과정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올 수 있었다. 예전엔 잡채를 그냥 비벼 먹는 게 더 좋을 수 있었지만, 잡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여러 사람의 노력 덕분에 볶아 먹는 잡채가 대세가 될 수 있었다. 선구자의 노력 덕분에 레시피가 변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이 나의 뜨거운 비빔면을 알아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볶아 먹는 비빔면은 실패했지만, 볶아 먹는 잡채는 성공했구나!